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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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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남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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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바나나 우유 사 줬으면 좋겠다아!”
이때부터 조금 기분이 이상했어. 나한테 하는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우린 친구인데. 물론 용돈이 부족할 땐 서로 우유나 초콜릿 같은 걸 사 주기도 했지. 근데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우유를 사다 준다는 건 좀 이상하잖아. 다리를 다친 것도 아닌데. --- p.20p 「본문」 중에서 데뷔 날짜까지 받아 놓고 뮤직비디오 촬영부터 다이어트까지 할 일이 산더미였을텐데 나를 떠올렸다니. 이유가 뭘까? “그날 우리 나눴던 카톡 대화, 지운 거 맞지?” 헤어지기 전에 네가 여러 번 입을 열었다가 다물더니 결심한 듯 물었어. 아침부터 묻고 싶었을 텐데 잘 참았구나 싶었어. 얼마 전 모 아이돌의 과거가 폭로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네가 나한테 연락했었잖아. --- pp.25-26 「본문」 중에서 애들은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해도 너를 왕따시킬 마음이 없었던 거야. 애초에 누가 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그냥 짓밟고 싶은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너는 안 되고 나는 됐던 거지. “그럼 넌 내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던 거야?” 내가 물었더니 지혜가 고개를 갸우뚱했어. “긴가민가했어.” 왜 사실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걸까? 나는 모든 게 이해되지 않아. --- pp.43-44 「본문」 중에서 |
보이지 않는 서열 속 선명한 대가,
교실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이야기. 같은 교실, 같은 모양의 책상이지만 같은 자리란 없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햇볕이 책상들을 어둠과 빛으로 가르는 것처럼. 자리는 우연히 정해지지만, 혹은 약간의 자력으로 움직여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햇볕은 그렇지 않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아 있건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선명히도 작용한다. 또렷한 형체도 촉감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 그것을 서열이라 정의해도 될까. 《내가 너랑 놀아 줬잖아》는 교실 속 시시각각 기울어지는 빛의 경계를 그려 낸 작품이다. 혜남은 늘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은 아이다. 혜남을 비추는 건 햇볕이 아니라 햇살이라 느껴질 만큼 빼어난 외모로 언제나 이목을 끌고 있다. 반면, 남영은 혜남을 지난 빛에 절반쯤 자리를 들이고 있다. ‘모두가 친해지고 싶어 하는 아이가 누가 봐도 별 볼 일 없는 애랑 친하다는 게 아니꼬웠던 거야.’ 아이들은 그렇게 다른 온도의 시선으로 혜남 옆 남영을 주시했다. 그리고 대나무 숲 사건이 터지면서 혜남은 빛에도 어둠에도 서지 못한 채 맹렬히 비난받는다. 남영이 혜남에게 바나나 우유를 사다 준 날, 관계의 우위를 확인한 날, 하지만 누리고 있는 우월감을 놓을 수 없어 자괴감을 삼켰던 날. 혜남이 남영에게 요구한 ‘관계의 대가’가 씁쓸함을 남긴다. 알면서도 당한 배신, 그리고 알려 하지 않고 던져진 돌. 칼 없이, 총 없이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라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잔인하지 않은가. 이선주 작가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불행했던 건 아니지만 불안했다.’고 말한다. 혜남과 남영이 아니라 해도 우리 또한 그 불안을 알고 있다. 모두 그 교실에 있거나 있었으니까. 그러니 나의 불안을 아는 만큼 타인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길, 그러한 용기가 교실의 또 다른 창문이 될 수 있길, 이 작품을 통해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