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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걷는 여자

매혹시편-0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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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28*205*7mm
ISBN13 9791197947469
ISBN10 1197947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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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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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늦은 밤, 눈 그렁그렁한 여자가 막차를 기다리고 있다. 여자 곁에는 어둠만이 장막으로 쳐져 있다. 차는 오지 않는다. 여자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린다.

2.
영웅 서사는 모든 이야기의 뼈대라 할 수 있다. 영웅이 태어났으나 운명은 등에 낙인되어 자신은 볼 수 없다. 그는 남과 다르다. 그는 배척당하고 자책하면서 어디 있는지 모를 부모를 원망한다. 그는 떠난다. 세상을 떠돌며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동안 그는 자신의 등을 비춰 본다. 영웅이 된 그는 세계와 화해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기 미친년 서사가 있다.

3.
광인은 남과 다른 사람이다. 오래전 작은 공동체는 광인을 ‘신과 가까운 자’라 부르며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품었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살면서 관계의 규모가 커지자 사회적 구조가 견고해지고 규범이 강화된다. 그러나 광인은 이런 틀을 인정하지 않고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이기에 환자복에 묶인 채 사회에서 격리된다. 광인은 사회적 권력 관계에서 내쳐진 존재이다.

미친년은 여자 광인이다. 여자라는 성에는 사회적 억압 위에 또 하나 특별한 족쇄가 추가된다. 권력 관계로 종속된 성이다. 이때 미친년이 탄생한다. 미친년은 모든 억압을 거부하며 인간으로서 실존하려 몸부림치는 존재이다. 낱개 인간으로 사회적, 성적 억압을 부정하다가 내쳐진 이들이며 조직적 저항을 하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지랄이라도 하는 존재이다. 그렇게 자유를 찾은 자이자 억압을 깨치고 나아가려는 존재다. 시대의 눈에 이런 존재가 마뜩할 리 없다. 어떻게든 딱지를 붙여 내치고 깎아 내려야 한다. 이때 각성하지 못한 이는 자신을 억압하고 종국에 자신을 지워 버린다. 정신병의 세계이다. 이처럼 미친년이라는 호칭은 타자들이 저주를 새긴 부적으로 붙인 말이다. 그러나 세계와 맞서 개기는 여자 스스로에게는 자신을 긍정하고 광야를 질주하는 말이 된다. 미친년 서사는 미친년으로 태어났으나 세상을 바라보는 순한 눈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곧 자기 안에서 꿈틀거리는 뜨거운 온도와 외부의 차가운 압력이 만나 격렬한 화학 작용이 일어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연기가 가득하다. 누군가 아프다. 자신을 부정하다가 발병하는 무병巫病 같은 것이다.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으로 나간 존재는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스스로를 인정한다. 세계와 싸우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화해하는 것이다. 이제 이곳이 바로 고향이다.

4.
시인 조영여가 던진 시편들은 앞에서부터 읽으면 풍성한 은유를 체로 쳐내 가며 구체로 가는 여정이지만 뒤에서부터 읽으면 미친년 서사이자 분열과 확장의 연대기이다.

5.
여자는 모순의 딸로 태어났다. 「초경」에 이른 여자는 ‘함박눈 내려 함박꽃 피는 줄 믿던 바보’였다. 그래서 ‘신이 봐주지 않아도 좋아라/지상에서 가장 순결한 창녀를 꿈’꾼다. 모든 존재의 씨앗은 모순으로 빚어지지만 의식이 그 비밀을 눈치 채기까지는 많은 곡절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기 작은 여자는 무의식적으로 이 사실을 발설하고 있다. 이제 씨앗은 싹을 틔워 떡잎을 내놓는다. 여자는 씨앗을 가꾸는 여자로 살고 있다.

