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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서정산문선 6

한국대표서정산문선 6

백시종 등저 | 서정문학 | 2024년 03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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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08쪽 | 522g | 140*225*16mm
ISBN13 9791191155457
ISBN10 119115545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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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표서정수필선]

나는 여사친 덕에 74세 나이에 늦깎이 문인이 된 대단한 행운을 얻었다.
“제72회 학생백일장 및 제31회 시민백일장 공모”
한국문인협회 여수지부가 주관하여 오랜 역사와 권위가 있는 공모이니 응모해 보라는 권유였다. 2022년 10월 초, 내게 이 역사적인 포스터를 카톡으로 보낸 분은 15년 전부터 지역사회 중견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성과 열정을 겸비한 분이다.

그간 나는 한 번도 백일장이나 문예 공모전에 응모해 본 적이 없었다. 평소에도 시인이나 작가들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기에 실소하며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며칠 후 여사친이 찾아왔다. 나더러 가끔 신문 칼럼도 쓰고 연구 사례도 많이 한 걸 봤으니 한번 도전해 보라는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에 언젠가는 회고록을 쓰겠다는 항목이 있고 ‘권하는 장사 밑지지 않는다.’는 속담도 생각나서 응모해 보겠다고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한데 문제는 그 뒤다. ‘등대’라는 주제가 있어서 어떻게 주제에 맞는 글을 써야 할지, 무슨 얘기를 주 내용으로 뼈대를 잡아야 할지, 고민으로 한 주간 뇌가 멈춘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나의 등대’라는 제목으로 내 일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준 사람들을 산문으로 써서 제출했다. 보름이 지나 지방신문에 입상자 발표는 꿈에도 기대하지 못한 내 글이 ‘장원’이었다. 나보다 더 기뻐한 사람은 나를 강권한 여사친이었다. 나도 환호라도 지르고 싶은 기쁨을 내색하지 않으려니 힘들었다. 창작지원금과 한국문인협회장 상장도 받고 문인협회 여수지부 회원이 되는 특전도 얻었다.
--- 「늦깎이의 도전과 행복 / 김종호」중에서

늦가을 햇살을 받은 드넓은 팔당호의 물낯에는 다산 선생의 오랜 이야기가 묻어나듯 쉼 없이 윤슬이 반짝이고 있었다. 팔당댐 삼거리에서 공도교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을 걷자, 갈림길이 나왔다. 갈림길에서 다시 오른쪽 길로 들어서자 양옆으로 때죽나무, 산벚나무, 꾸지뽕나무, 느릅나무와 칡덩굴, 머루덩굴이 우거진 좁은 길의 마재고개가 나타났다. 마재고개에 잠시 다리쉼을 하며 다산 선생이 한평생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며, 이 길을 거쳐 한양 도성을 오갔을까 떠올려 봤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니, 금강산에서 발원한 북한강과 삼척시 대덕산에서 발원한 남한강이 정답게 어우러져 두물머리 나루터를 지나서 휘돌아 흐르는 곳에 강변 마재마을이 보였다.

마을 초입 길섶에는 들국화가 소담하게 피어 수줍은 처자처럼 가녀린 허리를 바람에 내맡긴 채 하늘거렸다. 들국화를 바라보자니, 문득 다산 선생이 남인계 선비들과 조직한 친목 모임인 죽란시사가 떠오른다. ‘살구꽃이 피면 한 번 모이고, 복숭아꽃이 처음 피면 한 번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번 모이고, 초가을 날씨가 서늘할 때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을 위해 한 번 모이고, 국화가 피면 한 번 모이는데, 모일 때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 등을 준비하여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라고 적은 죽란시사첩이 생각났다.
많은 사람들이 다산 정약용은 수원화성을 주도적으로 건설하고, 500여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긴 강직한 인물로만 알고 있는데, 이렇게 계절마다 시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멋스러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기나 할까?
--- 「다산 생가를 찾아서 / 김지성」중에서

