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은 시각적 특성이 강한 탓에 매우 상징적이고 은유적입니다. 보는 사람마다 똑같은 느낌으로 읽히지도 않을 것이지만 그렇게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전문가적 시각이 필요 없습니다. 기도의 힘, 그러니까 “이루어진다”고 믿고 의지하고 지니면 그만입니다.
--- p.8
고가의 부적이 더 영험을 발휘하지도 않을 것이고, 절대 열어 보지 말아야 하는 기묘한 느낌에, 뭔가 떨떠름한 느낌을 주는 부적 또한 더 나은 부적이 아닐 것입니다.
--- p.24
네가 점을 보겠다고? 22살? 집에 가. 우리 이런 거 하지 말자.
네? 저 직장인이예요. 돈 있어요. 그냥 해 주시면 안 돼요?
응 안돼 가, 너무 어려.
네?
그니까 너가 한 사십 정도 되고, 아님 닳고 닳아 더 이상 닳을 생애도 없으면 그때 와. 아니면, 너의 세상을 살다가 그 모든 이들이 너를 배반하여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그때 와도 늦지 않아. 너무 어려 그냥 가.
--- p.44
굿이 끝나고 나면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그건 언젠가는 행해야 할 내 부모의 일이기도 하고,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신명을 올리며 울며불며 진오귀굿을 해야 하는, 나를 생각하면서 나온 감정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준비 없이 떠나보낸 자식들과 주변 이들은 눈물과 후회가 애도의 전부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적인 보냄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의식으로 ‘지금은 존재 하지 않음’ 하지만 ‘ 언제나 우리 마음속에 있음’을 받아들입니다.
--- p.95~96
그녀의 친구는 술이었기에, 사람이 친구를 만나 인사하고 안부를 묻듯이 다시 술을 찾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그녀에게 술을 먹으라 먹지 마라 말하던 내가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 나는 이렇게 먼저 말했어야 했습니다.
“엄마, 친구가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엄마는 잘살았고 잘 살았어. 엄마, 사랑해”
--- p.108
자본주의 사회에 등장한 화폐, 그리고 그 총아 신용카드야말로 무적의 부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제의 내가 쓰고 오늘의 내가 내역서에 놀라고 미래의 내가 리볼빙으로 갚는 무한 반복의 순환. 나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옭아맵니다. 물질 만능의 사회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신용카드는 ‘만세 적갑부’에 비견되는 만사 형통부 같습니다. -중략-
알게 모르게 우리는 자본주의 욕망이 응집된 주술들 속에 살고 있습니다. 부적을 가진 우리 마음이 그러하듯 부적에게 나를 내어주진 마십시오. 나는 부적의 주인이고 나는 나에게 용기를 주고 기도의 힘으로 더 강해지는 것이지 강해진 그 어떤 힘에 좌우되진 않습니다. 매혹되더라도 즐기십시오, 전전긍긍하지 마세요.
--- p.155
반면에 목소리만 들어도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더 정확히 말해 한 사람이 끝까지 희생을 하고,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말아야 같이 살 수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별이 코앞에 다가온 사람들입니다. 이미 도장만 찍으면 끝날 사람들, 이혼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의뢰하는 손님을 두고서 만신의 입에서 이혼을 말해야 하는 그때, 그때 내놓는 첫마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버티셨어요, 정말 잘 하셨어요. 이제는 그만 애쓰셔도 되어요.”
--- p.178~179
“돌아가셨다고 연락 온 게 아니잖아요. 생사를 오 가시는 거지. 정신 똑바로 차려요!”
불호령을 내립니다. 그리고 잠시만 모두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부탁합니다. 우선 지금 내가 죽음의 문을 여신다. 다시 여기 세상으로 오신다고 점사를 보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 p.194~195
사실 더 주의해야 할 상황은 해외여행 후 귀국할 때입니다. 공항은 사람들로 붐비는 그만큼 많은 영가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처음 들으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제 경험상, 동남아시아의 경우 이런 믿음이 강한 이들이 많다 보니, 공항 주변에 물건을 숨겨놓고 이를 만지거나 건들게 하여 액풀이를 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 p.204
수백 명의 자살한 망재를 만나면 그 중 딱 한 명이나 될까, 하는 영가분만이 죽음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정말로 죽음으로 무엇을 증명하려 했거나 혹은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했던, 그런 특별한 상황일 때가 많습니다. 그 외에는 백이면 백 모두 자살한 자신을 원망합니다. 자신을 알아주지 못했던 그 당시의 주변 상황을 원망합니다.
--- p.207
다리 난간을 붙잡고 섰습니다. 깜깜한 마음에 밝아 보이는 저곳으로 몸을 던지고 싶지만 여러 얼굴이 눈앞에 떠올라 쉽지만은 않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해봅니다. 하지만 우울할 때 전화하라는 곳에서 전화를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계속 통화중입니다. 절망스럽습니다.
-중략-
제발, 이제, 그만 죽어요, 부탁할게요.
감히 말하겠습니다. 부디 길이 없다는 그 마음을 넘어 다른 길을 찾아낼 당신을 응원하고 있는 이름 모를 한 ‘인간’이 그래도 여기 서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p.213~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