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중심으로 삼아 한반도의 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가장 꼭대기인 제주도에서 시작하여, 전북 군산과 충청도 홍성, 대전 및 대구와 부산, 서울, 인천 등지를 돌면서 현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학인들을 만났다. 또한, 직접 방문하지 못한 지역의 문인들은 전화를 통해서 만났다. 물론 갈수록 심각해지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토막토막 여유를 내면서 돌다 보니 약 이십여 일이 넘게 걸리는 제법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을 고려하여 될수록 너덧 명 이하의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도리어 속 깊은 이야기들을 제대로 나눌 수 있었다.
이처럼 전국의 문학과 문인들을 찾아서 떠도는 것은 개인적으로 그래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랬다. 직선제로 선출하는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후보에 출마하기 위하여 사전 탐방을 통한 문인들의 문심(文心)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지만 지난 주말에 진행된 광주전남작가회의 2022년 정기총회를 통하여 남도의 작가들을 만나면서 사실 이번 문학여행 내지는 문학답사의 종지부를 찍다 보니, 문득 그동안 내가 몸담아 왔던 남도문학의 위상은 어디쯤일까? 또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내 안으로 부터의 의문으로 떠올라왔다.
일찍이 「한국문학의 위상」을 짚었던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은, 아무래도 근대라는 이상과 서구문학의 틀 안에 갇혀 한정되고 일방향적이었던 당시 한국문학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참되고 아름다운 문학은 작가 자신이 그와 그가 속한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생겨난다.”라는 것을 사적인 맥락에서 밝혀내려고 하였다. 이는 그동안 주로 문단사, 논쟁사, 잡지사 등의 성격을 띠고 있던 기존의 문학사를 체계적으로 극복해내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그는 여기에서 문학의 역할과 기능을 ‘어릴 적 경험을 바탕으로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지 않으며 쾌락을 일깨우는 원초적 반성이자 깨달음’이라고 주장하면서, 문학이 ‘인간을 억압하는 부정적인 것의 정체를 파악하여 그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고 하였다. 이를 다시 말하면 ‘문학은 인간을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여 부정적인 힘을 인지하고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하여 결국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이처럼 지난 70~80년대의 한국문학의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였던 사회적 상황을 우리가 아는 그대로 고려해보면, 그가 유독 ‘인간과 억압’에 주의했던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또한, 그러한 지점에서 2020년이라는 시점과 남도라는 지역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문학의 위상은 ‘인간과 억압’보다는 ‘인간성의 발현 또는 발양’의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온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회적 상황과 문학적 내용도 많이 진전되었다. 충분한 민주주의 사회의 진전과 더불어 나름대로 충만한 지방자체제도가 실행 중이다. 또한, 각종 문학 제도와 행사 그리고 기반시설 및 문학 매체들은 물론 문학인들도 사실 넘쳐나고 있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기념하여 매년 전국문학행사로 진행되는 오월문학제를 비롯하여 격년으로 진행되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 유수한 작가들을 배출한 장흥지역의 ‘장흥문학특구포럼’ 그리고 작년부터 대규모로 진행되는 ‘목포문학박람회’는 물론, 남도 출신의 주요문인들을 기리는 ‘조태일, 김남주, 김현, 고정희, 영랑문학제’ 등 전국 단위의 문학제들이 줄줄이 열린다.
광주문학관을 비롯한 각종 문학관의 건립과 함께 5.18문학상과 조태일, 송수권, 고산, 영랑문학상은 물론 무려 1억 원이라는 국내 최대의 상금을 수여하는 목포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처럼 문학의 사회적 형식과 제도적 측면에서의 넘쳐나는 남도문학의 내용을 채워서 전국으로 유통하는 문학매체 역시 종합문예지 계간 『문학들』과 시전문지 계간 『시와 사람』 등에서 충분히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작금의 남도문학의 위상을 결정하는 일은 결국, 참되고 아름다운 문학을 이룩해내기 위해서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남도라는 지역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이를 문학으로 발현하고 발양 해내야 하는 작가들의 몫으로 온전히 남는다. 배부른 이들의 입맛이 더욱 까다롭고 또한 허망하듯이 면밀하고 성실한 성찰이 필요한 대목이라 여겨진다.
