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학벌 경쟁이 강화되고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를 손대지 못했다 하더라도, 학교 시스템을 악화시키지 않았다면 모르겠는데, 역대 정권은 학교 시스템을 계속 악화시켰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영재고, 과학고, 외고, 국제고, 자사고 확대 정책입니다. ‘수월성(秀越性) 교육’ 명목으로 부유한 집과 가난한 집 아이들의 진학 과정을 ‘투 트랙’으로 만들어 놓으니 사교육이 초등학교까지 확대되었습니다. 영어교육 광풍은 유치원까지 사교육 대열에 합류시켰습니다. 대학 설립을 자유화하면서 대학이 난립하여 취업이 안 되니 사교육이 대학생까지 확대되었습니다. 교육정책은 계속 사교육을 확대 강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놓고 학원을 규제한다거나 학교에 사교육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해왔으니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40년 전 과외를 금지했을 때도 ‘과외망국’이라 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셀 수없이 많은 사교육 정책들이 나왔어도 모두 실패했으니 대한민국은 망했어도 여러 번 망했어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합니다. 현실을 외면하고 입시제도나 바꾸는 탁상행정에 맡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 사회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정확한 개혁의 길을 밟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왜 모두 실패했나?」중에서
대학교수와 교육 관료의 사고방식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미국식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검은 머리 미국인’들이 많습니다. 한 번도 교실에서 학생을 가르쳐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낸 탁상행정이 수십 년 동안 교육계를 지배했습니다.
교육 관료들은 교육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할 교사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보고 군림하며 지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공문이 교육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거나, 아니면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공문을 생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5.31 개혁안이 지배한 한 세대 동안 교사들은 한 번도 교육의 주체로 대접받지 못했고, 관료적 지배체제는 계속 강화되어왔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사가 학벌 경쟁교육 체제에서 학생 선발 과정에 필요한 자료를 생산하는 말단 직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학교는 교육이 목적이 아니라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할 것을 만들기 위해 시험을 보고 행사를 진행하는 행정기관이 되었습니다. 학부모들은 학원에 가서 학원장과 함께 학생의 진로를 기획하고 설계하고 있습니다. 교육을 거래하는 상품으로, 교사를 공급자로, 학부모를 소비자로 규정하고 한 세대 동안 밀어붙인 결과는 기형적 교육체제입니다.
---「성공한 교육개혁과 실패한 교육개혁」중에서
한국 사회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50년 동안 한국 정치를 대표하던 박정희와 3김 시대는 끝났습니다. 종친회, 향우회, 동문회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주의 정치, ‘노사모’, ‘박사모’, ‘안사모’와 같은 팬덤 정치도 헬조선을 해결할 정치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교육개혁의 대전제가 사회개혁이고, 사회개혁은 정치개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교육개혁의 경로를 깊이 성찰해볼 때가 되었습니다. 기존에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교육개혁에 대한 철학과 의지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전망을 찾는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해오던 방식의 개혁을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교육개혁의 전제, 사회개혁에 이르는 길」중에서
독일 인구가 우리나라의 1.6배인데, 법조인 수는 비교가 안 되게 많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판검사들은 퇴직 후 로펌에 이름을 걸어놓고 전관예우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국가공무원으로 근무했으니 공무원 연금 받으며 노후를 보내든지, 전문 지식을 이용한 저술 활동 등을 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이 법조계뿐 아니라 사회 전 영역에서 분출하고, 사회개조의 방향으로 합의되고, 실제로 개혁이 이루어지면 굳이 대학 서열을 재편하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학벌주의 문제를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와 같은 상위권 대학의 서열 체제 문제로 보는 관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엘리트 집단의 출신 대학을 따지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학벌주의 사회를 개조하기 위해 실천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에 끼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 잘살 수 있는 사회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끝났다고 분개할 게 아니라 개천의 미꾸라지들도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으로 실천적 과제가 명확해야 학벌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회개혁과 함께 추진할 교육개혁 과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