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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폭풍을 뚫고

강철 폭풍을 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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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498쪽 | 128*188*23mm
ISBN13 9791128892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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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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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투 행위가 나에게는 다른 별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이상하고도 연관성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사실 두렵지는 않았다. 적이 나를 보지 못한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어, 누가 나를 표적으로 삼고 있고 그래서 내가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동료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간 나는 태연자약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그것은 무식한 자의 용기였다.

2.

전장에 충만한 엄청난 파괴의 의지가 우리의 뇌에 응집되었다가 붉은 안개 속으로 발산되었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흐느끼기도 하고 더듬거리기도 하면서 말을 주고받았다. 이런 우리를 지켜보는 구경꾼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행복에 겨워서 그런다고 생각했겠다.

3.

내가 나타나자 그 사람은 움찔하며 크게 뜬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굴을 권총으로 가린 채 살의를 품고 천천히 다가갔다. 우리 만남은 증인 없는 피의 축제가 될 것 같았다. 드디어 적을 목전에 두게 되니 소원을 성취하게 되리라. 두려움에 마비된 그 사람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들이대고, 다른 한 손으로는 훈장과 계급장이 달린 그의 군복을 움켜쥐었다. 그는 아마 이 지대의 지휘를 맡은 장교였을 것이다. 탄식하는 소리를 내며 그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는데, 내 얼굴 앞으로 내민 그것은 권총이 아니라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그는 어느 테라스 위에서 여러 명의 식구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4.

이제 드디어 당한 것이었다. 총격을 맞은 순간에 이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모리 앞 국도 근처에서 죽음의 손길이 다가왔었는데, 이번엔 그 손길이 좀 더 단단하고 확실했다. 묵직하게 참호 바닥에 떨어진 나는 생명의 최후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순간은 내 인생의 몇 안 되는 정말 행복했던 순간들 중 하나였다. 그때 나는 번개의 섬광 속에서처럼 내 인생을 완전히 이해했다. 내 명이 바로 여기서 끝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놀라움이 느껴졌지만, 그 놀라움은 매우 유쾌한 것이었다. 그러자 마치 쏴쏴거리는 수면 아래로 돌 하나가 서서히 가라앉는 것처럼, 전투 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렸다. 저 심연에서는 전쟁도 적대감도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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