그 씨앗이 제크의 콩나무처럼 자라나
구름사다리로 오르는 행운을 안겨주든
가시덤불을 이뤄 내 살을 후벼오든
이제 아무래도 좋습니다
- 「씨앗을 가꾸는 여자」에서

여자는 자기 안의 것을 분별없이 긍정한다. 이 긍정은 안의 것이 사실 바깥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사실조차 분별하지 않는다. 또 그것이 자신 안에서 어떻게 자라고 어떤 열매로 현실을 왜곡시킬지 의심하지 않는다. 회의하지 않는 믿음의 시기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생각한다. 아니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씨앗은 필연적으로 분별의 씨앗이다. 분화되고 심화되어 새로운 정체성으로 진화하며 그 결과 새로운 싸움을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정을 알건 모르건 여자는 모든 것을 품는다. 이제 불안은 연기처럼 자란다.

‘세월이 흐르면/거기/화전민처럼 떠도는 우리를 만날지 몰라/……/이것이 우리의 운명이야/뱀이 건네준 사과를 받아 든 날부터/뚜껑을 열어 버린 판도라의 상자를/다시 닫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돌아갈 길은 없는 거라고/……(「꿈」에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다는 전조가 가득 차 있다. 그
리고 혼몽의 안개 속에서 어렴풋하게 그 너머를 본다.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다. 영혼의 디
아스포라에 오르는 여자가 있다. 불안은 반드시 현실
로 몸을 바꾼다. 여자는 그 실체를 만난다.
기억해요?
미친년 보랏빛 치마, 그 눈빛
당신이 날 업고
섬 돌아돌아 둑길에서 만난
초경의 경련처럼 번지는 붉은 하늘 아래
자궁 다 드러낸 채 시들어가던
도라지꽃
출렁이며 바다를 물들이던
그 보랏빛 치마
- 「섬돌아 둑길」에서

어느 둑길에서 만난 도라지는 자궁까지 다 드러낸 채 시들어 가고 있다. 당연히 흐드러진 치마는 보랏빛이다. 미친년이다. 자신 안에서 눈을 뜨고 있는 미친년이다. 꽃은 시들어 가지만 보랏빛 치마에서 눈뜨는 어느 정체가 거기 현현해 있다. 내 안의 떡잎이 자라 밖으로 나오고 있다.

6.
여자가 울고 있다. 울음은 회상이다. 과거가 남긴 흉터에 짠물을 들이 부어 고통을 불러내고 그 고통으로 상처를 생생하게 살려내는 일이다. 아물지 않을지언정 구석구석 갈라진 상처를 쓰다듬으며 미치기라도 할 일이 ‘비쩍 마른 나귀 한 마리/젖은 솜을 싣고/검푸른 안개 사이/길을 더듬는다/……/지금 조용히 아무도 괴롭지 않아/이곳은/비(「비 오는 집」에서)’

이런 정적은 울음의 반대가 아니라 가장 큰 울음이다.
갚을 힘이 없어요
세상의 친절이 두려워요
저는 당신의 등을 밀어 드릴 힘이 없어요
그리 말하려는 내게
그 마음 다 안다는 눈빛으로
가만히 내 등을 어루만지며
등에 사마귀가 큰 걸 보니 제 몸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구먼.
- 「마흔」에서

공 중목욕탕을 모두가 감춰둔 슬픔을 까서 겨루는 조용한 도박장이라 치자. 그래서 몇은 당당함으로 포장하지만 결국 뒤집어야 하는 열패감으로 벌겋게 달아오르고 웅크린 몇은 자신이 밀어 놓은 슬픔의 무게로 노근한 승리를 누리는 곳이다. 이것이 수증기를 헤치며 작은 플라스틱 의자 위에 알몸으로 자리 잡는 이유이다. 거기서 여자는 자신의 억압을 들킨다. 아니 내어놓는다. 등에 자리 잡은 커다란 사마귀. 이것은 존재 자체가 가지는 제한이라기보다는 관계가 만든 억압이다. 여자는 이것을 알고 있기에 상징 아닌 직유로 말한다. 날것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영웅이 자신의 등에 새겨진 낙인을 결국 마주하듯 미친년은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면서 사마귀를 쓰다듬는 순간 조금씩 변태한다. ‘미친년/미치려거든 곱게 미쳐라//곱게 미칠 수 없어 가둬버린 너/……/사랑해야만 비로소 꽃 필 수 있거늘/미치는 것이 어찌 고울까/고운 것이 어찌 미칠까(「피어라 꽃」에서)’

