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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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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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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08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62g | 120*194*16mm
ISBN13 9791190999090
ISBN10 1190999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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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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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천둥으로 시작됐다. 하늘이 쪼개지고 벼락이 지상으로 떨어질 때의 소리. 구름과 구름이 맞부딪쳐 번쩍, 빛을 낼 때의 소리가 빙하의 끝에서 운의 발아래로 다시 한번 쏟아진다. 운은 고개를 들어 찰나의 순간, 공중에 머무는 빙하의 끝을,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캄캄한 하늘을 본다. 별은 보이지 않는다. 순식간에 빙하는 바닥으로 곤두박질할 듯하다가 금세 모양을 바꾸어 유려한 곡선을 그려낸다. 운의 눈앞에 몇 개의 언덕들이 솟아난다. 검푸른빛은 옥빛에 가깝게 변하고 천둥이 지나간 자리에는 관현악이 울려 퍼진다. 물의 춤. 시시각각 형태를 바꾸는 물의 움직임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아득하다. 더블베이스, 첼로, 바이올린, 클라리넷, 바순, 플루트의 소리가 언덕들의 움직임을 따라 점점 커지다가 일곱 개의 붉은 물기둥이 바닥으로부터 솟아오를 때 악기들의 소리를 뚫고 다시 한번 천둥소리가 울린다. 빙하가 쪼개진다. 물 언덕들은 보랏빛으로 바뀌고 빙하의 끝은 불규칙한 능선을 그리며 키가 큰 언덕
부터 빠르게 아래쪽으로 낙하한다. 흰빛이 바닥에 흩어진다.
--- p.12~13

과장 없이. 과장 없이. 현우는 많은 순간, 과장 없이 말하고 싶었고, 말하지 않고 듣고 싶었다. 현우는 지나치게 높은 온도를 지닌 소리들을 피하고 싶었다. 그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자신은 그렇게 순도 높은 감정을, 끝 간 데 없이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과장 없이. 낮은 음으로 울리는.
--- p.33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중요한 능력 중 한 가지는 ‘허구를 믿는 힘’이다.
허구를 믿는 힘.
(…)
사랑을 믿는 힘.
지탱하는 허구. 지속하는 허구. 고집하는 허구.
운은 자신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신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믿지 않는다.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중요한 능력.
--- p.51

움푹한 곳에서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돌아오잖아.
소리가 빠져나가지 않고. 마음이 머물 공간이 필요했어. 계속 흩어지니까.
--- p.87

마태오는 말이 없었다. 운은 마태오의 눈이 여전히 이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만 들여다보게 되면 눈은 어느 때나 거기에 머문다. 절망한 사람들의 눈빛은 무엇 앞에서도 바뀌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같은 것을 보고 있다. 그의 눈이 비어 있는 것은 그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잠들지 않고, 계속 들여다보고 있는 하나가 빛을 모두 빨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빛도 어둠도 시간도 삶도. 모든 것이 거기 있다.
--- p.101

하나의 기억이 있다.
하나의 기억은 연결되어 있다.
기억은 지식과 정보, 감각과 감정, 계산과 착오, 이해와 오해, 과거와 현재, ‘나’와 ‘당신’들로 둘러싸여 있다.
--- p.155

운은 이영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영이 사라진 이후 줄곧 맨몸으로 세상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운은 자신이 이영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영이 사라진 이후 줄곧 속이 텅 비어버린 기분이 든다는 것을 알았다. 운은 자주 맨몸으로, 속이 텅 빈 껍데기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다.
--- p.185~186

현우는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음들을. 보이지 않는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는 것 같은 음들을. 힘겹게, 그렇지만 계속 나아가는 음들을. 기도를. 기도를. 간절한 무엇을.
말 대신 전하고 싶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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