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는 천도교여성회100년사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핀다. 특히 100년사를 서술함에 있어 시대구분을 시도하였다. 각 시기별로 여성회의 활동 경향과 조직 운영상의 내외적 시대적 환경적 여건을 고려하여 여명기 - 창립기 - 시련기 - 재건기 - 준비기 - 성장기 - 개화기 - 전환기로 나누어보았다. 이로써 시대와 짝하여 나아가며, 또 여세동귀하고자 하는 천도교 여성의 노력과 더불어 그 시대 시대의 여건에 따르는 한계를 동 시에 보이고자 하였다. 이로써 각 시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지만, 이것이 고정된 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지난 100년 동안 천도교의 여성 선열들이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한결같이 하여 시련을 극복하면서 모심과 살림의 한길을 걸어온 점에서는 초지일관하고 수미쌍관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먼 훗날에는 이 100년의 역사 전체가 천도교여성회가 알에서 깨어나는 시기였다고, 한마디로 갈음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제1부 天宙時開 - 시간으로 본 여성회 100년」중에서
천도교여성회의 출발점을 어디로 삼을 것인가.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부터 100년 전인 포덕 65년(1924)이라는 데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지만, ‘한울여성’으로서의 ‘천도교 여성’이 탄생한 시점을 생각해 보면 그 기점은 동학 창도시기로 올려 잡아야 한다. 수운대신사가 동학을 창도한 포덕 1년(1860) 4월 5일은 훗날 천도교여성회 창립일이 되었고(창립기념식은 천일기념과의 중복을 피해 3월 25일 거행), 또 대신사 부인 박씨 사모님이 여성으로서 최초의 동학도인(천도교인)이 된 사실, 박씨 사모님과 수양녀가 신유포덕 이래 용담으로 구름같이 몰려오는 수많은 동학(천도교)도인들의 의식주를 도맡아 돌봄을 진행한 것, 또 수운대신사가 노비 두 사람을 해방하여, 수양딸과 며느리로 삼은 일 등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수운대신사를 비롯하여 해월신사, 의암성사 등이 어떻게 ‘거룩한 내 집 부녀’이자 ‘나의 스승’으로서의 여성을 재발견하고 이 세상에 선포하였는지, 그리고 왜 부화부순이 우리 도의 종지라고까지 하였는지, 또 「내칙」과 「내수도문」 등을 찬술하여 여성들에게 베풀어주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천도교 여성운동의 근본정신이며, 천도교 여성이 앞장서야 할 다시 개벽 운동의 근본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 장에서는 천도교여성회가 창립되기 이전 ‘한울여성’의 정체성이 서서히 밝아져 오던 내력을 살펴본다.
---「1장 여명기 한울여성의 탄생 1824.10.28.~1924.4.5.」중에서
포덕 65년(1924) 4월 5일 천도교여성회(내수단)가 창립되고(3월 25일 창립 준비회의) 이후 10여 년의 기간은 ‘천도교여성회 창립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수운대신사 탄신 100주년, 그리고 창도 65주년, 수운대신사 순도 60주년을 맞이하며 창립된 여성회는 이 10년 동안 창립 주역의 노고근면하는 정성과 공경, 믿음의 힘으로 천도교여성회의 깃발을 높이 세웠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과 교단의 분란, 그리고 주옥경 사모님 등에 주어진 고단한 역경 속에서 순탄하기만 한 시기는 아니었으나, 막히면 뚫고 다시 막히면 우회하며 천도교여성회 100년의 주춧돌을 깊고 넓게 심어 갔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천도교여성회 창립기 10여 년간의 활동을 살펴본다. 창립기에는 여성회(내수단)의 정체성(단원 자격 연령), 조직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본부와 지부의 유기적인 연결망 구축 방법, 여성회(내수단, 여성동맹)의 고유한 활동 영역의 확보 등을 두고 고심이 깊었던 시 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주옥경 회장(대표)이 지역 순회를 통해 지부를 확장하고, 회원들의 마음 을 고무 진작시킨 기풍은 이후 여성회 조직 활동의 가장 근본적인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는 점에서 창립기의 의의를 살펴볼 수 있다.