갑갑하지?
뛰쳐나오고 싶은 거 알아
너 원래 푼수잖아
그래, 푼수
자신을 알아 버린 분수
비로소 사랑하게 된 꽃말
- 「푼꽃, 분꽃」에서

이제 몇 걸음 더 나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히! 하고/헤~ 하면/하루 다 간다//뭘 그리 이고 지고 살았을까(「근황」에서)’ 여자는 아직도 울고 있지만 울음은 점점 구성지게 변한다. 울음은 리듬을 가지고 있다. 격렬하게 쏟아 내는 호흡을 넘어서면 꺼이꺼이 썰물 빠지기도 하고 마지막 울음 딸꾹질까지 고유한 리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점점 구성을 만든다. 이렇게 구성진 울음은 노래가 되고 노래가 되는 순간 울음은 세상과 강렬한 대화로 몸을 바꾼다. 노래가 된 울음, 미친년의 노래는 이제 일사천리로 나간다.

7.
여기에서 노래가 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시라는 장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음악성에 기댄 말이 아니다. 시인의 몸에 생래적으로 배어 있는 깊은 리듬 자체로 노래가 된 것이다. 어떤 시편을 들추어도 시인이 자신의 몸으로 만든 고유한 리듬이 읽는 이를 끌고 다닌다.

나는 말이지. 달리는 말이지 달리다 죽은 말이지
나는 말이지 죽은 말이지 무덤 속에서 빛을 본 말이지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죽었다 산 말이지 영원히 살 말이지
그러니까 말이지 진짜 말이지 말다운 말이지
힘차게 뛰고 춤추고 노래하는 말이지
- 「말」에서

세상을 흔들며 광야를 달리는 말은, 죽음에서 부활해 영원히 사는 말은 신의 속성을 말한다. 신이 신으로서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은 말이다. ‘힘차게 뛰고 춤추’는 정신에서 나온 살아 있는 말이야말로 신이자, 신의 말이다. 그래서 고유한 리듬으로 울리는 노래는 신에 대한 찬송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노골적 리듬은 이야기를 추적하는 일이 불가능할 지경까지 이끈다. 그저 흥얼대며 따라 읽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시는 리듬만으로 의미를, 아니 고유한 무의미를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울렁거리며 사라져가는 의미의 뒷자리에서 무의미가 만드는 무미의 맛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무의미에서 시작해 정갈한 의미로 진행하는 역과정의 시편들이 있는가 하면 오롯한 정황에서 흔들리는 정신으로 이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이런 변이의 과정을 많은 부분 리듬이 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가보지 않아도 안다는 흰소리와
가봐도 여전히 모르는 까만 소리가 지지배배 떠들어
산새는 배쫑배쫑 풍광은 비비디 바비두 부
벚꽃이 버짐처럼 번지고 팝콘이 관광버스를 타고 달리고 있어
불라불라 메치카불라 버튼을 누르면 곧 팝콘이 터질 거야
- 「팝콘 전주곡」에서

이쯤 되면 특별한 정신 상태에 들어 신과 대화를 나누는 방언이다. 이렇듯 미친년을 꾹 누르고 살던 여자의 울음이, 구성진 울음이 노래가 되었다. 이 노래가 굽이쳐 흘러가는 곳은 신화의 세계이다. 이곳에서 노래는 주문이 된다. 주문은 마법이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는 열쇠이다. 주문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현실에 마법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런 주문은 어떤가?

부디 우리의 무지를 용서 마소서 당신이 심은 싹이 초식 동물로 자라더니 아가리를 벌리고 닥치는 대로 먹고 있습니다 당신의 귀는 당나귀 귀입니까 당신의 입은 조랑말의 입입니까 돌아올 화살을 모르는 무지와 만행이 돌아올 화살에 대한 염려와 음울과 한 쌍을 이루는 저
녁입니다 부디 우리의 죄를 용서 마소서
- 「술래잡기」에서

이 비틀리고 당돌한 주문은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신을 초대하고 그와의 대화를 빙자해 과연 신이,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슬그머니 추궁하고 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반생명적인 패악을 따지고 있으며 필연코 돌아와 대지를 휩쓸 검은 파도를 예언자의 눈을 빌려 증언하고 있다. 우리의 자백이 흘러야 할 물꼬를 트고 있다. 주문이 작동하는 신화의 세계에 들기는 하였으나 온전히 세상에 순응하는 주문 따위는 기대하지 말라는 선포인 것이다.

