“거울 앞으로 와봐. 네가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보여줄 테니. 미간의 저 주름 두 줄, 아치 모양으로 치솟지 못하고 도중에 꺼져버린 저 짙은 눈썹, 너무 깊이 파묻혀서 당당하게 창문을 열지 못하고 악마의 첩자처럼 그 아래 숨어 반짝이는 검은 악령 한 쌍이 보이니? 저 뚱한 주름살을 말끔히 펴고, 눈꺼풀을 거침없이 들어 올리고, 그 악령들을 자신감 있고 순수한 천사들로 바꾸려고 한번 노력해봐. 아무것도 수상쩍어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면 그냥 친구로 보려는 눈을 가져봐. 자기가 발길질당해도 싸다고 여기면서도 그 고통 때문에 발길질한 사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증오하는 악랄한 똥개 같은 표정은 짓지 마.”
--- pp.99~100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은 내가 죽거나, 아니면 저이가 죽는 걸 보는 거야!”
--- p.259
“악마한테 홀리기라도 한 거야?” 히스클리프가 사납게 말을 이었어요. “죽어가면서 나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다니? 네가 한 모든 말이 내 기억에 새겨져서 네가 나를 떠나고 난 뒤에 나를 영원히 갉아먹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는 거야? 내가 널 죽였다는 너의 말은 거짓이라는 거 너도 알잖아. 그리고 캐서린, 내가 나를 잊으면 잊었지, 너는 잊지 못할 거라는 거 너도 알잖아! 네가 고이 잠들어 있는 동안 내가 지옥의 고통 속에 몸부림칠 거라는 사실만으로는 너의 지옥 같은 이기심이 채워지지 않는 거야?”
--- pp.273~274
“이제는 참는 것도 지쳤어요.” 내가 대답했어. “그 보복이 나에게 되돌아오지만 않는다면, 나도 기꺼이 보복하고 싶어요. 하지만 배반과 폭력은 양날의 창이에요. 그것에 의지하는 사람은 자신의 적보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되는 법이죠.”
--- p.301
“하지만 내가 히스클리프에게 직접 안겨주는 고통이 아니라면 대체 그 어떤 고통이 나를 만족시킬 수 있겠어? 만일 내가 그자에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고, 그게 내가 한 짓이라는 걸 그자가 알게 할 수만 있다면, 그자가 받는 고통이 좀 줄어들어도 괜찮아. 아아, 나는 그자에게 빚진 게 너무 많아. 내가 그자를 용서할 수 있을 조건은 딱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고, 쓰라린 고통은 쓰라린 고통으로 되돌려주고, 그자를 나 같은 꼴로 끌어내렸을 때뿐이라고. 먼저 상처를 준 사람은 그자니까, 먼저 용서를 비는 것도 그자가 되게 해줘야 해.”
--- p.308
그자와 나 사이는 긴 의자의 등받이와 언쇼 씨의 몸으로 가로막혀 있었어. 그래서 그자는 나를 잡으려고 하는 대신 식탁에서 식사용 나이프를 잡아채서 내 머리를 향해 던졌어. 나이프가 귀 아래에 꽂히는 바람에 나는 하던 말을 마저 끝내지 못했지. 하지만 나이프를 뽑고 문 쪽으로 뛰어가며 또 다른 욕을 퍼부어주었어. 내 욕이 그가 던진 나이프보다 살짝 더 깊이 박히길 바라면서 말이야.
--- pp.311~312
“히스클리프 씨,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당신이 아무리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어도 우리는 당신의 그 잔인함이 그보다 더 큰 비참함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함으로써 복수할 수 있어요! 당신은 정말 비참한 사람이에요, 안 그런가요? 악마처럼 외롭고 시샘이 많지 않나요? 아무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당신이 죽어도 아무도 당신을 위해 울어주지 않을 거예요!”
--- pp.485~486
《폭풍의 언덕》은 그 강력한 비극적 요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극으로 부를 수밖에 없지만, 종국에는 무한한 평화가 찾아온다는 점에서 비극이라고만 부를 수도 없는 작품이다. 인생에서든 문학에서든 진짜 정적을 맛보려면 반드시 소란을 통과해야 하고, 진짜 평화에 이르려면 어쩔 수 없이 모진 싸움을 치러야만 한다는 것을 《폭풍의 언덕》은 알려준다.
---「해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