---「2장 창립기 천도교여성회 창립과 확장 1924.4.5.~1936.4.5.」중에서
창립 초기의 왕성한 활동이 채 꽃피기도 전에 분열 등의 시련을 겪던 천도교여성회는 주옥경 회장이 다시 5대와 6대 회장을 맡으면서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분열을 겪으면서 천도교단과 마찬가지로 여성회도 침체와 좌절의 고비들을 겪어야 했다. 내수단, 여성동맹, 내성단, 부인회, 내수회 등의 여러 이름을 써야 하는 조직상의 난관 속에서도 천도교여성회는 주옥경 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도력을 통하여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생명살림, 도가살림, 교단살림, 세상살림의 역할을 위한 모색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포덕 78년(1937) 이후 일제강점하의 조선반도는 전시체제로 재편되었고, 각종 사회단체가 해산되거나 재편되는 가운데 종교단체 내 부문 조직에도 신산한 시련의 바람이 불어 닥쳤다. 1937년부터 해방이 되는 1945년까지 천도교여성회는 마치 수운대신사 순도 이후의 선열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엄혹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마침내 찾아온 8·15광복은 천도교여성회(내수회)에게도 기사회생의 서광을 비추었다. 해방공간의 혼돈 속에서 천도교여성회는 새로운 국가 건설에 일조하고자, 의미 있는 활동을 찾아 나갔다. 그러나 뜻있는 성과를 채 거두기도 전에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여성회 또한 엄혹한 전쟁 시기를 겪어야 했다.
---「3장 시련기 일제 말기체제와 분단, 그리고 동란 1936.4.5.~1956.4.4.」중에서
시련기의 천도교여성회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둘리면서도 ‘한울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간난신고의 세월을 지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결코 완전히 멈춰 버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도 남는다. 이 시대의 여성들의 활동은 여성회 100년 역사에서 가장 가느다란 협곡이자 부분부분 흔적마저 지워져 버린, 때로는 지워 나가야 할 역사의 비탈길이기도 하다. 그 고난과 눈물의 발걸음 위에 비로소 100년 천도교여성회사가 가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휴전 이후 교단을 수습해 나가는 과정에서 천도교 여성들은 중앙총부를 중심으로 한 교단 재건 노력을 뒷받침하는 한편으로, 여성회 자체도 재건의 의지를 굳건히 하면서, 시련을 이겨나갔다. 이 혼란스러운 과정을 시종일관 지휘하고, 뒷받침하며, 독려한 사람은 역시 주옥경 회장이었다. 주옥경 회장의 의지와 권위에 기대어, 천도교여성회는 혼란한 역사 시기를 건너 빛나는 깃발을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주옥경 회장은 포덕 100주년(1960)을 교단 재건의 결정적인 전기로 삼고자 하였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등의 상황으로 이는 꽤 지연되었으나, 결국 재건기를 지나 천도교여성회 시대(1968.9.15)를 맞이하며, 그 내적인 적공(積功)의 결실이 나타나게 된다.
---「4장 재건기 폐허 위에 다시 세운 깃발 1956.4.4.~1968.9.15.」중에서
이 시기는 천도교여성회가 창립된 지 반세기를 넘어서고, ‘천도교여성회’라는 이름으로 여성회가 거듭나게 되면서 성장과 도약을 시작한다. 제2기라고 해도 좋고, ‘천도교여성회 시대’라고 해도 다. 제23대 주옥경 회장(마지막 임기)에 이어 제24, 25대 회장을 역임하는 최시영 회장은 여성회(내수단) 창립위원 세대의 마지막 회장이다. 그러나 재건기(1956~1968)를 지나고서도 다시 준비기라는 과도적 시기를 필요로 했던 것은 교단 내의 분규와 관련이 있다. 준비기 초기는 최덕신 교령이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교단 중흥의 희망을 불 지피기도 하였으나, 후기 이후 신구 분열과는 또 다른, 교단 운영의 노선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 여성회의 재건을 지속시키지 못하였고, 또다시 준비기를 필요로 했다. 이 시기에 여성회는 여성 지도자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수도연성의 열기를 뜨겁게 달구었으며, 전국 지부순회를 일상화함으로써 여성회가 되살아날 수 있는 동력을 비축해 나갔다. 교단은 내분의 상처를 씻고 수련 열기를 가속화하며 다음 시대를 준비해 나갔던 것이다.