‘그래요. 모두가 양지만을 사랑하겠다면/그래요. 그건 마녀의 몫으로 남겨 두죠./쓰레기와 똥물은 혼자 떠안고 가도록.(「그림자의 주문 2」 에서)’ 이렇게 바르지 않은 것, 어두운 것, 더러운 것, 순응하지 않는 것들 모두를 자처한다. 기꺼이 마녀가 되어 세상을 할퀼 작정이다. 자신만의 리듬으로 완성한 주문을 외워 온통 뒤집힌 마법을 실현할 각오다.

우울을 잊고 울렁울렁 파도를 타고 저만치
꽃상여를 타고 망망대해 바다에 이르면 좋겠어
가만히 노래하고 가뿐히 순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면 좋겠어 …… 태어나기도 전 죽은 아
이를 위해 죽을 쑨대요 풀이 말해요 …… 태어
나지 않은 너의 죽음을 축하한단다 아가야 네
무덤가에 미역을 널어 줄게 미꾸라지들이 헤엄
을 치면 상여가 나갈 거야 …… 미끄러져 갔던
아이들이 피리를 불어요 필릴리 필릴리 무덤가
엔 미역이 널리고요 밀물이 밀려와요 미꾸라지
들이 미역을 불리는 중이에요 …… 시름시름
앓다가 바다로 간 아이들이 한데 모여 피리를
불어요 미끄러져 갔던 아이들이 늙은 가재의
뱃속에서 피리를 불어요 필릴리 피일릴리.
- 「윤달의 노래」에서

시인이 풀어놓은 것처럼 윤달은 ‘공달’이고 ‘썩은 달’이며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는 달’이다. 신이 사람에 대한 감시를 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윤달에 늙은 부모의 수의를 짓는 일은 장수를 기원하는 일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무엇을 해도 되는 벌 받지 않는 시간이다. 억압의 봉인이 해제되는 시간이기에 미친년의 시간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모두는 수동적이다. 선택지는 벌을 받거나 용서를 받는 일뿐이다. 신화가 공동체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반영하더라도 신의 뜻이자 공동체의 방향이 우선이라는 말이다. 오로지 영웅만이 자신의 생을 주체적으로 살지만 사실 그는 바로 공동체 자신의 투영이다. 이제 남은 것은 능동적으로 죄를 짓는 일밖에 없다. 아니 능동적인 정신 자체가 죄이다. 그래서 미친년이 내쳐진 이유는 그 능동성 때문이다. 우리는 죄라도 지어야 한다. 윤달은 죄를 짓는 시간이자 죄에서 해방되는 시간이고 미친년이 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작은 죄마저도 짓지 못하고 손가락이 잘린 이들이 있다. 이곳에서 자신들의 시간 위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할 아이들이지만 누군가에 의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아이들은 꽃상여마저도 타지 못하고 사라졌다. 미친년은 아이들을 위해 죽을 쑤고 무덤에 미역을 널어 그들을 불러낸다. 함께 생명의 춤을 춘다. 진정 미쳐 돌아가는 문명을 조근조근 할퀴어 온전히 생명을 싹 틔우는 춤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윤달에 태어나고 윤날을 생일 삼아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노래한다. 늙은 가재가 떠나간 자리에 모여 아이들은 피리를 분다. 미친년이 하는 일이다.

