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파는 도시 한가운데서, 좀더 콕 집어 말하자면 도시 특유의 애매모호한 유혹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카페, 술집, 카바레… 그런 곳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타락의 온상, 아니스 술과 압생트가 사람들의 마음과 대화를 한껏 뜨겁게 달구는 곳, 수다쟁이는 자기 말을 기꺼이 들어줄 청중을 찾고, 고독한 사람은 가정의 환영을 보며, 예술가에게는 한없이 샘솟는 새로운 관찰이 가능한 곳 말이다. “원래 입체파 작품들 중 상당수는 빛이 투명한 유리잔과 술병을 통과하며 술집 카운터에 수많은 단면들을 비추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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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아폴리네르에게 월계수 잎에 글을 써서 보냈다. 그 월계수 잎은, 비어 있는 피아스코 술병과 햄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작은 방에서 그가 식사를 하던 중에 만들었던 ‘향기로운 건축물’의 잔재였다. “식탁은 파티를 위해서 꽃, 과일, 새우, 후추, 토마토, 오이, 가지, 양상추, 초록색 올리브, 검은색 올리브, 진보랏빛 올리브로 장식되어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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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일할 계절이 지난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화가는 부둣가의 탁자에 앉은 채 해산물들의 요란한 연회에 빠져들었다. 〈꼬리 잡힌 욕망〉의 한 등장인물은 그러한 연회를 찬양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음식들의 이국적이고 자극적인 풍미가 향신료를 친 요리, 날것 그대로의 요리에 집착하는 나의 미각을 바짝 돋우는구나.” 피카소는 성게와 조개류를 잔뜩 먹어치운 만큼, 그를 둘러싼 광경에 대한 눈요기도 실컷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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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은 판화 전용 아틀리에로 쓰였던 반면, 그림과 조각 작업은 집 안의 공간 어디서나 했다. 피카소는 그 자신이 직접 말한 바와 같이 “좀 과장하자면 치즈와 토마토 천지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곤 했다. “그림이 침묵 속에서 이루어지는 곳, 그림이 영원히 거하는 곳, 온 시대의 캔버스와 조각품들이 공존하고 서로 대결하는 곳―그렇게 그림이 깃들어 있는 곳”에서 말이다. “집이라는 건축물을 통해서 사람의 삶이 펼쳐지듯이, 삶은 아틀리에에서 펼쳐지고 아틀리에는 뼈와 살을 지닌 구체적인 일상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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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기 위해 죽어야 하는 그 시간들을 기리고 축하하기 위해서 지나치게 멋진 것은 필요치 않다. 엘렌 파르믈랭은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는 촛불을 켜고 높은 의자에 앉아 식사를 했다. 뭐든지 구경하고, 뭐든지 이야기하고, 뭐든지 토론하고, 뭐든지 축하했다. 식탁 위에는 작은 조각상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피카소는 매혹에 휩싸여 있었다. 지칠 줄 모르는 매혹에.” 또 한 번은 정원의 조각상들이 손님들과 파티에서 한데 어울렸다. 그때 화가는 “벽난로 불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들”에 둘러싸인 채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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