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는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과 삶을 ‘인간’과 ‘미래’라는 두 키워드로 살펴본다. 전시 제목인 ‘인간미래’는 인간의 미래, 미래의 인간, 인간과 미래 등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표현의 자유와 억압에 대한 저항을 담은 일련의 작품은 예술가로서, 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기본적인 권리를 요구한 것이다. […] 아이 웨이웨이는 현재의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고 체념하지 않고 부당한 상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행동을 통해 상황을 변화시켜왔다. 즉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생각하고 꿈꾸고 현실로 만든다.
--- p.12, 「이수정, 「기획글-인간미래」」중에서
권은영: “망망대해를 무릅쓰고 배 위에 오르는 난민의 심정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것 같습니다. 〈빨래방〉(2016) 작품을 통해, 난민촌 구성원들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저는 신발 오브제에 눈길이 갑니다. 〈빨래방〉 작품을 진행하시면서 에피소드가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이 웨이웨이: “저는 2015년부터 난민 문제에 참여를 해왔습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저희는 난민에 관한 두 편의 영화인 〈유랑하는 사람들〉(2017)과 〈남겨진 사람들〉(2019)을 제작했고 2019년까지는 여전히 〈로힝야〉(2021)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3-4년 동안 저희는 20개가 넘는 나라들과 가장 큰 난민촌 40개 이상을 방문했으며 6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습니다. 난민에 대한 역사적이며 현실적인 관찰을 통해 저는 인류 전반에 대해, 그리고 비참함과 인간 본성에 대한 배웠습니다. […] 현재 난민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비참하지만 전 세계는 이 문제를 못본척 하고 있습니다.”
--- p.24~25, 「권은영, 「아이 웨이웨이와의 담화」」중에서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에는 종종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특히 전통 공예품을 소재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초기작인 한대(漢代) 도자기를 떨어뜨리는 장면을 촬영한 세 컷의 사진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Dropping a Han Dynasty Urn)〉(1995)는 큰 반향을 불러온 작품이다. […] 아이 웨이웨이는 제작 당시 본래 자신의 카메라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언급했으나 고대 도자기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촬영한 사진은 사람들에게 의외의 큰 반향을 일으켰다.
--- p.162~163, 「정창미, 「시공(時空)을 초월한 끊임없는 외침」」중에서
아이 웨이웨이의 온라인 활동은 동시대 예술의 중요한 실천이 되는데 이는 블로거로서 그의 주관적이고 즉자적이며 반예술적인 태도가 진실의 붕괴, 정보 불균형, 예술적 전통의 종말이라는 당대의 부정적 조건들에 대한 ‘모순적 규범’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 진실을 향한 투쟁은 아이 웨이웨이의 삶과 예술을 규정하는 목표이지만, 자신의 현실을 “생산적인 현실”이라 부르며 “우리는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오브리스트, 2011)고 말하는 아이 웨이웨이에게 진실은 종종 가공되고 생산될 수 있는 어떤 것처럼 보인다.
--- p.173~174, 「최종철, 「아이 웨이웨이의 탈진실(post-truth)적 예술 그리고 ‘파레시아’」」중에서
아이 웨이웨이의 활동은 예술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정치적 행위 또는 정치 문제에 도전하는 예술 행위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정보의 전달과 예술적 감수성 사이의 대립이다. 정부가 이러한 ‘유사 정치 사건’적 예술행위를 ‘정치 사건’으로 문제삼는 바람에 사회는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웨이웨이는 서양이 주도하는 가치체계와 중국의 사회 정치 현실의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열어가며 독특한 관점을 창조했다. 다른 지역의 예술 영역에서는 아이 웨이웨이의 이와 같은 독특한 관점이 나타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 p.183~184, 「황 치엔훙, 「난민이 된다는 것: 아이 웨이웨이의 민주적 예술」」중에서
아이 웨이웨이의 예술은 동시대 정치에 반응하고, 정치적 과정에 개입하며, 이러한 정치에 의해 위험에 처하거나 배제된 사람들을 옹호하기 때문에, 그리고 가장 저급한 이유들로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공개하는 것에 작가가 변치 않는 관심을 보여주기 때문에 정치적이다. 파사드 설치 작업, 그리고 블로그에서 트위터, 인스타그램에까지 이르는 가상 플랫폼의 빈번한 사용은 모두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그의 노력을 나타내며, 이는 그가 〈유랑하는 사람들〉의 예에서와 같이 영화 등의 미디어에 기대어 소셜 미디어 중독자부터 박물관을 지나는 사람들, 영화의 관객에 이르기까지 더 많은 청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과도 상통한다.
--- p.195, 「프리데리케 시글러, 「아이 웨이웨이와 삶의 정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