---「5장 준비기 여성운동의 힘을 쌓고 기르다 1968.9.15.~1980.5.9.」중에서
광복 - 6·25 전쟁 - 전후 복구 시기를 지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던 포덕 110년대를 지나 포덕 120년대에 접어들면서 사회적으로는 민주화운동이 시대적 과제로 대두되는 한편으로 포덕 110년대의 고도성장 효과가 다각도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세계의 경제 환경(3저)과 맞물려 경제성장이 고도화되는 가운데 포덕 120년대는 군사정권과 이에 맞서는 민주화 세력의 싸움이 가속화되었으나 교단적으로는 포덕 110년대 후반기부터 불기 시작한 수도연성 열기가 교회중흥의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여성회는 세대교체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후 도약이라고 할 만한 성장을 일궈나가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시작된 가장 중요한 새 바람은 『천도교여성회보』의 창간이다. 이는 오늘날까지 약 40년을 이어오며, 여성회 성장, 발전, 안정을 도모하는 큰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 시기 역대 회장들은 지부순회를 통한 활성화와 수도연성을 통한 내적 역량 강화라는 일관된 목표를 큰 틀에서 유지하면서, 여성회의 체계화와 안정화도 동시에 진행하였다. 동·하계 수련의 제도화와 단기수련과 교양교육 강좌 개설, 문화사업과 대외협력 사업 등, 내적인 활동의 다양성 확보와 외연 확장이 동시에 비교적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6장 성장기 도약을 향한 새로운 시대 개척 1980.5.9.~2001.3.30.」중에서
포덕 141년은 서기 2000년으로 세계사적으로는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이때부터는 성장기에 축적된 여성회의 내적 역량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세대교체를 이루며, 여성회 활동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주말수련이라는, 수련의 일상화를 꾀하는 문화이자 제도를 창안하여 오늘날까지 25년 동안 이어오고 있으며, 수련도 중흥기를 지나 다각화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갔다. 또한 급격한 사회변화와 맞물리며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여 나갔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여성회는 그동안 축적해 온 힘을 바탕으로 기념비 건립, 수도원 건립에 이어 복지관 건립 같은 굵직한 기념사업과 선양사업을 전개하였고, 어린이 수련 프로그램, 각종 교육 프로그램 운용도 중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고, 또한 중요한 성과를 낳은 내적 기반이 되기도 하였다.
---「7장 개화기 구녀일남의 시대를 열어 가다 2001.3.30.~2019.3.12.」중에서
새로운 임기가 시작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포덕 160년(2019) 말(12.31)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세계는 일시에 ‘멈춤’과 ‘비대면 시대’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시대 전환의 국면이 갑작스럽게 전개되었다. 세계사가 코로나 이전(BC)과 코로나 이후(AC)로 나뉘게 되었다. 여성회는 오랫동안 안정화돼 오던 수도연성과 교육 프로그램이 중단되면서 커다란 타격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곧 비대면 일상에 적응하며 여성회는 ‘비대면 온라인 수련’이라고 하는 새로운 문화를 도입하며 적응하고, 나아가 이를 활용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 나갔다. 이런 중에 다가오는 여성회 창립 100주년을 새로운 백년을 위한 비전을 마련해 나가야 하는 과제도 수행해 나갔다. 또 이 시기에는 이미 20, 30년 전부터 예고되어 왔던 기후위기가 전면적으로 현실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기상재난이 잇따르고, 한국 사회도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른바 지구적인 차원의 중일변이라고 할 인류세의 도래이다. 이러한 전환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성회는 지난 100년 동안의 경험과 지혜를 모두 녹이고 다시 빚어내어, 모심과 살림의 길을 새롭게 걸어가야 하는 사명을 재인식하는 중이다. 천도교여성회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며 위기에 처한 인류, 생명생태계, 전 지구를 모시고 살리는 천도교여성회로서 천도교단의 개벽적 전환과 세계사의 다시 개벽이 여성회의 발걸음과 함께하고 있다.
---「8장 전환기 새로운 100년을 위한 전망 2019.3.12.~현재」중에서
제2부는 천도교여성회100년사의 활동 내용을 공시(共時)적으로 고찰한다. 천도교여성회 활동을 · 조직 및 기획사업 · 조사 및 학술연구 사업 · 기념사업 · 문화사업 · 사회활동과 대외협력사업 등으로 구분하여, 종합적인 고찰을 시도하였다. 말하자면, 여성회 활동을 분야별로 큐레이션(분류 및 재배치)한 것이다. 분류 항목이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유사한 활동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다소 이질적인 것이 묶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러한 작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된 여성회의 각종 활동을 그 내적인 연관에 따라 재구성하여 살펴봄으로써, 각 활동의 이면에 깃든 깊은 의미, 특히 동학 천도교적인 의의를 드러내는 데 유용하다고 보았다. 제2부 말미에 마무리하는 말로 천도교여성회 미래 100년의 전망을 담아, 이 책이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미래사, 개벽사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제2부 地宇空闢 공간으로 본 여성회 백년」중에서
천도교여성회의 ‘조직사업’은 여성회 최고의결기구인 ‘총회’(대회, 중앙확대위원회, 총회)의 연혁과 천도교여성회(내수단) 창립 대회에서부터 제99주년 기념식까지의 ‘창립기념식’ 연혁을 담았다. 이를 통해 역대 천도교여성회본부 임원, 천도교여성회의 명칭 변천사도 자연스레 정리되었다. 총회(대회)는 임원 선출 외에 중요한 사업 결의도 하는바 그 내용과 각 총회 또는 그 전후로 중요한 조직 관련 특기할 만한 내용은 ‘특기사항’으로 밝혀 두었다. 창립기념식 일람은 모두 100회(창립 대회 포함) 에 달하지만, 자료의 미비나 또 시대 상황으로 말미암아 전체 기념식으로 치러지지 못한 사례 등이 있어 상당수가 공란으로 남겨져 있다. 그러나 ‘창립 100주년’의 의의를 살리는 뜻에서 그 제목만이라도 표기해 두었다. 그 빈 여백에 채워져 있었어야 할 여성회 선배들의 고단한, 그러나 신성한 여정을 마음으로나마 그려보아 주시기를 바란다.
