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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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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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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532g | 134*205*26mm
ISBN13 9791130628578
ISBN10 1130628574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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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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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지 언어학자잖아.”
빈 접시를 모으던 패트릭이 스티븐에게도 접시를 치우라고 재촉하며 내게 말했다.
“그랬었지.”
“지금도 그렇지.”
1년 동안 그렇게 연습했는데도, 결국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지금은 아니라니까.”
패트릭이 세 단어를 체크하는 나의 카운터를 지켜봤다. 내 맥박을 촘촘하게 억누르는 압박감이 불길한 북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만 됐어, 진.”
패트릭이 말했다. 아들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카운터가 세 자릿수를 넘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 0, 0. 이제 월요일의 마지막 단어를 말할 때였다. 바로 내 딸에게. 내가 소니아에게 속삭이듯 ‘잘 자렴’이라는 말을 간신히 내뱉었을 때, 나를 바라보는 패트릭의 간절한 눈빛과 마주쳤다.
나는 소니아를 안고 침대로 갔다. 이제 소니아도 꽤 무거워졌다. 더는 가뿐하게 들 수 없을 만큼 많이 자랐다. 그래서 양팔로 번쩍 들어 올려야 했다.
소니아가 침대에 눕자마자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늘 그렇듯 잠자리 동화는 없다. 탐험하는 도라(Dora) 도 없고, 곰돌이 푸(Pooh)와 피글렛(Piglet)도 없고, 맥그리거 씨의 상추밭에서 일어난 피터 래빗(Peter Rabbit)의 작은 소동에 대해서도 들려줄 수 없다. 소니아가 이런 삶을 정상이라고 여기며 자라는 게 두렵다.
--- pp.11-12

그때 초콜릿 아이스크림 세 개를 가지고 소파로 돌아오던 스티븐이 텔레비전에 등장한 여자를 가리키며 ‘신경질적인 여자’라고 했다.
신경질적. 나는 그 단어가 싫었다.
“뭐라고?”
내가 말했다.
“여자들은 제정신이 아니에요.”
스티븐이 말을 이었다.
“뻔히 아는 얘기잖아요. 엄마도 알다시피 여자들은 신경질적인데다 보통 엄마들도 툭하면 욱하니까요.”
“뭐?”
내가 다시 말했다.
“대체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었니?”
“오늘 학교에서 배웠어요. 쿡인지 뭔지 하는 놈이 그랬대요.”
--- pp.20-21

우리는 하루에 100단어만 말할 수 있다. 책도 모두 빼앗겼다. 그들은 글자가 있는 모든 것을 책으로 간주했다. 심지어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 의 책을 복사한 오래된 원고부터 친구가 장난삼아 결혼 선물로 준 빨간 체크무늬 표지의 낡은 요리책까지, 소니아가 손댈 수 없는 수납장에 갇혀 있었다. 분명 내 책들이지만, 나 역시 그 책에 손댈 수 없었다. 패트릭은 마치 운동 기구처럼 수납장 열쇠 외에도 각종 열쇠를 한 덩어리로 묶어 들고 다녔다. 가끔 그 열쇠 꾸러미가 주는 부담감 때문에 패트릭이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건 사소한 것들이다. 모든 방마다 꽂혀 있던 펜과 연필, 요리책 사이에 끼워놓은 메모지, 싱크대 옆 벽에 쇼핑 목록을 적는 용도로 붙여두었던 메모 보드. 심지어 스티븐이 깔깔거리며 냉장고에 붙여놓았던, 우스꽝스러운 이탈리아식 영어 문장의 자석들까지. 하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마치 내 이메일 계정처럼.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 pp.31-32

싸우고 싶지만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재키가 여기 있었다면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려줬을 텐데.
재키의 마지막 강의가 생각났다. 어느 4월 말 오후, 조지타운 아파트에서 바자회를 하며 이케아 양탄자와 주방용품, 주전자와 프라이팬 따위를 팔던 날이었을 것이다.
“작게 시작하면 돼, 지니.”
재키가 말했다.
“일부 집회에 참석해서 전단을 나눠주고, 몇몇 사람들에게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야. 너 혼자 세상을 바꿀 필요는 없어.”
그리고 일반적인 선전 구호가 이어졌다. 민중들이여, 한 번에 한 걸음씩, 작은 것부터, 당신이 바꿀 수 있길.
패트릭이 비웃던 말들, 나 역시 그를 따라 비웃던 말들이었다.
--- p.245

“이게 바로 옛날 방식이 통하지 않았던 이유에요. 항상 무슨 핑계가 있지요. 애가 아프거나 자녀의 학교 행사가 있다거나 생리통 같은 거 말이에요. 아니면 출산휴가라든지. 언제나 문제예요.”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가 차서 입이 딱 벌어졌다. 모건은 아직 할 말이 남은 것 같았다. 펜을 집어 들고는 허공을 쿡쿡 지르며 말을 이었다.
“진, 머릿속에 새겨야 해요. 당신 여자들은 믿을 수 없으니까요. 이제 세상은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50년대를 떠올려봐요. 모든 게 괜찮았잖아요. 좋은 집에, 멋진 차가 있는 차고에, 식탁 위에는 늘 음식이 있었죠. 모든 일이 얼마나 순조로웠다고요! 우리는 여성 노동자가 필요 없었어요. 당신이 이 모든 분노를 극복하면 알게 될 겁니다. 더 나아질 거라고 깨닫게 될 거예요. 당신 애들한테도 더 좋은 일이죠.”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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