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고 잘못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 대해,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으면서도 혐오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자연스러운 표현은 방어적이거나 공격적이지 않은 것으로, 오히려 회피의 반응이다. 무언가를 보고 혐오를 느낀다고 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시각이나 촉각, 후각이나 미각을 통한 접촉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청각은 아니다). 어떤 악취가 났을 때 당신에게 아무런 해가 없을 거라 느껴도, 그리고 악취에 대해 (또는 악취 나게 만든 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그 냄새에서 벗어나고자 거리를 두려 할 것이다.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건 일반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에 대한 이성적 반응은 아니지만, 혐오 자극을 피하려 하는 것은 완벽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사실, 단지 두려움에 직면하여 그렇게 한다고 하는 것은 두려움과 혐오를 혼동한 것이다).
--- p.15~16
한때 팽팽하고 단단했던 피부는 느슨해지고, 처지며, 주름지고, 접혀진다. 겉으로 드러났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나이 들어 육체가 노쇠해지자, 종이처럼 얇아진 피부 껍데기에 대해 눈은 혐오를 느낀다. 여기서 우리는 내면에 있는 영혼의 성숙과 병행하여 훌륭하게 성숙해지는 징후를 보는 대신, 마치 육체와 피부가 우리를 배반하고 타락해 버렸다는 듯이, 혐오와 우울한 감정을 쉽게 겪는다. 그것은 그리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혐오를 만지기보다는 피하고 싶어 한다. 어떤 지역에서는 못생긴 노파가 바로 혐오의 정점에 선다. 혐오의 반대편에 있었던 그녀였는데 이제 나이라는 것이 그녀를 혐오의 아바타로 바꿔놓은 것처럼 말이다. 특히 가슴은 끔찍한 강등을 겪는다(한때 가운데가 쏙 들어갔었던 남성의 배가 중년이 되어 불룩해지는 것과 유사한 비유가 된다). 혐오와 나이는 가차 없이 함께 간다. 그리고 피부는 신뢰할 수 있는 시간 측정기로 작용한다.
--- p.31
당신 자신 몸의 노폐물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사람 노폐물을 대하는 태도를 비교해 보라. 당신의 똥 냄새는 다른 사람들 똥 냄새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우리 목록에 있는 다른 항목의 혐오 특성도 마찬가지이다. 더러운 손도 자신의 손이냐 아니면 타인의 손이냐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이끌어낸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역설이다. 당연히 당신 자신의 몸이 다른 이의 몸보다 당신에게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손에 더러운 것이 이미 묻으면, 이는 내 몸의 다른 쪽으로 옮겨 가기 쉬운데, 말하자면 입 같은 곳에 쉽게 묻을 수 있다. 그런데도 나는 특히 당신이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면, 당신의 더러운 손에 훨씬 더 집착하게 된다. 이는 마치 내 더러움이 당신의 더러움보다 더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 p.63
우리는 죽음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고 혐오감은 그 반감을 둘러싼다. 우리는 죽음을 거부하던 습관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죽은 것이 눈앞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사라지길 원한다. 죽음 이론은 또한 대변의 형태와 소화 과정에서 두 번째 주요한 의미의 승리를 거두는 것으로 보인다. 소화가 죽음의 매개물 외에 무엇을 위해 존재하겠는가? 우리는 살아 있는 조직, 식물 및 동물을 먹는다. 그리고 이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이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똥은 사실상 우리가 이전에 섭취한 유기체의 시체인 것이다. 우리는 죽이지 않고는 살 수 없고, 그것에 대한 증거는 우리 삶에 매일 나타난다. 소화는 죽음의 공장이다. 우리는 이 파괴 과정에 혐오감을 느끼며, 그 과정의 마지막 산물은 그 이전의 죽음을 자극적으로 상기시킨다. 똥은 삶에 필요한 죽음을 의미한다.
