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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입술을 내밀고

붉은 입술을 내밀고

천년의 시-15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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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28*182*20mm
ISBN13 9788960217560
ISBN10 8960217565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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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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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까이 닿고 싶어
123층 타워에 올랐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발아래는
블럭으로 만든 장난감 세상이다

손을 뻗어
아파트 한 동쯤 내게로 옮겨도 될 듯하다
자동차는 정체된 거리에서
충혈된 눈을 깜빡인다.
먹이를 찾는 개미처럼 사람들은
도시의 지하로 사라지기도 한다.

높이 오르니 세상은 작아져서
그 작게 꼬물거리는 것들에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갖고 싶은 블럭을 찾아 저곳에서
울고 웃던 시간이 허허롭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읽어 내는 어른처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참 쉬워 보였다
--- 「블럭 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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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이번 시집 속에서 내가 특별히 주목한 시편들은 유년의 서사를 담은 것들이었다. 60, 70년대의 어둡고 쓸쓸한 생활의 세목(흑석동 연작 시편들)을 세필화로 그려 내고 있는 작품들은 소재들이 주는 인상과 달리 결코 칙칙하거나 어둡지가 않다. 그것은 시인이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대상과 세계에 대해 일정한 미적 거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소재들을 유화의 방식으로 진술하고 있는 시인의 작법이 가져다준 효과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시인이 거둔 소득이요, 성과로 상찬하고 싶다. 일찍이 T. S. 엘리엇은 현대시의 특징을 ‘감정으로부터 도피’라 한 적이 있는데, 자칫 센티멘털리즘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에 대한 심리적 거리두기에 성공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시인의 지난 연대의 깨끗한 가난에 대한 기억들은 흑백영화 같은 애틋한 정서와 달콤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 그것들은 문명의 이기에 속화된 일상에 반성과 성찰의 한 계기를 부여한다. 기타를 치며 [애니 로리]를 부르던 하숙생 오빠와 ‘명수대극장’ 간판장이 아저씨 같은 인물들을 소환하는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은 잃어버린 낭만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기쁨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이재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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