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위해서, 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죽음을 바란다. 하루라도 빨리 그들이, 언젠가부터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이 끔찍한 나날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죽은 다음에도 변함없이, 그리고 영원히 어머니를 사랑할 것이며 내가 있게 될 그곳에서 어머니를 보살펴드리겠다고 나는 종종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가 나를 필요로 할 때마다 나는 늘 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의 어깨에 내 머리를 뉘일 거라고. 하지만 그게 한낱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기간 동안 내게는 할 일이 생겼다. 내 주변 사람들이 앞으로 내 죽음에 익숙해지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마음의 준비를 하신 것 같았다. 하여튼 그렇게 생각한다고 어머니 자신이 말했다. 또 어머니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기를 나는 무엇보다도 바랐다. “그 후”에 대해서도 가끔씩은 생각해보신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어제도 우리 둘은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뱅상, 내 인생도 그 날 2000년 9월 24일 꺾여버렸단다. 네가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나도 기쁠 거야. 네가 그걸 바랬으니까. 그렇지만 자식을 잃은 어머니로서 어떻게 비통한 마음이 없겠니? 많이 슬프겠지. 하지만 널 영원히 사랑할 거야. 앞으로도 영원히 넌 내 아들이니까. 네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리고 우리 둘이 함께 했던 이 시간들이 몹시도 그리워지겠지. 네가 가버리고 난 뒤의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살아갈 힘이 남아 있을런지도...”
그때 어머니는 너무 많이 우셔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이 가볍게 떨려왔다.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 안아주셨다. 내 병실 안에 드리워진 긴 침묵이 그 순간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어머니에게로 뻗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어머니는 슬픔을 억누르고 내게 알파벳을 불러주었다. 어머니는 평소와는 달리 글자들을 잘 찾아내지 못하셨다. 하지만 결국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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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보다 많은 걸 바란다. 내가 바라는 건, 환자가 결코 회복될 수 없다는 진단이 떨어졌을 때, 그가 자연사에 근접하게 생을 마칠 수 있도록 의료 환경 내에서 어떤 지침 같은 것들이 정해지는 것이다. 말하자면, 나처럼 이미 죽음에 문턱에 이른 환자들, 즉 몇 시간 혹은 몇 날 동안의 집요한 소생작업 끝에 결국 식물인간이 되어 깨어나는 이들을 소생시키는 일 따위는 그만 두는 것이다. 모든 기능이 정지된 무기력한 육체, 뇌 기능만이 살아 움직이는(이때 뇌 역시 심각하게 손상되어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육신 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식물인간으로...
그 당시 나는 죽은 거나 매한가지였다. 사고에 의한 죽음이긴 했지만 자연사에 다름없는 죽음이었다. 너무나도 짧은 삶이었지만 기쁨과 희망과 미래의 계획들로 충만했던 내 삶은 그때 끝났다. 그리고 나는 죽음을 미리 맛보았다. 아홉달 동안의 혼수상태로 계약 기간은 종결되었고, 그에 대한 마지막 보너스처럼 내게 한 조각의 삶이 주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 허울뿐인 삶을 지탱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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