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국가형성 연구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패러다임”으로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진화론의 발전 단계설을 바탕으로 하면서, 최근 세계 학계에서 군장사회와 성숙한 고대국가 사이 중간 단계의 복합사회로 설정되고 있는 ‘초기국가’(early state)의 성격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고 초기국가의 개념을 한국 고대사에 적용해 국가형성 과정을 좀 더 가시적으로 설명해 보고자 한다. 특히 초기국가 단계의 중심에 있었던 왕권과 그 주변 지역 복합사회의 상호 관계에서 나타나는 공납제적 지배 구조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게 될 것이다.
--- p.28~29, 「I. 서장: 국가형성기의 복합사회와 초기국가」중에서
국내의 단군신화 연구에서는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역사성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단군 원년 경인년이나 그 후반부에 보이는 단군 관련 연대, 즉 어국(御國) 1500년, 수(壽) 1908년에 대해서는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았다. 『제왕운기』에 보이는 단군 향국(享國) 1028년이나, 그 「본기」의 이(理) 1038년의 기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이 하나의 기록에 대해 이중적인 잣대로 접근하는 방법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기」의 내용이 전반부 신화와 후반부 원사(原史)로 대별되는 것은 인정되지만, 하나의 기록으로 정리된 단계에서는 분명히 일관된 서술이라고 보아야 한다. 전반부의 신화가 상고의 연원을 서술한 것이라면, 후반부의 원사는 당대로의 연결을 위한 서술이라고 이해된다.
이상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글에서는 「고기」의 단군 기년에 대해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 관련 기록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해 보고자 한다.
--- p.104~105, 「II. 단군과 기자의 조선: 신화와 역사의 경계」중에서
그동안 고조선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는 『사기』 조선전에 보이는 위만조선 단계에 초점이 맞춰져 이루어졌다. 자료가 부족하다 보니 고조선의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위만조선 단계를 중심으로 왕 밑에 대부(大夫), 박사(博士), 비왕(裨王), 상(相), 장군(將軍), 대신(大臣) 등이 존재했다고 개설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위만조선 이전의 고조선에도 중앙집권체제는 아니지만 미숙하나마 초기국가의 정치체제가 존재했음을 시사해 주는 자료가 있다. 이 글에서는 고조선의 관명으로 보이는 경(卿), 대부, 박사 등에 대해 검토하고, 최근 요동 철령(鐵嶺) 개원(開原) 지역에서 출토된 동도(銅刀)에 보이는 ‘형’(兄)의 성격을 고조선의 관제와 관련하여 시론해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그동안 소극적으로 다루어 오던 고조선의 정치체제에 대한 논의가 조금이나마 진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p.278~279, 「III. 고조선의 정치체제와 영역 구조」중에서
과연 삼한 70여 국 모두에 ‘국읍’이 각각 존재했을까? 다시 말해 70여 국은 모두 ‘국읍’을 가진 각각의 단위 정치체였을까? 그동안 연구에서는 국읍의 성격을 일반 읍락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많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삼한의 국읍은 ‘별읍’(別邑)과 대비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도’(蘇塗)라고도 불린 별읍의 성격에 대해선 학계의 논의가 다양하지만, 대체로 귀신 제사가 행해진 신성 지역으로 이해되고 있다. 국읍과 별읍은 용어에서 유추되듯이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에서는 중국 문헌에 보이는 ‘국읍’ 용례를 통해 그 의미를 살펴 보고, 일반 읍락뿐만 아니라 별읍과의 비교를 통해 국읍의 성격을 기존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보고자 한다.
--- p.433~434, 「IV. 삼한사회의 구조와 국가형성」중에서
그동안 시대 구분 연구는 주로 고대와 중세의 분기, 즉 중세의 기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런 가운데 고대의 범위를 고조선·부여·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이 존속했던 기원전 4세기~7세기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으로 본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는 기원전 4세기 이후 고조선을 초기국가로 본 국가형성 연구와 7세기 말을 중세의 기점으로 본 사회경제사적 시대 구분 연구의 성과를 종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학계에선 아직 초기국가와 고대국가의 단계를 구분하고 고대의 기점을 고조선보다 삼국에서 찾는 경향이 강하다. 국가형성 연구 성과가 적지 않게 축적되었으나 시대 구분과는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초기국가의 개념 인식에 혼선이 있다 보니 고대와 초기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고대와 초기국가의 개념을 한국사의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검토해 보고, 이를 토대로 한국 고대의 국가 구조를 초기국가의 성격과 관련지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
--- p.623, 「V. 결장: 한국의 ‘고대’와 초기국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