근래에 들어서 전에 없던 습관이 내게 생겼다, 신문 읽기와 TV의 뉴스 보기가 전과는 달리 집중이 되지 않고 흥미가 없어졌다. 나는 올봄에 건강검진 차원에서 3년여에 걸쳐서 한 번씩 해오던 위내시경 검진 도중에 우연히 신장에 암이라는 괴물이 들어와 자리 잡고 있음이 발견되어 각종 검사 끝에 의사들의 도움으로 제거하는 대수술을 받은 바 있다. 그 이후 수술이 대충 마무리되어서도 전과는 달리 후유증인 양 정서적인 피로감 같은 것이 나를 감싸고 있어 정신적으로 어떤 일에 대한 집중과 사고가 분산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요즈음 신문의 경우는 정치한다는 패거리들이 국민들의 복지와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저희 지역구의 경조사나 꼽아가며 다음 선거에만 관심이 있고, 썩은 고기 주변에 모여들어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으르렁거리는 승냥이 같은 꼴은 누가 독백처럼 말했듯이 “우리가 저 꼴 보려고 저 사람들 뽑아 줬나” 하던 말이 생각나게 하는 가관인 소식만 가득하니 신문이 배달되면 아예 통째로 뒤집어 놓고 뒤에서부터 넘기며 사설이나, 칼럼, 스포츠 기사들이나 대충 훑어보고 휴지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못 본 내용이 아쉽지도 않게 되었다. 특히 TV의 경우는 즐겨보는 프로라고 해봐야 스포츠, 우리가 젊었던 시절에 즐기던 소위 트로트 정도인데 그것도 요사이는 젊은이들의 알아듣기 어려움 속도 빠른 가락과 율동이나 반복되는 가사의 난해성이나, 괴성 때문에 외면하게 되고 가끔 그래도 세상 소식이 궁금하여 보는 뉴스도 요즈음은 시간만 되면 쏟아지는 살인 소식과 사건 수사 소식, 그리고는 잔인한 살인 경위를 늘어놓는 바람에 소름이 끼쳐 얼른 채널을 돌려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어느 노스님 이야기 / 소재수」중에서

물건이나 재산과 권력은 본래부터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어떤 인연으로 해서 내 곁에 와 잠시 머물러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재산과 권력에 대한 강한 집착과 명품인 생활필수품이나 귀금속 등을 볼 때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더 많이 소유하여 지니는 걸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새로운 상품이 출시될 때마다 타인보다 앞서서 소유하고파 하는 게 인지상정인 것 같다.
난 어려서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좋은 옷과 가방이나 장난감보다는 만화책을 유별나게 좋아하며 어머니와 함께 만화방 앞을 지나갈 때면 가계에 진열된 만화책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사달라고 울며 성화를 부리다 혼이 나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잡지에 소개되거나 TV에서 방영된 유명인사의 집이나 사무실에 마련된 아름다운 서가를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는 아름다운 서가를 꼭 마련하고픈 꿈을 지니며 성장하였다.
43년간 교직에 근무하다 정년 후 늦깎이로 「서정문학」 시에 「에세이 문예」 수필로 신인상을 받아 늦깎이로 등단하면서부터 아파트를 순회하면서 재활용품에 내놓은 도서 중 필요한 도서를 수집하고, 나의 시집과 수필집을 발간해준 출판사와 「서정문학」과 「에세이 문예」의 협찬에다 작가회 회원들로부터 기증받은 도서 약 5,000권으로 아담한 서가를 마련해 놓고, 흡족해하며 지낸 것도 잠시 세월이 갈수록 버리지는 않고, 날로 늘어난 도서들이 서가에 수북이 쌓여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애물단지가 되었다.
도덕경에 의하면 ‘채우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비우는 일로 비우고 버리는 것이 채우고 쌓는 것보다 더 어려우니 매일매일 버리는 것이 도를 행하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도를 행하려면 버리거나 비우기 위해서는 먼저 버릴 것을 가려야 하는데 막상 버리려고 하면 필요하지 않은데도 ‘언젠가 읽을지 몰라서’, ‘애착이 가서’ 버리지 못하는 등 온갖 핑계들로 버리지 못하고 망설이니 버리기에도 과감한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 「채움과 비움의 미학 / 안영호」중에서

