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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큰글자도서)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큰글자도서)

: 그리움을 담은 이북 음식 50가지

위영금 | 들녘 | 2024년 03월 1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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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166*243*20mm
ISBN13 9791159259791
ISBN10 115925979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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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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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이 일상을 덮쳤다. 많은 사람이 그저 먹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죽었다. 역전 골목과 길거리에 먹거리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존재도 알지 못했던 장마당이 갑자기 늘어났다. 먹거리는 신념이나 가치보다 우선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거친 것과 부드러운 먹거리는 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렸다. 처음에는 소나무 껍질을 가공한 것과 각종 나물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중국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빵이며 기름에 튀긴 완자들이 즐비하게 늘어섰다. 빵 하나에 집을 내놓은 사람도 있으니 어려운 시기 음식은 곧 하늘이다.

하늘 같은 음식을 얻으려고 사람들은 갖가지 먹거리를 개발했다. 맛보다는 허기를 채우는 것이 중요했던 시기, 두부는 소화가 빠른 고급 음식이었다. 두부 한 모보다는 중국에서 들어온 밀가루로 만든 완자나 꽈배기 하나가 낫다. 덜 배고프면서 칼로리가 높아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영양가 있는 밥이 필요했다. 수요를 알아챈 사람들이 만든 것이 두부밥이다. 두부밥은 두부를 삼각으로 잘라 기름에 튀거나 구워서 가운데 칼집을 내고 쌀밥을 한주먹 넣고 양념을 올리는 것이다.

두부밥은 한 개를 먹어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어려운 시기 개발된 영양 만점 음식이다. 장마당에는 두부를 기름에 튀겨 밥을 넣고 양념을 올린 쪽배 모양의 두부밥을 파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옥수수 뿌리나 풀로 만든 음식은 거칠어서 목으로 넘기기 힘들다. 이전에는 돼지에게나 주었던 술지게미로 만든 음식도 있다. 먹고살기가 힘드니 술지게미로 만든 음식을 먹고 취한 듯 비틀거리기는 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용식품조차 없어서 죽어갔는지 모른다. 그 시절 두부밥은 사람을 살렸다. (중략)

돈 한 푼 없어 음식 주위를 돌고 돌다가 기름 냄새만 가득 채우고 돌아서던 날들. 굶어 죽기 싫어 얼굴에 꼬질꼬질한 때가 가득해도 눈만은 반짝이는 아이들이 장마당에서 무리지어 음식을 훔칠 틈새만 노린다. 어느새 날쌔게 먹을 것을 훔치면, 사람들은 훔친 사람을 신고하는 것보다 음식에 그물을 치고 방어하는 쪽을 택한다. 성공하면 의리 있게 나누어 먹는 아이들을 보라.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 누가 누구에게 도둑이라고 벌을 주겠는가.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악을 쓰고 살아남았다.

어려운 시기를 아프지 않게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은 양념을 올린 한 개의 두부밥, 인조고기밥을 그때처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다.
--- 「고난의 행군 속 두부밥과 인조고기밥」중에서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 누군가는 지나가는 말로 인사치레한 것일지 모른다. 나는 밥을 먹겠다고 고향을 떠났고, 밥을 먹겠다고 얼마나 비굴했는지 모른다. 밥을 먹지 못해 가족을 잃었고, 밥을 얻으려 별일을 다 한다. 밥은 곧 생명이고, 하늘이고 신神이다.

밥솥을 열면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쌀밥이 있다. 지금의 삶에서 이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는 쌀밥을 먹을 때 제일 행복하다. 이것을 먹으려 얼마나 험한 고생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는가. 밥 한술이 없어 먼저 간 사람들에 비하면 성공한 삶이다. 반찬이 없어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흰밥이 있으면 간장만 넣고 비벼 먹어도 좋다. 뜨거운 밥을 그냥 삼켜도 좋다.

개 한 마리가 흰쌀밥이 싫다는 듯 그릇을 엎는 것을 보고 놀랐다. 강 하나 건넜을 뿐인데 시간여행이라도 했는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동정하는 척하지만 그뿐이다. 내가 가진 것이 없으니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게 밥이 없을 뿐이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나, 내가 하는 무언가는 불법이니 비굴할 수밖에 없었다. 밥이 없으면 인격도 존엄도 그다음 순서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비굴해서라도 어야든 살아야지.

