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는 장에서만 생기는 게 아니었다. 내가 몸을 소홀히 채우기 시작하자 장 말고 다른 기관에서도 자꾸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스무 살까지의 내 몸은 어른들이 만들어 준 몸이었다. 어른들이 성심껏 먹이고 재우고 가르쳐서 만든 몸. 그 이후의 나머지 몸은 나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받을 줄만 알았기에, 갑자기 주어진 자유 앞에서 나는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pp.22~23
“문제는 네 몸이 아니라 네 삶이야.”
그때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은 한마디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내 삶의 문제를 내 몸으로 퉁치고 싶었을지 모른다. 성인이 되어 너무나 급작스럽게 펼쳐진 자유에 대해서, 내 몸만큼이나 잘 돌봐야 했던 복잡한 마음에 대해서. 나는 그런 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겉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했다. 날씬해지고, 예뻐지면 삶의 나머지 문제마저 해결되리라 순진하게 믿었다.
삶이 그렇게 단순하다면 내 삶은 내가 수술대에 누운 그 순간부터 바뀌어야 했다. 주삿바늘이 꽂힌 횟수만큼 나아져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p.58
인간이란 동물은 시원하게 비우고 속이 편안해져야 그때 그게 참 맛있었다고 알게 된다. 만약 속이 꽉 막혀 체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화장실에서 속을 시원하게 비워 내는 일처럼 마음을 편하게 배출하는 일도 혼자일 때 가능하다. 그래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만난 우리의 표정이 개운해 보였던 게 아닐까. 요즘은 그때 일을 되새기며 의식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지려고 한다. 홀로 방에서 일기를 적기도 하고 명상 음악을 틀어 놓고 잠시 생각의 흐름을 멈춰 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비워진 마음속을 무엇으로 채울지 고민한다. 보통 ‘고마움’을 선택한다. 주변으로부터 받았던 애정과 배려를 잊지 않고 고맙다 느끼려 한다. 그렇게 하면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굳이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주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사람들과 잠시 떨어진 그사이, 그 공백 덕분에 오히려 나는 주변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낀다.
---p.74
그와 나는 함께하는 사람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외로움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외로움은 혼자일 때만 나타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오랜 기간 혼자일 수밖에 없던 나에게만 외로움이 덕지덕지 묻어난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모두가 외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연애하는 사람도,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도, 아이를 가진 부모도, 심지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에게도.
나는 그 사실을 A와 오랜 시간 동안 비집고 올라오는 냄새를 감추고, 묻고 또 묻으며 깨달았다. 그리고 감정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도. 그들은 불현듯 찾아오는 외로움을 꺼내어 시원한 바람도 쐬게 하고, 깨끗하게 씻어 다시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너무 뒤늦게 알아 버렸다. 우리는 사랑만 하면 외로움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외로움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여겼는데, 전제 자체가 잘못된 시작이었다.
---pp.122~123
힘들고 치열한 것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그런 게 낭만적인 것이라면, 낭만이 그렇게 힘든 것이라면 굳이 사랑에 낭만을 넣을 필요가 없다. 절박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다. 힘든 상황이 아니더라도, 매일 두 발 뻗고 기분 좋게 잠들어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
---p.127
혼자가 되기 싫어서, 그가 떠나면 더 공허한 상태가 될까 봐. 나는 그게 무서웠다. 그를 끊어 내면 당연히 찾아올 후유증이 두려웠다. 홀로 남겨져 수없이 자책하고 수없이 후회하며 되돌아볼 반성의 시간이 두려웠다. 후유증을 홀로 견뎌 낼 자신이 없어서 나는 중독처럼 그와의 관계를 다시 더듬거렸다.
하지만 중독은 결국 끊어 내야 극복할 수 있다. 아니, 끊어 내고 자책하고 반성하면서 결국 내가 잘못한 건 진작 끊어 낼 것을 끊어 내지 못했음에 있다는 사실에 도달해야 극복할 수 있다. 그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뎌 내야 비로소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p.162
그와 헤어진 어린 내가 대견하다. 그때의 나는 같은 자리에서 한없이 웅크려 있었다. 앞에 무엇이 있을 줄 몰라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최대한 웅크리고 머물러 있었는데, 그와의 이별 덕분에 나는 몸을 쭉 뻗어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나가고 보니 별거 없었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 내면 그만이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그토록 이별을 겁냈을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인 것을.
---p.171
‘지금이 좋아?’
나에게는 정말 필요한 질문이었다. 당연지사라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말로 뱉어 내는 건 또 다른 확신을 준다. 언니에게 대답할 때 내 말에는 당연하다는 마음과 확신이 있었다. 나 지금이 정말 좋구나. 내가 내 맘에 드는 것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런 내가 좋았다. 내가 좋으니까 실수를 해도 위로를 해 줄 수 있고, 작은 성공에도 기뻐해 줄 수 있다. 슬프면 무시하지 않고 마음을 안아 주고 슬퍼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나에게 좋은 걸 줄 수 있다. 그게 언니가 말한 제정신이 아닐까.
---p.193
영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상대의 뒷면을 굳이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의 그림자가 생기고, 그 그림자가 짧아졌다 길어졌다 밤이 되면 사라지듯 상대가 보여 주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갈등은 있을지언정 서로를 놓지는 않았다. 김도 역시나 그랬다. 진짜 어른들의 사랑을 보여 주는 내 지인들을 보며 나는 또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굳이 상처를 훈장처럼 내보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갖고 있는 단점을 캐내서 굳이 이별을 앞당길 필요도 없다. 단점은, 그림자는 언제든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때 치열하게 마주하면 된다. 아니 마주해야 알 수 있다. 우리의 그림자가 서로 이어질 수 있는지 말이다. 상대에게도 내 단점이 강력해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이 분명 올 테니 나도 단단히 마음을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공인인증서 비밀번호와 같은 신뢰를 마음에 품게 될 것이다. 그건 완벽하지 않은 인간들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해결책이다.
---pp.238~239
이 모든 건 내가 선택하고 내가 헤쳐 나간 길이다. 덕분에 나는 살았다. 내 인생은 내가 구했다.
나는 아직도 행복을 좇는다. 불행한 건 아니지만 내가 이룰 수 있는 행복이 더 있을 거란 희망이 있다. 그 행복이란 게 막 대단한 것도 아니다. 원고 하나 더 쓰는 것, 아침에 약과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게 오 분만 일찍 일어나는 것, 운동할 때 조금만 더 무거운 무게를 드는 것 등 아주 사소한 일들이다.
어렸을 때 행복이란 막연하고 대단한 건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내 행복은 손에 잡힐 만큼 작지만 소중하고 귀한 것이었다. 이 작은 행복을 내 마음에 하나씩 쌓아야 비로소 행복한 내가 완성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불행이 찾아왔을 때 쌓아 왔던 나의 행복만이 나를 다시 위로 올려 준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내가 만든 내 행복들이 나를 점점 위로 올려 준다.
가끔 인생의 밑바닥 혹은 그 언저리에서 자신을 건져 내 줄 무언가를 찾는 사람들 혹은 빠져나온 그 공을 타인에게 돌리는 사람들을 본다. 하지만 그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내 인생은 내가 구하는 거다. 당신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고마워하는 것처럼 자신에게도 고마워하라고, 지금 잘되고 있는 거 모두 당신, 자신 덕분이라고 말이다.
---pp.274~2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