배낭 하나씩 메고 나선 늦은 여름 휴가, 순천만 국가정원을 구경하고 예정에도 없던 보도 듣도 않은 배알도를 가자고 조른다. 인터넷에서 보니 너무 멋지더란다. 봉사 시집가듯 물어물어 간다. 일부 사람들은 광양서 택시를 타야 한단다.
순천에서 한 청년의 말만 듣고 버스를 탔는데 안달이 난다. 광양제철이라는 정류장이 있기나 한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슬슬 졸음이 온다. 깜빡했는데 광양제철 12번 정류장이란다. 돌아보니 철조망이 높이 쳐진 철의 고장다운 느낌이다. 얼마 후 안내해 준 그 청년과 같이 내려서 택시로 목적지에 왔다.
섬이지만 얼마든지 갈 수 있다. 아치형으로 휘어지고 이상하게 생긴 다리를 건넜다. 다리 위에는 물고기 조형물이 있다. 땅에 닿으니 잔디가 듬성듬성 자란 평지에 배알도라는 빨간 글씨의 안내판이 있다. 남편과 사진 한 장씩 찍고 산으로 오른다. 해운정, 1940년에 건립되어 사라호 태풍 때 붕괴, 2015년에 광양 시민의 뜻으로 복원했다는 것, 정자 앞에 참외 한 포기가 신기하다. 사진 한 장 남긴다. 블라우스 레이스처럼 나풀대는 파도를 현상하려고 앞을 보니 나무가 막아섰다. 실망만 남겨두고 내려온다.
조금 돌아가니 자투리 땅에 윤동주 詩 정원이 있다. 내 덜 여문 시심을 들고 살금살금 흔적을 따라 들어간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있는 시 냄새 마음부터 매몰되어 강아지 고기 냄새 맡은 듯 동사가 풀무질한다. 마음속 그 옆에 잠시 머물 움막 하나 짓고 정신을 구겨 넣는다.
--- 「배알도 가는 길 /안옥희」중에서

거짓말처럼 막을 내린 교단 40년, 퇴임의 쓸쓸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자유에의 예감으로 온통 설렌 채 3월은 황홀하게 문을 열었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이별의 의례 덕분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내게 지난 40년이 남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디선가 제 몫을 하며 뜻깊게 살고 있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이 외롭고 고단한 교육자의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온 멋진 길동무들이라고 힘주어 말하리라.” 고별사에서도 고백했듯, 어느 새벽 불현듯 시간의 벼랑 끝에서 한평생 나는 대체 무엇을 이루었는가 깊은 허무감이 엄습했을 때 떠오른 답은 결국 ‘사람’이었다. 그해 겨울은 인정의 꽃밭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온 동지들의 과분한 축하와 응원으로 가득했고, 마지막 학교 공동체가 정성껏 마련한 퇴임식은 뜻깊고 아름다웠다. 지나간 것은 이제 역사가 되었고, 나는 평생 노역의 선물로 주어진 찬란한 현재를 즐길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었다.

3월 첫 출근일 마음이 이상할 거라며 존경하는 선배 여교장님의 점심 초대는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입학식을 마치고 교장실에 돌아와 전화를 준 후배 교장의 마음씀 또한 봄볕 같은 하루를 선사했다. 무엇보다 그토록 꿈꾸던 나만의 작은 집필실에서 야심차게 다시 탐독하기 시작한 소로우와 니체, 프랭클린과 소세끼 등 푸른 노트북 속 e-북클럽과 완독을 벼른 세계문학전집은 또 다른 비밀의 화원, 시공의 자유여행자가 된 행복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나날은 조금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집필실은 나의 정년 버킷리스트의 첫 목록이었다. 기껏해야 그동안 잘 쓰지 않고 비워둔 게스트룸에 널찍한 마호가니빛 책상 하나와 잘 어울리는 철제 서가와 푹신한 누런 인조가죽 의자, 그리고 운동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큰맘 먹고 마련한 하얀 실내 자전거와 우연히 구입한 세잔의 사과 그림이 걸린 깨끗한 벽면이 매우 기분 좋은 그런 방이었지만 나만의 밀실을 가진 기쁨은 비할 데 없이 컸다.
--- 「나의 정년 버킷리스트 /유임순」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내가 정신과병원에서 일한다고 하면 일단 놀란다. ‘무서운 곳에서 일하시네요’. ‘그렇게 안보이시는데 많이 무서우신가 봐요?’ 등 반응도 각약각색이다. 왜 사람들은 정신과병원를 무섭다고 할까? 아마도 미디어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이는 정신과병원은 온몸에 문신이 있고 덩치가 큰 조직(?)원이거나 지적장애Intellectual disability가 있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표현해왔기에 많은 사람들은 정신과병원을 무서운 곳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적장애도 2008년 2월 이후에 변경되었고 이전에는 정신박약이나 정신지체로 불리워왔다. 물론 무섭고 험악한 환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병원의 규모에 따라 적절하게 환자의 상태를 조절해서 받기에 모든 정신과병원이 무서운 곳은 아니다.
내가 일하는 곳은 병원이 아니고 개인 의원이기에 입원 환자가 49명이 정원이며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은 없다. 또 규모가 큰 병원도 정신질환자와 중독(알코올, 마약 등)질환자도 구분하고 치매 환자도 따로 구분하여 입원을 받는다. 포괄적으로 정신질환자라고 하면 정신병자(psychopath)나 지적장애. 치매를 다 포함하여 부르는 말이나 엄격히는 분리하여 표현하는 것이 옳다.
정신과병원에는 의사도 있고 간호사도 있고 간호조무사도 있다. 또 일반병원에서는 보기 힘든 심리상담사나 정신보건 간호사.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중독전문가도 있다. 가장 특이한 직군은 보호사이다. 보호사는 오로지 정신과병원에서만 존재하는 직업군이다. 보호사의 주 업무는 말 그대로 환자나 직원(간호사나 간호조무사)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요구하는 자격은 따로 없지만 태권도나 유도, 권투 등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운동을 한 사람을 선호한다. 설령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하면 유리하다.
--- 「변화하는 정신과병원 / 윤 강」중에서