밥을 먹으려면 일단 돈을 벌어야지. 재봉틀(미싱) 굴리는 재주가 있어 커튼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뻔히 눈치를 채고도 내색 않고 나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착한 사장님을 만났다. 필요할 때 쓰려고 급여에서 얼마를 저금했다. 이렇게 모은 돈이 목돈이 되어 훗날 두만강을 건너온 언니에게 건넬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람을 채용하면 회사에 지장이 있어 장사도 안 된다. 나 같은 사람을 신고하면 돈도 왕창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일하는 동료들이 모두 한족이어서 일을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장님은 무슨 일이 생기면 능란한 중국어로 방어하며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돈이 생기니 얼마나 기쁘던지. 그렇다고 눈여겨 보아둔 옷을 사 입을 생각은 못하고 남편의 와이셔츠부터 샀다. 아마도 나는 내심 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매고 일하는 사람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중략)
밥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남의 땅에서 불안해 견딜 수 없다. 잘 사는가 했는데, 친척뻘 되는 가까운 사람이 신고하는 바람에 급하게 떠나야 했다. 나 혼자라면 미련없이 떠날 수 있어도 6살 된 아들을 두고 떠나는 발걸음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북경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 멀리멀리 숨어들었다. 머물 곳 없는 떠돌이가 숨을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세상과 부딪치기에는 힘에 부치니, 시체가 되어 숨도 쉬지 못하고 이런저런 괴로움을 참으며 살았다.
--- 「솥에서 별처럼 빛나는 쌀밥」중에서

국수와 국시의 차이는 무엇일까? 국수는 밀가루로 만들고 국시는 밀가리로 만든다. 그럼 밀가루와 밀가리는 뭐가 다를까? 밀가루는 봉지에 들어있고 밀가리는 봉다리에 들어있다. 같은 말을 맛깔스럽게 버무려놓았다. 물론 남쪽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다. (중략) 지금은 결혼식에서 국수가 다른 음식들에 밀려서 구석을 차지하고 있지만, 북쪽에서는 국수를 잘 말아야 잔치를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유가 있는 집은 농마국수를 내었지만, 강냉이가 많은 지역에서는 강냉이 국수를 말아내었다. 따뜻한 국물에 매콤한 고명을 올려서 푸짐히 대접한다.

어릴 때에는 엄마 심부름으로 국수그릇을 많이도 들고 다녔다. 국수재료인 강냉이 가루를 미리 맡겨두고 약속된 시간에 나온 국수를 찾아오곤 했다. 흔히 국수를 ‘누른다’고 하는데, 반죽한 면을 분틀에 넣어 압착해서 누른다. 이 과정이 번거롭기 때문에 가정용 분틀에 국수를 전문으로 눌러주는 곳이 있었다. 수고비는 없고, 눌러주는 집에서는 가공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집짐승을 키웠다.

옥시국수를 시원하게 먹으려면 김칫국물에 말아서 먹으면 된다. 쩡한 함경도김치에 옥시국수를 말아 먹으면 속이 시원하게 풀린다. 온면으로 먹고 싶으면 까나리 육수를 만들어 감칠맛을 더하고 양파 볶은 것을 고명으로 올린다. 파와 마늘 다진 것을 넣고 볶다가 고춧가루를 넣으면 적은 양으로 보기 좋게 만들 수 있다.
--- 「안동국시 닮은 강냉이국수」중에서

올챙이국수를 먹은 지도 오래되었다. 강냉이가 익어가는 초가을이면 올챙이국수가 생각난다. 올챙이국수를 먹으려면 옥수수가 적당히 여물어야 하고 당도가 높아야 한다. 풋 옥수수를 물에 불려 맷돌이나 기계에 곱게 갈아 걸러낸 물을 가마에 넣고 끓인다. 되직하게 끓이면 묵이 되고, 헐렁하게 해서 구멍이 숭숭 뚫린 틀에 넣어 내리면 올챙이국수가 된다. 틀에 굳이 내리지 않고 바가지 같은 데 에 송곳으로 구멍을 만들어 묵 재료를 넣으면 술술 떨어지는데, 꼭 올챙이 모양 같아서 올챙이국수라 한다. 올챙이국수는 간장 양념을 하거나 동치미, 혹은 나박김치 국물을 넣어 먹는다. 풋강냉이의 달콤함과 매운 고추양념, 시원한 국물 맛에 먹는 음식이다.

