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 여파가 경기도 수원시에 있는 우리 집에서도 느껴졌을 때, 안방 거울이 울렁울렁하고 움직였다. 그때 내가 자연스레 떠올린 것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의 모습이었다. 경주 지진은 잠깐 울렁대는 정도로 끝났지만, 안전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가신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책장의 책과 한 번도 써 본 적 없는 찬장의 유리컵들이 쏟아지면 어떻게 되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일본 쓰나미와 경주 지진까지 겪고 나서 그렇게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윤리적 최소주의자 소일’이라는 제로 웨이스트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2016년 9월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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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에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환경 문제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어떻게 손쓴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여기고 포기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중국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미세먼지로 뿌옇던 중국 하늘이 APEC 회의 기간 동안 푸른 하늘로 바뀌는 것을 본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19 기간 동안에도 익히 경험한 사실이다. 회색 하늘을 파란 하늘로 만드는 것을 보며 그것도 마찬가지로 사람의 힘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미세먼지를 없앨 수 있다, 노력하는 만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하는 작은 믿음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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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어떤 선물을 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예쁘고 화려하게 포장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한다. 초콜릿을 주는 날은 초콜릿을 포장하고, 빼빼로 데이에는 빼빼로를 포장하고, 생일, 크리스마스, 그 외 각종 기념일이면 선물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다양한 포장 기법을 동원해 선물을 포장하는 데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포장은 폭죽놀이처럼 반짝이는 순간이 지나면 100년, 200년 동안 썩지 않는 쓰레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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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편리함’ 하나를 빼놓고 생수는 좋은 점이 단연코 없다. 일단 친환경적인 면이 없다는 점에서 제로 웨이스트의 강적이다. 게다가 생수는 전국의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의 이름을 따거나, 직접 그곳의 물을 개발한다. 예를 들어 히말라야 어딘가의 물이 깨끗하다고 하면 그 물이 플라스틱에 병에 담기기까지 산을 깎고 공장을 지어 플라스틱 병에 담은 뒤 화석 연료를 이용해 운송한다. 여기까지 과정만으로도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소비하는데, 소비자의 손을 거쳐(심지어 뚜껑을 따다가 미세 플라스틱이 물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재활용으로 분리 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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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깨우는 모닝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 얼마만큼의 물이 필요할까? 한 컵의 물? 아니다. 자그마치 130ℓ의 물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모닝커피 한 잔이 남긴 ‘물발자국(water footprint)’이다. 물발자국은 원료 채취부터 생산, 수송 및 유통, 사용,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물이 소비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1㎏의 원두를 생산하기 위해 커피나무를 키우고, 열매를 수확하고, 원두를 볶아 유통하는 데 약 1만 8900ℓ가 필요하다. 1㎏을 기준으로 닭고기의 물발자국은 4,335ℓ, 돼지고기는 5,988ℓ, 소고기는 1만 5415ℓ다. … 다른 식품보다 훨씬 많은 물을 소비하는 것이 바로 커피다. 그만큼 환경에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는 점을 기억하자. 커피 한 잔은 아주 값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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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실, 냉동실에는 먹을거리가 가득 들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하게도 ‘먹을 만한’ 것은 없다.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를 우리는 ‘창고’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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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지인, 가족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들에게 내 선택을 실천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나처럼 해보라고 무언의 압박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하는 행동이 그들에게 공감을 불러일키는 것으로 시작이 된다. 내 행동으로 주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도록 만드는 일, 그것이 나의 실천으로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 된다. 어쩌면 세상은 발품과 손품으로 조금씩, 조금씩 바뀌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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