왜 나는 상주에 가고 싶었을까? 곰곰 생각해 보니 곶감이 전해준 감동 탓이었다. 지난 설 명절에 지인한테 받은 선물이 상주 곶감이었다. 그걸 냉동실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그야말로 곶감 빼먹듯 야금야금 먹었다.
곶감은 빛깔도 고와서 그냥 먹기도 아까운 데 그걸 베어 물면 입안이 달콤하게 물들어 저절로 행복해진다. 그렇게 행복한 순간들이 지나고 4월 초순에 곶감이 거덜이 났다. 그때 아쉬움과 함께 문득 곶감의 산지 상주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봄바람처럼 살랑거리었다.
봄비가 내려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곡우穀雨, 그날 동서울터미널에서 오전 8시 50분발 상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서 2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상주! 때마침 대기하고 있던 택시 옆좌석에 앉았다. 택시 기사는 어디에 가는지 물었고 나는 곶감공원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정중한 택시 기사의 인사를 필두로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상주가 초행길이라는 것과 상주의 자랑인 곶감의 역사를 알고자 서울에서 온 사람임을 밝히었다.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삼백이란 세 가지 흰 것으로서 쌀과 누에고치 그리고 곶감을 의미합니다.”
택시 기사는 마치 상주시 방문객을 위해 준비된 관광해설사처럼 거침이 없었다.
너무 뜻밖이라 나는 흠칫 놀라서 그 기사를 쳐다보았다. 말쑥한 옷차림, 온화한 표정, 자연스러운 말솜씨에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음색이 옆자리에 앉아있는 내게 살갑게 다가왔다.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상주시는 가로수가 감나무입니다. 아시다시피 곶감은 제사상에 꼭 쓰이는 과일의 하나입니다. 제사상에는 가을에는 단감, 겨울에는 홍시, 봄 여름에는 가을빛에 정성스레 깎아서 말린 곶감을 진설하지요.
곶감은 감 껍질을 깎아서 말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표면에 포도당이 뿜어져 나와 백색으로 뒤덮입니다. 흔히 건시乾?라고 합니다. 요즈음엔 건시보다는 포도당이 나오기 전 주황색 빛깔이 고울 때, 그 곶감을 선호하는 분이 많아서 그걸 포장해서 판매합니다.
곶감은 어떤 감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맛 차이가 나는데 상주둥시로 만든 곶감이 예로부터 유명합니다. 상주 특산품인 감은 그 모양이 둥글둥글하다고 해서 상주둥시라고 하는데요. 물기가 적고 탄닌 함량이 풍부해서 곶감 만들기에 매우 적합한 품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상주 곶감 이야기 / 윤송석」중에서