옥수수를 수확해 국수를 얻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부드럽고 구수한 올챙이국수를 먹는 순간이다. 개구리 소리가 높아지는 초가을에 여름의 마지막 더위를 식히며 올챙이국수를 먹는다. 강냉이의 풋풋한 향이 입안을 향기롭게 하고 소화도 잘 되는 이것을 여섯 식구가 허기지게 먹었다. 올챙이국수를 어느 지역 음식이라고 꼭 짚어 말할 수 없다. 강냉이가 많이 나는 평안도 음식이라고 소개하기도 하지만, 도시 사람은 이름조차 생소해하기도 한다. 강냉이가 적게 나는 지역이라 할지라도 강냉이 올챙이국수를 맛깔스럽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중략) 올챙이국수를 먹으려 강냉이 이삭이 통통해지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살이 오르는 강냉이를 알알이 발라서 물에 불리고 맷돌에 갈아놓으면 아쉬운 눈물처럼 거품이 일어난다. 엄마는 능숙한 솜씨로 보에 짜서는 연탄불 가마에 넣고 휘휘 저었다. 언제 익을까 두 손 모아 기다린다.

어려운 시기에는 이것도 없어 못 먹었다. 추억을 더듬어 만들어보려고 하니, 강냉이가 그 맛이 아니다. 강냉이의 단맛이 고향의 것보다 덜하다. 마루에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먹어야 하는데 환경도 바뀌었다. 무엇보다 흙을 만져본 지 오래되었다. 심고 파종하고, 풋강냉이를 발라서 불려놓고 맷돌에 갈아 연탄불 가마에 오래도록 저어야 하는 번거로운 공정도 사라졌다.

더위에 지친 어느 날, 부산에서 보내온 초당 옥수수가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황급히 가마에 익혔다. 연하고 달기는 한데 생으로 아삭아삭 씹히는 낯선 맛이다. 혹시 잘못 보낸 건 아닐까, 아직 물도 들지 않은 옥수수를 보내다니. 익숙하지 않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굴려 먹어도 입안에 차지 않는다. 몇 개를 먹어도 도저히 맛을 모르겠다. 올챙이국수가 구수하면서도 입안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 그 너머에 맛이 있는 것처럼, 초당 옥수수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꼬리 달린 올챙이국수로 여름을 식히며」중에서

소슬바람이 옷깃을 스치니 느닷없이 따끈한 뜨더국*이 간절하다. 수제비와 비슷하면서 토속적이고 투박한 뜨더국. 냉장고에 남아도는 재료를 넣어 수제비나 만들어 먹어야지. 재료는 어지간히 들어갔으니 맛없을 리 없다.
뜨더국으로 하루 세끼 먹거리 근심을 덜었다. 밥과 국, 찬으로 구색을 갖추는 것이 아니어서 식사를 준비하기 번거롭지 않다. 가마에 반죽한 가루를 뜯어서 넣으면 된다. 주식과 부식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 간편하다. 배고픈 시절에는 맹물에 나물을 넣고 수제비 조각 몇 개만 있어도 허기를 잊곤 했다. 국물을 넉넉히 넣으면 요술처럼 여섯 식구의 그릇이 가득 채워졌다.

엄마는 뜨더국을 자주 만들었다. 뜨더국 반죽을 시작하면 그릇이 흔들려 부딪히는 소리에 마음은 진작에 가마로 쏠린다. 호박을 숭덩숭덩 썰고, 풋고추를 듬뿍 넣는다. 거기에 된장까지 풀어 구수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참지 못하고 두 손을 턱에 고이고 기다린다. 엄마 손이 춤을 추기 시작하면 반죽한 면은 뜨더국이 되어 국물 속으로 날아간다. (중략) 밀가루가 부족하면 엄마의 눈속임이 시작된다. 많은 것처럼 보이려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늘린다. 대패삼겹살처럼 늘린 수제비를 국물과 함께 끓여 먹음직하게 잘 익으면 엄마는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순서대로 뜨더국을 담아냈다. 엄마 몫은 마지막에, 나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풀때기 뜨더국도 없어서 허기지게 엄마 손끝만 바라보았던 생각은 해서 무엇하리. 배부르게 먹은 때보다 배고플 때 먹은 음식이 또렷하니 참으로 이상하다. 추워봐야 따뜻한 게 얼마나 그리운지 알 수 있고,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춥다고 느끼는 때가 있다. (중그러니 추운 날 따뜻한 위로가 필요할 때, 되는 일이 없어 외롭고 쓸쓸할 때 국밥을 한 그릇 먹으면 뱃심이 생기고 오기가 살아난
다. 속이 따뜻하면 오장이 펴인다. 바람이 차겁다고 느낄 때, 나무에 맺힌 빗방울이 눈물처럼 느껴질 때면 엄마가 만들어준 뜨더국이 생각난다. 기억조차 아프면 그냥 그때처럼 즐겁게 먹을 일이다.
--- 「손으로 뜯어 넣어 뜨더국」중에서

