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신 웃겨야 해. 내가 진지하게 질문했을 때는 분명하게 대답하고.”
“예.”
“다시 묻겠는데, 너희 아버님께서는 너를 뭐라고 부르셨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입니다.”
“너는 아버님을 뭐라고 불렀는데?”
“한계부락.”
“어머님께서는 너를 뭐라고 부르셨냐?”
“대체 누구를 닮았냐.”
“너는 어머님을 뭐라고 불렀는데?”
“대체 누구를 닮았을까.”
“대화가 척척 맞아떨어지네.”
--- pp.21-22
이를테면 1년 내내 피에로 옷차림을 관철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건 개성이라고 해도 좋다는 말도 했다. 피에로는 다른 누군가 창조한 것이지만 그것을 평소에도 매일 입어내는 것은 이미 오리지널한 발상이라고 단언했다.
“근데 만일 그 피에로가 실제로 여름철에는 더워서 이런 옷차림은 싫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경우, 그건 자기 자신의 모방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해. 나는 반드시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규범에 바탕을 두고 살아가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흉내내는 거잖냐. 그래서 나는 캐릭터라는 것에 저항감이 들더라.”
--- pp.115-116
어쩌면 가미야 씨는 ‘없다, 없다, 까꿍!’이라는 놀이를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고집 센 발명가나 예술가라도 자신의 작품을 받아들이는 자가 갓난아기였을 때, 여전히 자신의 작품을 일절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과거의 천재들도 가미야 씨처럼 ‘없다, 없다, 까꿍!’이 아니라 자신이 온 힘을 쏟아 부은 작품으로 갓난아기를 즐겁게 해주려고 했을까.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을 남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었다. 하지만 가미야 씨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방식을 결코 바꾸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도 상대를 과신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일절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가미야 씨를 지켜보면 나 자신이 무척 경박한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곤 했다.
--- p.127
가미야 씨가 상대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언젠가 세상을 자신 쪽으로 돌려세울 수도 있는 무언가였다. 그 세계는 고독할지도 모르지만 그 적막은 스스로를 고무해 주기도 하리라. 나는 결국 세상이라는 것을 떨쳐낼 수 없었다. 참된 지옥이란 고독 속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었다. 가미야 씨는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내 눈에 세상이 비치는 한, 거기서 도망칠 수는 없다. 나 자신의 이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또한 세상의 관념과도 싸워야 한다.
--- p.182
영원처럼 생각될 만큼 구제할 길 없던 그 나날들은 결코 단순한 바보짓 같은 건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우리는 분명하게 두려움을 느꼈었다. 부모가 나이 들어가는 것을, 연인이 나이 들어가는 것을, 모든 것이 때늦은 일이 되어버리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나 자신의 의지로 꿈을 마감해 버리는 것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다. 세상 모두가 타인처럼 느껴지는 밤이 수없이 이어졌다. 월말이면 저마다 얄팍한 지갑을 털어 술을 마시면서 불안을 달래고, 순수한 마음으로 세상 온갖 고난을 망각의 저 너머로 밀어낼 작품을 제각기 궁리하고 실행했다. 이제 대본으로 세계가 확 바뀔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고무하고 무리하게 흥분했다. 언젠가는 내가 나설 차례가 올 거라고 모두가 굳게 믿었다.
--- pp.191-192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나는 윙에서 스탠드 마이크를 향해 한 차례 인사를 건넸다. 야마시타는 그런 나를 앞질러 냉큼 무대로 뛰쳐나갔다. 나도 그 뒤를 쫓아 나가 조명 세례를 받았다. 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스탠드 마이크를 향해 달렸다. 성인식 때 개그용으로 구입한 타이트한 검은 커플 정장은 대체 몇 번이나 입었을까. 어른이 된 우리는 구두를 번쩍거리게 닦아 신는 법을 배웠다. 스탠드 마이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야마시타가 마이크를 살짝 잡고서 “안녕하십니까, 스파크스입니다”라고 인사하자 다시금 큰 박수 소리가 좁은 극장 안에 메아리쳤다.
인사말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상의 상식을 뒤엎을 만한 코미디를 하기 위해 이 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요, 우리가 뒤엎어 버린 것은 노력은 반드시 보답을 받는다,라는 훌륭한 말뿐입니다.”
--- pp.194-195
그 너무도 노골적인 기업과 개인의 자금력의 차이를 목도하고 나는 무심결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얕잡아 보고 웃은 것이 아니었다. 지불한 대가에 ‘마음’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이 세계의 압도적인 무정함을 웃은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우리 귀에 들려온 것은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솟구친 우레 같은 박수 소리와 환성이었다. 그것은 불꽃 소리를 능가할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군중이 두 사람을 축복해 주기 위해, 그리고 행여 창피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힘을 합친 것이다. 가미야 씨도 나도 추위에 언 손바닥이 빨개지도록 박수를 쳤다.
“이게 바로 인간이지.”
가미야 씨가 중얼거렸다.
--- pp.226-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