비가 오려는지 해는 구름 속에 숨었고 싸늘한 바람이 살풍경스럽다. 늦가을의 스산한 맛을 느끼며 숲길을 걷는 맛, 또한 괜찮을 듯싶어 배낭을 메고 산으로 향했다. 가장 아름다운 단풍을 채집하기에 적기다. 관목을 타고 오른 고운 담쟁이에 눈길을 빼앗긴다. 늦게 들은 단풍이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금방이라도 빨간 물감이 내 손바닥을 물들일 것 같다.
맑은 공기와 부엽토의 양분을 먹고 자란 탓일 것이다. 만추의 절정을 유감없이 즐기며 유유히 걷다가 걸음을 멈춘다. 고운 빛으로 오래도록 머물게 하고 싶다. 줄기에 달린 잎을 따기도 하고 바위에 떨어진 잎을 주워 차곡차곡 챙긴다. 잎이 망가지지 않게 신문지에 싸서 비닐봉지에 넣었다.
하트 모양의 작은 담쟁이 잎. 손바닥처럼 생긴 큰 이파리 각각의 쓰임이 다양하다. 말린 단풍잎에 시나 좋은 글귀를 캘리그라피 글씨체로 정성껏 쓴다. 담쟁이, 감잎, 떡갈나무, 느티나무, 후박나무 잎을 이용한다. 이 잎들은 매끄럽고 두꺼워 글씨 쓰기에 좋다. 그중 가장 많이 애용하는 건 담쟁이와 감나무 잎이다. 흰색 젤펜으로 쓰고 코팅하면 고운 색이 퇴색되지 않고 반영구적이다.
담쟁이는 이렇게 내게 와 책갈피나 찻잔 받침으로 쓰이고 있다. 받침과 찻잔 사이에 살짝 보이게 끼워놓으면 운치가 있다. 손님들은 자신이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고 좋아한다. 차향과 맛은 천상의 맛이 되어 혀끝에 머문다고 한다. 나도 이런 마음을 담아 차를 대접하는 것이니 서로의 마음이 닿은 것이다. 갖고 싶어 하면 기꺼이 준다. 성당 반 모임이 있을 때는 성경 구절을, 친구들에게는 시를 써서 내 마음을 전한다.
--- 「꽃보다 고운 단풍 / 정원영」중에서

우리는 꼭 순서를 가리지도 않았는데도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흔히들 이렇게 부른다.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걸까? 눈 딱 감고 한번 중얼거려 봐도 똑같이 나온다. 순서가 바뀌면 어떠냐? 하지만 논리를 펼치자면 차이는 있다. 어머니 아버지나 아버지 어머니 나 똑같다. 그러나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자식 입장에서 이등보단 일등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자식들이 선물에도 어머니 것 아버지 것 이렇게 말이다. 하물며 군 생활할 때 꼭 고향 방향을 바라보며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라고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외치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다. 어머니 뱃속에서 이 세상을 나와 많은 풍파가 도사리고 있는 세상을 무서움과 두려움을 접고 어머니의 품 안으로 돌아오곤 한다. 이것이 모성본능이다. 즉 자연의 법칙인 것 같다. 아마 귀소본능歸巢本能과 동일하게 생각하면 될 것이다. 사람은 해가 지고 땅거미가 들면 집으로 서둘러 돌아오는 것도 이 때문이기도 하다. 옛날 아버지는 왜 그렇게 엄하고 어려운 존재로 부각되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아버지는 왜 그렇게 체면이 땅에 떨어졌을까?

아버지는 늘 밖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만 하고 살았던 것이 지금의 아버지나 그 옛날 아버지들도 늘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필자가 어렸을 때의 아버지는 무섭고 엄하고 어려웠다. 그렇다고 특히 배운 것이 없다. 배운 것이라면 아버지가 밖에 나가 늦게 들어오시면 아이들은 꽁보리밥을 먹여도 아버지는 쌀이 섞인 밥 한 그릇을 식기에 담아 이불 속에 식지 말라고, 아랫목에 푹 묻어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작은 밥상을 차려 드시곤 했는데 우리는 아버지 드시는 것을 보고 침을 꼴깍 삼키면서 지켜봤던 기억들, 하지만 아버지는 다 드셔도 모자랄 것 같은데 반쯤 남겨 상을 물리면 우리는 그 밥을 맛있게 먹었던, 그때 그 시절이 전부다. 어머니께서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께 아침에 일어나면 문안도 꼭 빼놓지 않고 꼭 드리는 것을 어렸을 적에 늘 봐왔던 필자는 지금도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아버지의 여린 마음은 늘 그 자리에 / 최대락」중에서

[한국대표서정소설선]