술 이야기를 하려니 술 한잔 생각난다. 술을 마시면 경직된 감각이 풀어지고 없던 용기도 생긴다. 술이 없다면 무슨 멋으로 살랴.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을 ‘술고래’라고 한다. 아버지는 고래만큼은 아니더라도 늘 취하고 싶어 했다. 세상살이 어려워 숯덩이처럼 타들어간 마음도 술 한잔으로 해독할 수 있다는 등 이유를 붙여가며 드시곤 했다. 혼자 마실 수 없으니 이웃을 불러 같이 마신다. 부실한 안주에 취하도록 마신다. 술 마실 일은 계속 생긴다. 이유를 붙이는 것도 나름이라 경조사에서 마시기도 하고, 왕진이라도 나가면 눌러앉아 마시고, 어려운 수술이 끝나면 집도한 의사들이 모여 술 한잔한다. 가끔 실수도 하신다. 아버지 연배의 의사들은 대략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 지주나 부농의 자식이 많아 당원이 아닌 사람들이다. 당원이 되지 못한 콤플렉스가 있어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다투기도 한다. 아이들처럼 상대의 허물을 들추기도 하는데, 기술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속내는 어떨지 몰라도 이북 사람들은 의사를 존경한다. 남쪽에 비하면 북쪽의 의술이 뭐 그리 대단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계 수치에 의존해 진단하는 의술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존경할 만하다. 내가 지켜본 아버지 치료법의 포인트는 ‘감’을 잘 잡는 것이다. 처음에 맥박을 잡고 안색을 살피고 청진기로 듣고 그래도 ‘감’이 없으면 환자에게 말을 건다. 대화하면서 특정 부위가 아닌 몸 전체를 살펴서 진단하고 처방한다.‘감’도 잡지 못하고 처방도 제대로 못하면 환자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중략)
환자는 의사에게 생명을 맡긴다. 의사의 손에 살 사람이 죽기도 하고, 죽을 사람이 살기도 한다. 죽을 고비에서 벗어난 환자는 고마운 마음에 기름이며 술이며 당과류를 집으로 가져왔다. 덕분에 우리 가족도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는 알코올의 힘을 얻어 엉뚱한 일을 하기도 했다. 수령의 사망으로 온 나라가 애도하던 무더운 여름,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거액의 돈이 사라졌다. 술기운이 가득한 아버지가 “수령님께서 서거하셨는데 돈이 무순 필요가 있겠나. 그래서 당 비서 동지에게 애도기간에 써달라고 주고 왔다”고 하기에,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돈은 되돌려 받았지만 엄마는 이 이야기를 두고두고 써먹었다. 코미디 같은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당원이 되지 못한 콤플렉스로 늘 열심히 일했다. 당원이 있는 집 세도가 당당할 때였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결혼 조건으로 입당했는가를 먼저 묻곤 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으니 그렇게라도 자식들에게 신분 상승의 기회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아버지였지만, 술만 들어가면 숨어있던 유머가 드러나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야기로 사람을 웃겼다. 얼마나 마음이 허전했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로 웃고자 했을까. (중략)
아버지는 두만강을 몇 번이나 건넜다. 지형과 언어에 익숙한 아버지가 먼저 건넜고, 다음은 반신반의하는 나를 설득시켜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고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결심이었다.

