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개 한 굽이에서 만난 시 한 편에서 가슴 저릿한 감동과 잊히지 않는 경험을 맛본 적이 있나요?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외진 길에 주저앉아 있을 때, 사랑 잃고 절망의 터널을 헤매고 있을 때 읽었던 시 한 편의 기억이 남아 있나요?
그렇게 시는 팍팍한 생활에 친구 같은 위안을 주고, 어설프고 아둔하게 살아가는 내 일상에 폭포의 물줄기를 쏟아 줍니다. 때로는 거센 파도와 같은 외침으로, 때로는 밤하늘 가로등 불빛과 같은 은근함으로 삶의 방향을 일러 주기도 합니다.
전국의 국어 선생님들이 2009년부터 '창비 국어' 누리집과 전자 우편을 통해 전하고 있는 시와 사연들을 모아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1권과 2권을 묶었고, 다시 53편의 시를 묶어 '칠판에 적힌 시 한 편'이라는 이름으로 [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 3권을 냅니다.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시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국어 선생님들이라는 생각에 책 제목을 '칠판에 적힌 시 한 편'으로 정했습니다.
이번 책은 54편의 시와 그 시를 소개하는 글을 4부로 나누어 갈무리하고, 각 부를 이끄는 짧은 길잡이 글을 두었습니다. 1부는 가족, 친구, 제자 등 나를 있게 하는 소중한 당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2부는 벅찬 사랑과 뼈저린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3부는 자연 및 이웃과 더불어 배우고 교감하는 이야기를, 4부는 삶과 죽음, 시대와 현실을 고뇌하고 성찰하는 이야기를 묶었습니다.
아직도 시인들을 무슨 요술 보따리를 가지고 있는 딴 세상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한 편의 시를 발표하기까지 홀로 삭히며 견뎌야 했던 산고(産苦)의 시간들을 모르는 듯합니다. 그래서 각 부의 끝에 마련한 기획 원고의 첫 번째가 '시인이 보내는 편지'입니다. 김선우, 나희덕, 도종환, 안도현 시인의 글을 통해 시 쓰기에 얽힌 사연을 엿듣는 색다른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편의 시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이끌어 내는 이야기는 참으로 다양하고 무궁무진합니다. 직업 따라, 나이 따라, 취향 따라 시를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은, 시 읽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만남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기획 원고를 추가하여 다양한 직업군의 저자가 시와 만난 내밀한 사연을 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기획 원고 '내 인생의 시'에서는 만화가 김양수, 여행가 유성용, 가수 요조, 요리사 박찬일의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시와 더불어 떠나는 여행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겁니다. 가끔은 '숨은 그림 찾기'처럼 혼란스러울 때도 있고, 끝없이 헤매야 하는 미로처럼 답답할 때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시인이 들려주는 진솔한 세상 이야기는 오랜 친구처럼 여러분 곁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아무쪼록 국어 선생님과 함께 떠나는 시의 여행길에서 희망의 별빛도 보고, 시의 숲이 뿜어내는 치유의 피톤치드도 한껏 맛보시길 바랍니다.
-2011년 9월 엮은이 드림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