상추씨를 뿌려놓은 스티로폼 상자에 어제에 이어 오늘도 아기 주먹만한 구덩이가 파헤쳐져 있다. 어린놈이 틀림없었다. 들여다보니 구덩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제도 모종삽으로 흙을 고르게 다져 구덩이를 메웠다. 노란 상추 싹이 터전을 잃고 파헤쳐진 흙 위에서 살아보겠다고 꼬물거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파종으로 조바심이 나 있던 차였다. 잎을 솎아 먹어도 벌써 대여섯 번은 솎아 끝물을 볼 때다.
상추 싹이 흩어지지 않도록 조루로 조심스럽게 물을 뿌렸다. 수도꼭지에 호스가 연결돼 있었지만 수압을 낮춘다 해도 호스로 뿌리다 보면 싹은 뿌리가 하늘을 보고, 아까운 흙은 스티로폼 상자 밖으로 흘러내려 조루로 뿌렸다. 노랗게 싹이 튼 씨앗을 헤집어 이틀째 구덩이를 파헤쳐 놓았으니 제대로 뿌리나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흙이 보이지 않도록 비닐로 다시 야무지게 마무리했다. 혹시 다른 스티로폼 상자도 비닐이 삐져나와 나풀거리지 않는지 확인하고 텃밭에서 돌아섰다.

선혜는 도심 한복판 구선동에 산다. 옛날에는 아홉 신선이 위세를 떨치며 살았다는데 지금은 고층 빌딩 숲속에 우물처럼 폭 파묻혀 구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인들은 빌딩 숲이 조성되기 전부터 조상 대대로 살았던 토박이가 대부분이다. 젊은이들은 독립해서 나가고 노인들이나 그 아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선혜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은 편리한 대중교통과 대학 병원, 종교 시설이 지척에 있어서이다. 구선동에서 선유동이 물리적으로 멀긴 하지만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버스가 자주 왕래해서이다. 도심 속이라 공기도 안 좋아 떠날 만도 한데 옥탑방이지만 옥상의 여유로운 공간을 누구의 간섭도 없이 온전히 이용할 수 있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느 곳에서나 느끼는 층간소음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오밤중에 텔레비전이나 음악을 크게 틀어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물을 내리고 샤워를 해도 문을 두드리거나 인터폰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동안 떠돌았던 창문 없는 고시원이나 밀실처럼 음침한 낡은 오피스텔, 곰팡이가 핀 반지하에 비하면 마음껏 밤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할 수 있어 좋다. 비록 냉난방비가 추가되고 옆집과 뒷집 사이가 삼십 센티도 안 돼 고양이들이 담장을 타고 제집 드나들 듯하지만 공간 이용에 비하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했다. 선혜는 옆집 담장 위로 쏜살같이 사라지는 몸집이 작은놈을 종종 봤다. 다행히 정자 옆 장독대 고추장 항아리와 된장 항아리에는 올라가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장독대 위에도 올라가 해바라기를 했을지 모른다. 장독대는 선혜가 수시로 물을 뿌려 먼지를 떨어내기 때문에 보지 못 할 수도 있었다.
--- 「안전지대 / 방안나」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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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게 누구야? 나는 소리를 질렀다. 분명히 김양기였다. 아무리 칸두라를 입고, 케피야로 머리를 감싼 모습이어도, 그리고 수염을 기르고, 안경을 끼었어도, 튀어나온 이마며, 서양인보다 더 날카로운 코끝이며, 가지런한 입매며, 영락없는 김양기 얼굴 그대로였다.
그래서 나는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여보, 여보, 잠시만!”
하나 설거지하던 아내가 티브이 앞에 다가왔을 때는 이미 다른 화면이었다. 뉴스 시간대여서 스쳐가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것도 거의 날마다 취급되는 중동 뉴스였다. 떠돌이 폭력배나 진배없는 아이에스에게 맥없이 밀리기만 하는 전력의 정부군 패전 소식이었다.
트리폴리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멘트와 함께, 기관단총을 치켜들고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에스 병사들의 의기충천한 모습이 오버랩되며, 아이에스 지도자급 얼굴 면면들로 덮인 화면에서 김양기가 얼핏 스쳐간 것이었다.
“분명히 성숙이 아비였어.”
목소리를 한껏 낮췄는데도, 아내는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며 주의 신호를 보냈다. 성숙이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탓이었다.
“그래, 알았어.…… 하지만, 그 사람이었다니까.”
아내는 귀 기울이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한 번 더 강조했다.
“분명히…….”
“당신!”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당신, 요즘 왜 그래요? 왜 그 사람이 뉴스 화면에 나오겠어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억울했다. 더 볼멘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날 몰라? 내가 언제 그런 일로 허튼 소리 한 적 있어?”
“암튼,…… 제발!”
아내는 측은하다는 듯이 나를 봤다. 저윽한 시선이었다.
“티브이 그만 보고 들어가 쉬세요. 알았죠?”
그리고 끌끌 혀를 찼다. 죽었다는 소식 접한 지 벌써 몇 년짼데, 그따위 생뚱맞은 소리를 하느냐는 핀잔을 면한 것만으로 고맙게 여기라는 일종의 경고 같은 것이었다. 아내는 성숙이가 있는 방문 앞에 귀를 잠시 기울였다가, 놓고 나온 일감을 찾아 싱크대 쪽을 향했다. 성숙이는 보나 마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들기고 있을 게 뻔하다. 녀석의 방에는 빛이 없다. 24시간 캄캄한 밤이다. 두꺼운 커튼으로, 이중 삼중 유리창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컴퓨터 화면은 늘 퍼렇게 켜 있기 마련이다. 그 도깨비 불빛에 얼핏얼핏 드러난 방 안 풍경은 온통 총기들뿐이다. 총포 상회를 방불케 하는 정교한 모조 총들이 진열대인 양 방 안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 「카페 다마스쿠스 / 백시종」중에서