---「남도문학의 위상」중에서
목포에서 매년 진행되는 김현문학축전을 매개로 지난 15년 동안 모은 글들을 묶어서 책으로 펴낸다. 무엇보다 먼저 기록하고 보존하자는 아카이빙(archiving)에 더하여, 이를 문학적인 시각에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엔솔로지(anthology)의 형식을 밟아서 『남도문학에 스민 김현』이라는 제목으로 간행한다.
책의 제목에서 여실히 드러내는 것처럼 전남 진도에서 나서 목포에서 성장한 남도 출신의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을 매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도문학과의 접맥을 통하여 서로 스미듯이 문학적으로 융합해보자는 취지가 그대로 담겨있다.
사실 매년 진행되는 추모문학제가 쉬운 일은 아니다. 생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를 축제로 보는 남도의 문화전통에 따라서 「김현문학축전」이라고 일찌감치 명명해서 진행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매년 같은 ‘문학’이라는 장르에 더하여 ‘추모’라는 형식으로 구성된 행사의 내용은 말 그대로 진부해지기 십상이다. 여기에 더하여 중앙문단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활동했던 김현 선생의 문학 행보를 고려하여 전국 단위의 행사 범주를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특히, 매년 같은 행사를 비슷하게 반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그와 함께 목포에 소재한 김현문학관이라는 지역 공간을 중심으로 남도에서 활동하는 문인들이 우선 최일선에서 진행하는 행사의 취지상 덧붙여있는 남도지역 문학 발흥이라는 목적을 우선해야 한다. 즉, 김현을 추모하고 이를 통해 그의 문학을 기리되 목포를 비롯한 남도문학과의 접맥을 통해서 새로운 문학적 진흥을 꾀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남도의 동향 출신 선배 문인을 추모하고 현창함에 있어서 그저 제도적으로 기리거나, 행사로서 소비하지 말고, 문학 하는 후생의 입장에서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서로 진화하는 문학적 내용으로 만나야 한다는 본래적인 문학의 내면에 잇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난 15년 동안에 걸쳐 행사를 진행하는 지역의 문인들은 사실 매년 고심을 해왔다. 책에 골라서 담긴 시인, 작가들이 100여 명에 이르면서도 사실 많은 문인과 작품들이 예산과 책의 분량을 고려하여 배제되었다는 양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거니와, 특히 문학평론과 심포지엄 등에서 제출된 문학적 의제와 담론들은 남도라는 공간과 끊임없이 흐르는 당대의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0년에 5·18 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맞이하여 「김현과 5·18」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김현이 자신의 문학의 두 갈래 뿌리 중에 하나로 여겼던 5·18의 아픔에 대한 심도 깊은 인식의 근거와 현실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흐름 등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파괴와 억압으로 점철되는 현실에 대응하는 문학의 내면과 실체를 확인함과 아울러 ‘무한텍스트로서의 5·18’을 호명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는 어쩌면 남도에 스민 김현문학이 피워낸 한 송이 꽃봉오리가 아니었나 여겨진다.
이처럼 진화하는 김현문학을 통하여 남도문학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지역 공간으로서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문학적인 협소함을, 도리어 특성화된 고유의 문학적 지향과 내용으로 전환하거나 역발하는 계기가 충분히 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하나의 계기가 이번 도서의 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의 성격을 붙임에 있어 ‘아카이브 엔솔로지’라는 거듭된 외래어의 사용과 더불어 모든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수용하지 못한 미안함과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작년에 모든 행사 작품을 묶은 소량의 「김현문학축전 아카이브 결과물」을 제작하여, 그 기록과 보존은 이미 완료했음과 아울러 후일의 작업으로 이어질 약속으로 이를 대신하며 무마하기로 한다.
‘진정한 문화란 이러한 정직한 태도의 소산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신을 안일하게 하는 모든 힘에 대하여 성실하게 저항해나갈 것을 밝힌’ 김현의 문학정신은 그대로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유효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남도문학에 스민 김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