---「1장 조직사업」중에서
조사 및 학술연구사업은 여성회의 내적 역량이 성숙되었다는 중요한 지표이면서, 또한 여성회의 역량이 성숙해 가는 계기가 되는 사업이다. 최초의 본격적인 조사사업인 수운대신사 부인 박씨 사모님 사적을 3차에 걸쳐 조사한 것을 비롯하여 천도교 여성운동의 교리 교사적인 배경을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연구 및 강연 활동, 학술세미나, 그리고 여성회원들이 참여하는 학습 활동이 담겼다. 초기에 동학-천도교에 관심을 가진 외부 학자에 의해 연구되던 데서, 포덕 140년대(2000) 이후에는 천도교인으로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천도교의 여성해방 사상이나, 여성회 활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여성회 창립 100주년을 맞으며 다시 한 단계 높아지고 깊어지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2장 조사 및 학술연구사업」중에서
이 장에는 천도교여성회가 벌여온 여러 가지 ‘기념사업’들을 담았다. 선양사업은 스승님 및 사모님과 역대 회장, 원로 등의 업적과 정신을 선양하고 숭모하는 사업이다. 그리고 교단 차원의 사업이지만 여성회원들이 주관하거나 특별한 성력을 쏟은 사업들을 소개하였다. 또한 수도원이나 복지관과 같은 기념비적 사업도 소개하였다. 고난으로 점철된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재정적 환경의 불리한 여건을 무릅쓰고 천도교 여성들은 오직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하여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입안하고 성취시켜 왔다. 이러한 성과들은 향후 여성회가 전개할 사업들의 중요한 귀감이 될 것이다.
---「3장 기념사업」중에서
여성회는 창립 초기부터 교단 내 중요한 기념일에 청년회, 소년회 등과 협력하여 문화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시행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시련기를 거치며 문화사업 영역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천도교여성회 시대를 맞이하며 회복된 여성회의 문화적 역량은 음악과 미술, 출판 분야로 확장되어 왔다. 또한 신앙 용품을 개발하고, 농산물과 공예품을 판매하는 사업 - 한울장터를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이후에 좀 더 본격적인 판매사업을 통한 한울경제공동체를 기약하는 소중한 경험들을 모았다.
---「4장 문화사업」중에서
천도교여성회가 창립 당시(내수단) 내세운 목적은 “천도교의 종지에 들어맞는 새 세상을 만들기”였다. 이는 여성회 활동이 내적으로 내수도(內修道)를 통한 도성입덕을 하는 것에서부터 외적으로 대 사회적인 개벽운동에 이르는 폭넓은 활동을 포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장에서는 여성회의 사회 적인 활동으로 봉사와 치유 사업, 사회운동, 생명생태사업, 통일운동 및 대외협력사업을 담았다. 여성들은 한편으로 동하계수련과 특별수련, 주말수련과 봉사활동을 통해 모시고 살리는 여성 특유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대외적으로 이 세상 사람을 한울님으로 모시고, 한울 세상으로 살려내는 사업에도 열과 성을 다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하나의 자리마다 여성회원들의 발길과 손길이 미치도록 하기에 회원들은 숨이 턱에 차는 노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한두 줄의 건조한 문장 이면에 깃든 여성회원들의 노고근면하는 정성, 공경, 믿음을 깊이 헤아려 주기를 바란다.
---「5장 사회활동과 대외협력」중에서
여성회 미래 100년의 전망 _ 여성회의 10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 전쟁기, 분단 체제하의 극심한 자기검열적 사회의 전개 속에서 여성회는 ‘참된 진리의 삶과 신앙의 길’을 추구하며, 불철주야 노고근면하며 모심과 살림의 가치 추구를 위해, 정성과 공경과 믿음으로 일관해왔다. 여성회 100년사에는 끊임없는 재기의 순간만큼이나 수많은 좌절과 실패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오늘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성공의 역사에서보다 그 실패와 좌절의 역사적 경험에서 미래로 나아갈 힘과 지혜와 용기를 얻는다. 아래에서는 여성회 100년사의 숱한 노력의 열매 중 앞으로 되살려 나갈 것들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시대의 비전 또는 과제로 제시해 본다.
---「다시 시작하는 여성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