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인지도. 나도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모친 사망. 내일 장례식. 삼가 애도함.’ 그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어제였을 것이다.
(15쪽)
엄마의 관 위로 뿌려지던 피처럼 붉던 흙더미, 그 속에 섞여지던 풀뿌리들의 흰 속살, 더 많은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끊임없이 툴툴거리던 엔진 소리, 버스가 빛의 둥지인 알제로 들어서고, 이제는 드러누워 열두 시간 동안 잠을 잘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의 나의 기쁨.
(34쪽)
창가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지만 공기가 서늘해서 좀 추웠다. 창문을 닫고 되돌아오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식탁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램프와 빵조각이 흩어져 있는 식탁. 언제나처럼 또 한 번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것이고,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42쪽)
“자넨 젊어, 자네에겐 그런 생활이 구미가 당길 것 같은데.” 그렇긴 하지만, 사실 내게는 그나저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생활에 변화를 주는데 흥미를 느끼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들은 결코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어떤 경우의 삶이든 그 나름의 좋은 점이 있으며, 여기서의 내 삶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언짢아하면서, 나는 언제나 삐딱하게 대답을 하고 야망도 없어서, 비즈니스에는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일하기 위해 자리로 돌아왔다. 그를 언짢게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결코 내 삶을 바꿀 하등의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되돌아 생각해 봐도 나는 불행하지 않았다. 나도 학창 시절엔 그 같은 큰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학업을 포기해야 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게 현실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이다.
(64~65쪽)
저녁에 마리가 나를 보러 와서는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듯이,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왜 나랑 결혼을 하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제안한 사람은 그녀였고 나는 그러자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거라고.
(65쪽)
모든 것이 휘청거린 건 바로 그때였다. 바다로부터 무겁고 뜨거운 입김이 실려 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뿜어 대는 것 같았다. 나는 온몸이 긴장했고,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그러쥐었다. 방아쇠가 당겨졌다. 나는 권총 손잡이의 매끈한 배를 느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날카롭고 귀청이 터질 듯한 소음과 함께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햇볕을 떨쳐 버렸다. 나는 내가 한낮의 균형을, 스스로 행복감을 느꼈던 해변의 그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미동도 않는 몸뚱이에 네 발을 더 쏘아 댔고 탄환은 흔적도 없이 박혀 버렸다. 그것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노크 같은 것이었다.
(86~87쪽)
확실히 나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은 많이든 적게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소원한다. 여기서 변호사는 내 말을 끊었는데, 매우 흥분한 듯했다. 그는 내게 심리를 받을 때나 예심 판사 앞에서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93~94쪽)
그럼에도 감금 초기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해변으로 가서 바닷물에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발바닥 밑에서 일렁이던 첫 파도 소리, 물속에 몸을 담그는 것, 거기서 느꼈던 해방감을 떠올릴 때, 불현듯 내 감방 벽들이 얼마나 나를 압박하고 있는지를 실감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몇 달간만 지속되었다. 이후로 나는 수감자로서의 사고만 가지게 되었다.
(108쪽)
나는 정말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울고 싶은 바보 같은 충동을 느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미워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24쪽)
엄마는 종종 사람이 결코 전적으로 불행해지는 법은 없다고 말을 하곤 했다. 나는 감옥 안에서, 하늘이 물들고 새로운 날이 내 감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면, 그 말에 동의하곤 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내가 발걸음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을 테고, 그러면 내 가슴이 터져 버렸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154쪽)
“아니야, 나는 자네를 믿을 수 없네. 나는 확신하네, 자네도 한번쯤은 다른 삶을 원했었다는 걸.” 나는 물론 그랬다고 답했으나, 그것은 부자가 된다든가 헤엄을 매우 빨리 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좀 더 잘생긴 입을 가지게 되기를 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내 말을 저지하고는 내가 그리는 다른 삶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소리쳤다. “이 삶을 기억할 수 있는 그런 것이오!” 그리고 곧장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내게 하느님에 관해 말하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에게 설명하려 했다. 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하느님 때문에 그것을 잃고 싶지 않다고.
(162쪽)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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