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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던 길 멈춰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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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674g | 152*223*26mm
ISBN13 979119717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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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며 문득 어머니의 젖무덤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젖무덤을 더듬어 보내드렸어야 할 것을….
--- p.30

사랑채 앞마당의 대명매는 한때 세도가 당당했던 우리 가문의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쇠락해 버린 가세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연분홍 꽃망울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후손 대명매를 바라보면서 대대손손 영원히 불게 피어가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 p.50

영감님은 장날뿐만 아니라 평일에도 두붓집을 열어놓고 있다. 나는 그 앞을 지날 때면 먼발치에서라도 그쪽에 눈길을 준다. 영감님의 얼굴은 늘 평온해 보인다. 그 어떤 잡념도 없는 것 같다.
--- p.90

소금장수의 묘를 뒤로 하고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데 기분이 묘해졌다. 마음이 쓸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포근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그 시절의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의 부끄럽고 감추고 싶었던 일까지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 p.97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를테면 설경 하나를 찍는 데도 여러 날이 걸렸는데 끝내 못 찍게 되면 다음 해의 겨울까지 기다려야 했다. 해 질 무렵 새들이 대숲으로 날아드는 장면을 찍을 때는 순간 포착하는 데 애를 먹었다. 셔터를 누르는 것은 순간이지만 인내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더 오래 걸렸고, 기다린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7년이나 걸린 것이다.
--- p.209

사실 나는 구불구불한 것보다 직선을 좋아했었다. 아마도 젊었을 때 설계 일을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해갔다. 시골에 집을 지어 놓고 꽃을 기르고, 꽃 사진을 촬영하게 된 것도 내 생각을 변하게 한 요인일 것이다. 꽃잎은 둥글고 나무들의 잎은 둥글다.
--- p.231

‘소나무야 그래 알았어! 소나무, 네 곁에 불로초 한 그루가 노루 엉덩이 사이의 방울처럼 있다는 말이지?’

나는 이렇게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 p.272

나는 쓸쓸하지 않다. 죽음을 한 발 앞에 둔 노년의 삶이지만 세월에 연연하지도 않다. 이 아름다운 풍경들 앞에서 ‘누구와 함께 앉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나에겐 ‘밝은 달과 바람’이 있지 않은가? 나는 새벽에도 황혼녘에도 이곳 식영정, 소쇄원에 들러 밝은 달과 맑은 바람을 그리며 그 자리에 서 있다.
내가 자연 속에 깃든 것도 하늘의 뜻인 것을…. 하서 김인후 선생의 〈자연가〉 ‘산도 절로, 물도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를 읊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다.
--- p.285

이곳 사람들은 천장이라고 하는 장례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매장을 하지 않고 독수리에게 바치는 장례문화다. 독수리는 후각이 발달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시신의 냄새를 맡는다고 한다. 독수리들이 떼지어 공중을 배회하고 있는 곳은 십중팔구 천장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장지에 따라온 가족과 친지들은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를 하고, 시신을 독수리에게 내준다. 이때 장례를 집행하는 사람은 도끼질을 잘하는 사람이 맡는다.독수리들이 먹기 좋게 시신을 토막 내야 하기 때문이다. 설핏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꾼 것이다. 언젠가 여행했던 인도 라닥크의 꿈이었다.
--- p.306

불가에서는 삼라만상의 조화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헤어져야 할 사람은 같이 있으려고 애를 써도 헤어지게 되고, 만나야 할 사람은 의도적으로 멀리해도 결국 만나게 된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인연도 운명인 것이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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