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머리말
우리나라에서 2012년 말에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후 사회적경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 결과, 2014년에 국회에 처음으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경제에 대한 논의는 시민사회 및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의 현장, 그리고 학계보다는 일부 국회와 정부 및 관련 지원기관에서 먼저 논의되어 왔다. 반면에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제정한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퀘벡주 등은 협동조합 등 (구)사회적경제조직들의 실천이 오랫동안 이루어져 온 바탕위에서 사회적기업 등 (신)사회적경제를 포괄하기 위하여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제정하였고, 사회적경제 개념도 재정립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경제 논의가 하향식으로 이루어지고, 사회적경제의 역사적 발전과정의 정부 주도성으로 인하여 사회적경제의 개념과 범주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경제는 국회에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표출하는 대상이 되면서 사회적경제기본법의 제정이 10여년간 지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사회적경제 개념과 범주에 대하여 검토한다. 사회적경제를 이해하는 접근방법은 사상적 혹은 가치적 접근법과 제도적 접근법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글에서는 주로 제도적 관점에서 사회적경제를 접근하고자 한다. 이 글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째, 유럽의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발전과정과 한국의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발전과정을 비교하여 유럽에서 왜 사회적경제법을 제정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국회에서 제출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이 우리나라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발전과정에서의 한계와 문제점을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둘째, 사회적경제의 개념과 정체성, 그리고 주요 가치와 역할을 검토한다. 특히 제3섹터를 바라보는 비영리섹터의 관점과 사회적경제의 관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비교하여 사회적경제 개념 논의를 보다 명료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고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에서 기존에 논의된 사회적경제 개념의 한계를 제기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1-2 유럽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발전과정과 비영리섹터 개념과의 비교
1. 유럽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발전과정 및 사회적경제의 정체성 규정
제도적 관점에서 유럽 사회적경제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19세기 중후반부터 발전해온 구(舊)사회적경제와 20세기 후반에 발전해온 신(新)사회적경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구(舊)사회적경제는 경제적 약자 및 시민사회가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폐해에 대하여 자조와 연대의 원리에 입각하여 조직적 대응으로 등장한 협동조합, 공제조합(mutual), 결사(association), 재단(foundation)을 의미하고, 이를 협동조합일반법 혹은 특정유형의 협동조합에 관한 개별법, 공제조합법, 민법, 회사법 등 각국의 법률적 특성에 따라 제도화하였다. 이러한 조직들을 가장 먼저 사회적경제 개념 혹은 사회적경제섹터라는 개념으로 정책을 통하여 인정한 국가는 프랑스이고, 점차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되었으며, 1989년에 유럽연합은 사회적경제에 관한 제1차 유럽 컨퍼런스 개최를 후원함과 동시에 유럽위원회 내에 사회적경제 담당 부서를 처음으로 설치하였다(Chaves and Monzon, 2007).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mutual), 결사(association), 재단(foundation) 등 구(舊)사회적경제조직들이 자신들을 사회적경제섹터의 일원으로 규정짓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Chaves and Monzon, 2007). 물론 프랑스의 경우에는 1970년 6월에 각 유형의 전국연합조직들이 사회적 힘을 증가시키고, 대정부 협상력을 증대하기 위해 연대조직(National Liaison Committee for Mutual, Cooperative and Associative Activities (CNLAMCA))을 형성하였고, 설립 10주년인 1980년에 사회적경제 헌장을 발표하였지만 연합조직의 명칭이 사회적경제 기업 및 기관협의회(CEGES, Conseil des entreprises, employeurs et groupements de l’economie sociale)로 변경된 것은 2001년 10월이었다. 2000년에 유럽연합 차원에서 설립된 사회적경제 관련 각 국가의 대표조직들의 연합조직의 명칭도 사회적경제 용어가 포함되지 않았고, 협동조합, 공제조합, 결사, 그리고 재단 등의 명칭을 나열하여 사용하였으며, 2008년이 되어서야 Social Economy Europe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러므로 사회적경제 혹은 사회연대경제(social and solidarity economy)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사회적기업 개념이 확산된 1990년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991년 이탈리아에서 사회적협동조합법이 제정된 이후 유럽과 캐나다 퀘벡 등에서 협동조합 조직형태 혹은 상법상 회사형태에 사회적기업 법인격 도입이 확산되었다. 이탈리아, 퀘벡, 포트투갈, 스페인, 프랑스, 폴란드 등은 협동조합 관련 법에 사회적기업 개념을 도입한 반면에 벨기에, 영국 등이 회사법에 사회적기업 개념을 도입하였다.
유럽에서는 구(舊)사회적경제조직들이 사회적협동조합 혹은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는 신(新)사회적경제조직들과 협력하면서 사회적경제 혹은 사회연대경제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일환으로 ‘사회적경제 유럽(Social Economy Europe)’이라는 국제연대조직이 2008년에 정립되었다. ‘사회적경제 유럽’이 내세우는 사회적경제의 조직유형과 공동원칙은 〈그림 1-2-1〉과 같다. 우선 사회적경제의 범주에는 협동조합, 공제조합, 결사, 재단, 그리고 사회적기업 및 노사공동복지기관이 조직유형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공동원칙은 자본에 대한 개인 및 사회적 목적의 우위성을 비롯하여 6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여섯 가지의 공동원칙은 6가지의 조직유형이 운영함에 있어서 나타나는 공통의 원리로 확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가지의 공동원칙은 앞에서 설명한 ‘협동조합, 공제조합, 결사 및 재단에 관한 상설 컨퍼런스’가 2002년에 채택한 ?사회적경제의 원리 헌장?에서의 7가지 원칙(Monzon and Chaves, 2012) 중에서 6가지 원칙이 그대로 포함되고 조합원에 의한 민주적 통제 원칙이 빠졌다. 이는 재단 및 사회적기업 등과 같이 조합원을 보유하지 않은 조직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제1장 한국 사회적경제의 제도적 특징과 개선 과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