1999년 2월, 내리는 눈을 어깨에 맞으며 아버지는 어둠 속으로 멀어져갔다. 1960년대 장밋빛 희망으로 두만강을 건너 북조선으로 간 아버지는 초라한 모습으로 옛 친우들을 만났으리라. 나는 찰나에 비친 아버지 모습을 보았다. 성급한 선택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았다. 내리는 눈을 어깨에 맞으며 아버지는 멀어져갔다. 수년의 시간이 지났으니 생존해 계실 것이라는 희망을 내려놓는다.
--- 「술 이야기에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지」중에서

‘풀과 고기를 바꾸라.’
국가 정책이 그러하니 집집이 토끼를 키웠다. 학교에도 토끼우리를 지어놓고 대량으로 키웠다. 그렇게 토끼를 많이 키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산이 많아 토끼가 먹을 만한 풀이 많았고, 토끼는 번식 속도가 빨라 한 번에 새끼를 열 마리 이상 낳는다. 고기만 얻기 위한 것은 아니고, 털을 얻고 배설물로 거름을 만들 수 있다.

학교에서 대량으로 기르는 토끼는 학급이 분담해서 먹이를 충당했다. 각 학급이 정해진 날에 토끼풀을 가져가야 한다. 생활과 밀접한 교육이라지만, 어린 나이에 몇십 리 길을 걸어 토끼풀을 해오는 일은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토끼풀을 뜯다가 이따금 뱀을 만나기도 하고,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 토끼는 돼지나 닭처럼 곡식을 사료로 하지 않아도 되고, 풀만 부지런히 뜯어 넣어주면 된다. 장마철에는 젖은 풀보다는 마른풀을 주고, 토끼우리는 건조하게 해야 한다. 큰 귀가 늘어지면 아프거나 아플 징조다. 번식률이 높고 빨리 크는 만큼 관리에 소홀하면 얻은 만큼 잃을 수 있다.

학생들은 매년 토끼 가죽 몇 장을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져가야 했다. 크고 좋은 것을 많이 제출한 학생에게 일종의 보상으로 답사권이 주어진다. 부모는 자식이 남보다 뒤질세라 기를 쓰고 토끼를 키운다. 장마당이 없을 때는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어 직접 키우지 않고는 얻을 재간이 없다.

토끼고기로 국, 탕, 곰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국과 탕은 국물을 주로 먹기 위해 만드는 음식이다. 국은 물을 많이 넣어 밥과 함께 먹는다. 탕은 남쪽과 마찬가지로 물을 자박하게 넣고 끓여 밥상 가운데 탕 그릇을 놓고 가족이 함께 먹는다. 단지곰은 작은 단지에 재료를 넣고 꼭 봉해 몇 시간을 찐다. 삼계탕처럼 뱃속에 찹쌀이나 약재료를 넣어 푹 고아낸다. ‘고다’는 말이 ‘곰’이 된 것으로, 보약처럼 먹었다. 곰을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한 가마와 단지가 필요하다. (중략)
토끼풀이라는 식물에 얽힌 추억이 많다. 잎사귀 네 개가 붙어있으면 행운의 네 잎 클로버라 한다. 당시에는 토끼풀이 행운을 가져다주는지 몰랐어도, 무수히 피어난 작은 꽃으로 동심을 그렸다. 꽃송이 두 개를 연결해 손목시계를 만들고 둥글게 엮어 머리에 월계관처럼 올려놓기도 했다.

용인 갈천 강남마을은 칡 세상이다. 세상모르게 뻗어가 시퍼렇게 용쓰는 칡넝쿨을 보면서 토끼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나 칡이 많은데 아무도 탐내지 않는다. 아까운 마음 반, 잊고 싶은 기억 반이다. 하지만 살고 있는 곳에 칡이 많으니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함께한다.
--- 「풀과 고기를 바꾸라」중에서

비오는 날, 전을 부친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글 자글 지지는 부침의 리듬이 귀맛 좋게 들린다. 그렇게 기름에 지진 부침은 뜯어먹는 재미가 있다. 비오는 날 기름에 전을 부치면 크고 작은 기억이 몰려온다. 배고플 때 풍겨오는 전 부치는 냄새는 창자를 뒤집곤 했다. 냄새를 막을 방법이 없으니 이웃과 나누어 먹었다. 나누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 것만도 착한 일이다. 사악해질 때는 아귀아귀 먹어도 부끄럼 없을 때가 있다.