9.
미친년 서사의 대단원은 첫 시 「동피랑으로 간 도도」이다. 동피랑은 동쪽 절벽이다. 안락한 서방정토 반대편에 있는 동쪽 차안이다. 도도가 자유의 바람을 타고 넘어서는 절벽으로 여기 어디이다. 아주 먼 땅이 아니다. ‘전생과 후생이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 모르기에, ‘굶지 않을 만큼의 죄와 이웃’하고 싶어서 가야하는 땅이다. 미친년으로 숨 쉴 수 있는 하늘이 있는 곳이다. 그만큼의 죄가 일용할 양식이 되어 ‘물 위를 나는 기적’을 행할 수 있고 ‘붉은 햇살에 물고기를 널고’, ‘빨래를 굽는’ 일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다. ‘도레도레 평온하고 낮은 자리’이다. ‘잠만 자는 소녀가’ 눈을 뜨고 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기적이 아가리를 벌리고’ 언감생심 어디 감 떨어지는 소리를 하느냐고 윽박지른다. 각성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하고 죽어야 부활할 수 있다. ‘네 입술이 한바탕 꺼이꺼이 울 거야 푸른 파도가 치고 파란 벌레가 기어 나오고 잘근잘근 씹힌 혀들이 묵은 살점을 토해내고 나면, 그래, 넌 마침내 환하게 웃을 거야 해방을 기뻐할 거야’ 그렇게 주어진 해방은 초식을 넘어서 완전한 식물성의 땅에서 이루어진다.

이상하지만 아주 익숙한 꿈이다. ‘아빠의 생일날 내 미역국엔 미끈덩 이가 빠’지고 ‘아빠의 미역국은 애간장에 녹’는다. 그곳은 ‘나무에 피가 열리고 노래가 장난을’ 하는 육식의 땅이다. 수챗구멍에서 피리소리가 들리고 이제 떠난다. 원죄의 땅에서, ‘하멜른의 곡소리’에 발맞춰서.

도도는 날지 못하는 새이다. 호기심이 많은 대신 두려움을 가지지 못해 쉽게 멸종한 새이다. 도는 한 음계의 정체를 결정하는 으뜸음이다. 그래서 도도는 그냥 노래이기도 하다. 라라와 시시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기도 한다. 도도는 뾰족구두를 벗어 슬리퍼로 갈아 신고는 산으로 가는 대신 한적한 동피랑에서 노래한다. ‘전생과 후생을 마주하’고는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죄와만 이웃’하면서 노래한다. 그래서 미친년은 동피랑에 도착했을까, 아니 그 여자는 동피랑을 잘 만들었을까?

10.
늦은 밤 한 여자가 서 있다. 주변은 여전히 어둡고 막차는 올 기미가 없다. 어둡기만 한 이곳에서 여자는 막차에 관심이 없다. 여자는 웃고 있다. 밤하고 놀고 있다.

11.
‘여기까지가 제 이야기예요. 어쩌면 당신과 당신의 엄마가 한번은 속삭였을지 모를 그런 얘기요. 고마워요. 이야기를 내버려두어서요. 아무 날 아무 시라도 좋아요. 문득 마음이 동하는 날 벤치에 와서 당신 얘기도 들려줄래요? 그땐 꼭 차 한잔해요. 우리.(「차 한잔할래요」에서)

자, 이제 미친년과 차 한잔할 시간이다.
- 김병호(시인)
--- 「해설_ 도도의 노래(김병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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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천생 시인이다. 아주 오래전 시 밭을 함께 일구며 지워지지 않는 그의 자리에서 보았다. 밟힌 민들레 싹을 돋우며 꺾인 나뭇가지를 세우고 무너진 담벼락 아래 숨어들던 구름과 새와 바람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모두 생명을 살리는 말이었다. 그의 눈길 가 닿은 곳에 한번은 외면했던 세월이 아직도 눈 맑게 기다리고 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첫 시집을 묶는 마음은 늘 절실하다. 세상에 내놓는 어린 새끼가 미움 받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의심 없이 그가 머물던 자국이 바로 시가 되었으니 사특함이 끼어들 틈은 없다. 이 시집에 담은 전부는 무엇보다도 ‘염려’라 생각한다. 하이데거가 ‘존재에 대한 인간의 염려는 존재의 열쇠’라 말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가 말을 나눈 존재들은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형편없는 것들이다.

왜 뒤로 걷기를 택했을까. 존재의 불안보다도 염려가 앞섰기 때문이리라. 은폐되고 망각된 것들을 드러내기 위해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방법으로 길을 가는 것이다. 그도 뒤돌아 걸으며 넘어지고 뒹굴며 뒤처진 것들을 돌봐야 했으리라. 그의 시선을 ‘희미한 빛’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 이민호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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