역파驛派는 보이지 않았다.
역사驛舍의 왼편, 나오는 문 안쪽으로 ‘청량리 경찰서 보안 근무소’ 간판이 걸려 있긴 하지만, 거기는 문이 닫혀 있었다. 로터리 건너편에도 파출소가 하나 있기는 하다. 그러나 구역이 다르니까 거기서도 이곳 청량리역을 직접 관할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합실 안이고 밖이고 할 것 없이, 그러나 경찰들은 어디고 좍 깔려 있었다. 하긴, 역파가 따로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무더기로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이 되면 와서 교대 근무를 하는 것일 테니까, 파출소보다는 아마 더 큰 경찰서가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대합실 안에서는 적어도 네 명쯤의 제복 차림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현관 입구 쪽에 둘, 화장실로 통하는 후미진 구석 쪽에 하나, 그들은 모두 의무경찰들인 것 같다. 그리고 아, 오늘은 잎사귀 세 개짜리가 떴구나. 의경 셋에 경장이 하나, 경장은 아마 이번 근무조의 조장일 것이다. 조장답게, 그는 의경들과 섞이지 않고, 사람들이 서 있거나 쭈구려 앉아 있는 바닥의 긴 나무 걸상들 틈새를 혼자서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열차가 출발할 시간이다.
이번에 떠날 차는 열 시 십오 분 발 태백선 비둘기호다. 방금 전에 춘천행 통일호가 떠났고, 그리고는 약 사십 분쯤 시간을 띠었다가 아마 경주행 차례가 될 것이다. 승객들이 밀리는데도 이처럼 출발 시간이 고르지 못한 까닭은 그 안에 도착해야 할 차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들어오는 차와 나가는 차들이 최소한 간이역에서 충돌하는 일은 생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철길 쪽에서 한두 차례 기적 소리가 울렸을 법도 하건만, 대합실 안에서는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지 않았다. 바깥 소리를 듣기에는 이곳 대합실 안의 소음이 너무 컸다.
전광판 시계가 방금 10:00를 넘어 서고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우루루 개찰구 앞으로 몰려가더니, 금새 입구까지 닿는 긴 꼬리를 이었다. 출발 시각 십 분 전쯤이면 개찰이 시작될 거라는 걸 이미 고대하고들 있었던 모양이다. 무심해 뵈던 사람들이 언제 그토록 세상 돌아가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던지, 세상은 참 무심하다고 탓하거나 깔볼 일만도 아닌 것 같다. 무심해 뵌다는 건 자기한테 몰두한다는 뜻일 테니까, 함부로 그 무심을 탓하다가는, 탓하는 사람만 자기 일에 몰두하지 못하는 셈이 되고 말 것이다.
경찰들은 열차가 들고 나는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사람들이 개찰구 쪽으로 몰리자 갑자기 매표 창구 앞이 한산해졌으므로, 현관 입구 쪽을 지키고 섰던 의경들은 오히려 그 앞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 「청량리역 / 송하춘」중에서

