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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폭폭 그 옛날 완행열차

칙칙폭폭 그 옛날 완행열차

시와정신시인선-50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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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30*205*20mm
ISBN13 9791189282585
ISBN10 1189282585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요즘 열차는 너무 영악해졌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제 시간 맞춰
원하는 역 착착 도착하는 열차가
완행열차는 이제 흘러간 옛 노래야
옛 노래라는 말 너도 공감할 수 있겠지
그 옛날 호남선 비둘기호 열차서
우린 서로 눈빛 맞았으니까
그때는 급행열차 먼저 보내려고
두어 시간 연착은 아주 다반사였지
그 덕으로 목포역 아쉽게 접고
송정리 네 자취방서 함께 묵게 됐잖아
그 역까지 가는 대여섯 시간 동안
우린 오징어 잘근잘근 씹으며
사돈의 팔촌까지
서로의 신상 탈탈 털었잖아
그러니까
수십 년 동안 얼굴 맞대고 있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우리는
아주 쇠심줄같이 질긴 인연이네
철거덕 철거덕 아련히 풀어진 시간 너머

낮은 지붕 아래 불빛은 얼마나 아늑했는지
건널목 지나칠 때마다
기적소리 또한 얼마나 우렁찼는지
그 시절 완행열차는 다시 오지 않을 거야

자기야 돌아오는 토요일
아쉬운 대로 무궁화호 열차 타고
그때 그 기분
다시 한 번 살려 보지 않을래
아련한 기억 조각조각 이어붙이며
종착지인 목포역까지
--- pp.44-45 「칙칙폭폭 그 옛날 완행열차」중에서

남녘은 벌써
뜨거운 피 흡족히 수혈 받아
동백꽃망울 정성스레 부풀린다
흩날리는 눈발 어깨 인
해제반도 끝자락으로 가는 길
가뭇없이 두봉산 사라지고
어느새 소복소복 쌓여가는 함박눈
이십여 리 길마저 말끔히 지운다
소담스런 눈발 속
막막한 발길 외따로 고립무원이다
바람소리 숨죽이고
마른 삭정이조차 하느작대지 않는다
그 흔하디흔한 온갖 소리들
감쪽같이 사라진
얼마 만에 맛보는 찬란한 고립인가
뜻밖에 맞이한 반가운 애인처럼
축복받은 폭설 위
환장할 고립 켜켜이 쌓아진다
저녁나절 드리운
초경 빛 노을 앞산마루 설핏 걸리는데
눈발 아직 짱짱하다
두봉산 언저리만 발밤발밤 헤매다
저문 발길 따라 묻어온
찬란한 고립 끌어안고
읍내 여관서 흡족히 더불어 눕는다
--- pp.82-83 「찬란한 고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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