수동구에서 작은 시골로 이사했다. 주택이 마련되지 않아 웃방살이*를 했다. 더부살이처럼 몇 년을 살면서 기름에 자글거리는 부침도 제대로 해 먹지 못했다. 남의 집을 빌려 살면서 주제넘게 고소한 기름내를 풍기는 것도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몇 년을 그렇게 살다 집이 마련되어 이사했다. 아버지 소망대로 가구를 맞추어 넣고 유리창도 멋지게 달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집터는 학교 부지가 되었다. 인구가 늘어나니 남녀 혼합이던 학교를 여자 중학교로 분리한다는 것이었다. 집이 있던 자리는 수영장*과 운동장이 되었다. 아버지의 낙담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집이란 가장 소중한 안식처이고 가족이 살아갈 수 있는 둥지이다. 살 만하면 이사하고, 살 만하면 이사를 하게 되니 가장인 아버지가 느꼈을 책임의 무게가 새삼스럽다. (중략)
아파트 주변에 하모니카 단층집이 있으니 자글거리며 부침을 하기가 불편했다. 아파트에 사는 열 집 중에 부침을 자주 해 먹을 수 있는 가정은 몇 집 되지 않는다. 고소한 냄새가 아파트 베란다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늘어선 단층집으로 속속 들어간다. 문이 열려있는 집부터 전을 주고 돌아오면 정작 집에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의사와 탄광에서 급여를 받는 사람은 먹이사슬처럼 엮여있다.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고, 고통이 멈추면 고맙 다고 백번 절하고 성의를 표하려 한다. 식용유를 다루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치료를 받은 뒤 커다란 통으로 기름을 가져와 풍족히 먹었던 적도 있었다. 식용유를 많이 사용하는 곳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영양제 식당’이다. ‘영양제 식당’은 석탄을 더 많이 얻기 위해 탄광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해주는 곳이다. 음식이 풍부한 남쪽에서는 그게 별거냐 생각할 수 있겠지만,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아주 작은 특별 대우에도 감격한다. 그러고는 ‘충성경쟁’을 하며 일한다.
--- 「지글 자글 지짐을 부치다」중에서

힘들고 지치면 명태나 오징어를 뜯는다.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고향에서 먹던 기분은 여전하다. 마음이 힘들면 어김없이 비릿한 생선음식이 그립다. 쌀밥에 동태국, 김치만 있으면 세상 더없이 행복했던 시절이다.
한국에서 길을 걷다 보면, 담백한 동태국을 멋스레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군가 내게 무엇을 먹을까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동태탕이라 한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게 당기는 명태는 하루 세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처럼 나의 뼈가 되고 살이 되어 떼어낼 수 없는 한 부분이 되었다.

북에서 나와 한국으로 입국하면 국정원에서 약 한 달간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안성에 있는 하나원으로 옮겨 석 달간 초기정착교육을 받는다. 하나원에 머무는 때에는 아직 대한민국 국민으로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이때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자유롭지 않다. 새로운 희망과 불안이 엇갈리는 때이다.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어도 공통된 점이 있으니, 하나같이 명태와 오징어 뜯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향수를 자극하는 명태, 오징어를 씹으며 막막한 불안을 꾹꾹 눌러 참았다. 용돈을 털고 부족하면 누구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기어이 가져다 먹는다.

명태, 오징어가 무어라고 그리도 집착하는지,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과 향수를 누르며 오징어를 씹는다. 명태와 오징어는 평생 몸에 각인된 맛으로 불안한 상황을 이길 수 있게 해주었다.
--- 「명태와 오징어는 고향의 향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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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던 고향 음식의 맛과 그리움이 절절히 녹아있는 책,
북한 음식을 알려면 꼭 읽어야 한다.
-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명예교수, 한국식생활문화학회 고문)
“예쁜 옷, 멋진 차, 좋은 집… 여기 와서 보니까 어때?”우린 아직 이따위로 묻고 싶은지도 모른다. 이런 뻔하고 유치한 질문은 이제 그만두고 다른 호기심도 한번 가져보자.
옳은 삶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그 길을 선택하기 위해 우린 목숨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을 요구하기에, 탈북의 경험은 탈북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인 모두에게 더없이 중요한 자산이 된다.

『밥 한번 먹자는 말에 울컥할 때가 있다』는 음식과 인생에 관한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한편으로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인간의 가장 소중한 가치들을 환기하도록 만든다. 위영금 작가를 존경한다. 무엇보다 두려움 없는 그 용기를!
- 김성신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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