--- p.101
여기 흥미로운 사고실험이 있다. 여러분이 우리의 점액, 귀지, 그리고 혈액과 화학적으로 동일한 물질이, 현실 세계에서 그것들의 역할과 아주 다른 역할을 차지하는 세계에 산다고 가정해 보자. 점액 물질이 나무에서 수액처럼 스며 나오고, 귀지 물질이 사과의 심에서 생겨나고, 혈액 물질이 강과 대양에서 흐르는 세상. 이 세상에서는 이런 물질들이 코나 귀나 몸속에서 생겨난 적이 전혀 없어서, 이 세계의 거주민으로서 여러분은 그런 것들에 대한 개념도 없는 것이다. 또한 “점액”과 “귀지” 물질들이 상상의 세계에서 영양 특성을 입증했고 그리하여 쉽게 매혹적인 요리법에 포함될 수 있다. 아마도 그것들은 심지어 어떤 질병을 예방할지도 모른다. 혈액 물질은 수영과 서핑을 할 훌륭한 기회를 제공하고, 또, 특히 시원하게 식히고 향신료를 가했을 때 원기 회복 음료수로 마실 수도 있다. 이제, 여러분은 저 가능세계 안에서, 이러한 물질에 대해, 여러분이 현실 세계 안에서 그렇듯이 혐오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생각하나? 필자 생각에는 그러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것들의 실제 혐오 가치가, 상상 세계 안에서는 폐지되어 버린, 사-중-생 연계 속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물질들은 상황의 맥락 속에서만 혐오감을 주는 것이다.
--- p.122~123
우리가 지금 성기로 알고 있는 부분과 불편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그 아래쪽에서 마치 내부의 뭔가가, 탁 트인 밖으로 나오기를 몹시도 원하는 것처럼 이상한 압박감이 드는 것이다. 어떤 이상한 징조가 느껴지면서 매우 볼썽사나운 뭔가가 막 터져 나오려고 하는 그 압박감으로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지금껏 즐겨왔던 벌거벗은 모습이 갑자기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듯 여겨졌다. 아무리 저항하려 노력해도 그 압력은 꾸준히 증가했고 마침내 압도적인 것이 되어, 악취가 나는 갈색 물질로 가득 찬 거대한 덩어리들이 새로운 종족인 포식자의 아랫도리에서 떨어져 땅에 튀어 올라 왔다. 일부는 덩어리져 있었고 또 어떤 것은 물기가 매우 많았는데 그 모든 냄새는 하늘 높이 찌르며 올라오고 있었다. 동시에 가스 분출과 함께 방귀 소리가 만들어내는 기괴한 교향곡은 공기를 타고 흐르며 다시 더러운 방출이 이어지고 이제 두 다리 아래로 흘러 타고 내려가 땅에 많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전반적인 사태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 인간은 그렇게 더러운 것은 본 적도 상상한 적도 없다. 갓 만들어진 그들 몸에서 그것들이 줄줄 흘러내리고(어떤 경우엔 발사) 있는 것이다! 그들 중 충격과 어리둥절함을 느낀 어떤 이들은 몸 중간 부분부터 분출되는 또 다른 새로운 감각을 느꼈는데 이윽고 그들의 벌어진 입에서 구토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 그래서 처음으로 혐오의 감정이 느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 번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거의 매일 24시간마다 되풀이되었다.
--- p.182~183
만약 혐오가 없었다면 우리는 욕망에 따라 행동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억압이 없었다면 혐오가 우리를 압도했을 것이다. 억압은 우리가 혐오감에 압도당하는 것을 막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혐오가 금지하는 욕망을 위한 길을 열어준다. 혐오가 없었다면, 우리는 과도한 욕망으로 압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억압이 없었다면, 우리는 혐오로 압도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억압을 마련하면, 혐오감을 약화시키는 힘이 약해지기 때문에 우리가 욕망에 압도되기 쉽다.
--- p.199
사랑에 대한 가장 큰 도전은 역겨운 특성들을 무시하거나 제외시킬 수 없을 때, 즉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 곁에서 (소위) 대소변을 지리거나 눈에 띄게 고름을 흘릴 때 발생한다. 그때 우리는 사랑이 혐오감을 압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그것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지향적 대상으로부터 역겨운 특성을 단순히 제거하는 일반적인 속임수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업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랑(특히 로맨틱한 사랑)을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로 만들 수 있는 후자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위대한 영웅주의, 결단력 또는 강인한 성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신이 그 속성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은 역겨운 것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사랑은 상상력의 선택으로 가능해진 억압에서 번성한다.
---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