1.
“참, 내 정신 좀 봐. 당신 편지 왔어요.”
출근하려던 아내가 뒤따라 나가던 내게 불쑥 내민 말이었다. 막 구두를 신으려던 나는 구두주걱을 찾아 손에 든 채로 아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태현이란 사람이던데. 신발장 위에 있어요.”
“누구?”
‘김태현’이란 이름에 나는 움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이 내 주소를 어떻게 알았기에. 하기야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내가 일 년에 열두 번 이사를 가고, 주소를 골백 번 옮긴다고 해도 그라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신발장 위에 놓여 있는 각종 영수증 함에 얹혀 있는 그의 편지는 꽤 두툼한 것이었다. 바쁜 출근길이라 되는 대로 편지를 집어 손에 쥔 채로, 계단을 내려가는 아내의 뒤를 따랐지만 ‘잘 다녀오게’라든가, ‘엄마, 아빠, 안녕’하는 장모님과 아이들의 인사에 대답도 못할 정도로 나는 손에 쥔 편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아내는 벌써 차에 시동을 걸고 부릉대고 있었다. 옆자리에 내가 앉자마자 차는 출발했다. 한 손으로는 안전벨트를 잡아당기며 다른 손과 입으로는 편지의 겉봉을 뜯었다.
“당신 아직도 그 사람 만나요?”
“응? 아니, 만난 지 꽤 오래 됐는데.”
김태현은 아내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밤 열두 시가 다 된 시각에 집에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것도 단독 주택 2층에 세 들어 살던 때였다. 워낙 까탈스런 집주인이 아래층에 살고 있어서 꽤나 조심스러워 했던 우리 내외는 그의 밤늦은 방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내는 그의 이름을 더욱 또렷하게 기억하는지도 몰랐다.
“무슨 편지예요?”
“글쎄. 이거 동명이인인 것 같은데?”
“왜요?”
“선거 홍보 편진데.”
“그 사람이 이번 선거에 출마한데요?”
겉봉에는 정확한 우리 아파트 주소와 함께 ‘황순호 님’이라 했으니 나에게 온 것임은 분명했으나, 내가 아니 아내와 내가 아는 그 ‘김태현’은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겉봉에는 단지 ‘김태현 올림’이라 썼지만, 안에 있는 내용물은 다가오는 지방자치 선거의 홍보물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홍보물이 아니라 시의원에 출마한 ‘김태현’이란 사람의 출마의 변이었다. 그가 이번 선거에 출마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교수와 두목 / 이병렬」중에서

휘히휙, 휘히휙.
휘파람 소리에 새 떼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대나무 가지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던 참새 한 마리가 손가락 끝에 앉자마자 포르릉 하고 날아가 버렸다. 먹이가 없는 빈손이라는 걸 눈치라도 챈 걸까. 음식도 장만하지 않고 아침부터 손님을 초대한다는 게 염치없지만 폭설 때문에 사흘째 외딴집에 갇혀버린 내겐 그런 체면 따위는 사치나 다름없었다.
혀끝을 최대한 둥글게 말아 휘파람 소리를 대숲으로 흘려보냈다. 또 한 마리가 나타나 손가락에 끝에 앉으려고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그냥 날아가 버렸다. 야생에 길들어진 새들은 먹이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눈을 지녔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눈이 먼 새라도 잡아야 한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엉거주춤하게 툇마루에 걸터앉아 대숲을 향해 손을 길게 내밀었지만 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폼은 그렇다고 치자. 휘파람 소리가 더 문제였다. 등에 바짝 달라붙은 뱃가죽은 휘파람 대신 꼬르륵 소리를 냈다.

주말을 맞아 M과 함께 고향에 있는 고천호에 갔다가 외딴집에 들렀을 때는 오후 4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긴 외딴집 마당은 망초와 쑥대가 무성했다. 손수건을 꺼내 대충 먼지를 털어내고 툇마루에 걸터앉자 파란 고천호의 정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에 호수까지 끼고 있어 풍수지리로 말하자면 외딴집은 명당자리다.
평지를 마다하고 굳이 이 산속에다 집을 지은 것도 반풍수인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곳이 산의 정기가 흐르는 용맥龍脈의 혈穴 자리로 자손 대대로 번성할 거라며 아버지는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곳에 손수 집을 지었다.
그때는 호수가 아니라 강이었다. 가뭄에 대비하여 농경지 용수 목적으로 정부에서 댐을 막아 호수로 둔갑한 것이다. 호수에 담긴 풍부한 수량을 이용하면 주변에 있는 천수답이 옥토로 변해 창고가 천 개가 생긴다고 하여 고천호庫千湖로 명명했는데, 푸른 물빛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청호靑湖라고 불렀다. 댐 공사로 지대가 높은 우리 집만 남고 인접 마을은 수몰지구로 편입되어 주민들은 거처를 옮겼다. 홀로 외딴집을 지키던 어머니마저도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 「설평선 / 이상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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