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미 준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 제주에서 청년같이 정열적으로 일했는데, 이 시기 그의 건축은 원숙함의 절정에 이른 듯하다. 이타미 준의 건축은, 밀도 높은 도시 속보다는, 제주 무인지경의 벌판 위에서 더욱 찬란해 보인다. 그는 억새로 뒤덮인 제주 중산간의 허허로운 벌판 위에, 그림 같은 오브제로 자유로운 서정의 건축을 완성했다.
서귀포시 안덕면 산허리에 방주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비늘로 반짝이며 잔잔한 수면 위에 떠있는데, 교회 덩어리와 그 놓인 자리가 통째로 구약 창세기의 알레고리를 구성하며,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재앙과 구원 이야기의 서사를 시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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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은 관념적 건축담론보다 생생한 만들기에 집중했던 건축가였다. 그의 건축은 이성적 분별력에 앞서 감성적 감관을 건드린다. 그의 말대로, 그가 원한 대로, 그의 건축은 ‘야성미와 따스함’으로 완성되어 그 앞에 선 이들 또 그 안에 선 이들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방주교회는 말년 이타미 준의 농밀한 건축정신이 만들어낸 걸작 중 하나이다. 방주교회는 바람 부는 중산간 무인지경의 벌판 위에 서 있다. ---「유동룡과 이타미 준의 경계에서」중에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우리 건축계에는 ‘비움’에 대한 논의가 들불처럼 일었다.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 민현식의 ‘비움’, 김인철의 ‘없음의 미학’ 그리고 방철린의 ‘무위’ 등등. 그것들은 서구 건축계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입 이론들에 대한 우리 건축계의 하나의 대안적 논의와도 같은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비움’에 대한 결과물들을 돌아봤을 때, 그 중 많은 공간들이 삶을 담기에 앞서, 관조를 위한 공허 그러니까 보여주기 위한 연극 무대와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데 그쳤음을 목도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아마 그 많은 ‘비움’들이 삶의 실천적 영역이 아닌, 관념 속에서 먼저 직조되고 그 이후에 현실에 현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밝맑도서관 마당의 비움은 의미 있다. 도서관의 마당은 애초에 관념 또는 이론화의 채를 통과하지 않고 현실 가운데서 없음의 쓰임으로 살려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생들이 배회하는 빈터이고, 농부들이 쉬었다가는 빈터이고, 마을사람들이 잔치 여는 빈터이고, 또 특정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삶의 행위들을 담을 수 있는 빈터이고자 했던 도서관을 사용하게 될 모든 마을 사람들의 없음의 쓰임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었고, 비움을 관념화하지 않고 없음의 쓰임을 통하여 삶의 소용에 닿는 비움에 전력했던 건축가이기에 가능했으리라. ---「밝맑도서관의 마당」중에서
시장은 길을 따라 춤을 추듯 살아난다. 시장의 길은 자동차를 위한 길이 아닌 사람의 걸음과 속도를 받아내는 길이다. 우리는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 시장통 구불한 길을 걸으며 장을 본다. 그래서 장보기의 속도는 걷는 속도보다 빠를 수 없으며 그 규모는 두 팔의 완력을 벗어날 수 없다. 시장에서 대파나 무, 배추, 호떡, 닭튀김 등을 충동구매하는 아주머니는 그래서 찾아보기 힘들다. 재래시장은 그 만들어진 꼴과 골격으로 소비의 방식과 규모를 결정하고 있다.
재래시장에서는 팥죽집 할머니도 사장님, 냄비집 아저씨도 사장님이다. 재래시장에서는 종업원들의 수보다 사장님들의 수가, 아마 더 많을 것이다. 시장의 길을 따라 열려 있는 작은 상점들은 유통과 판매의 방식을 상점주인 개개인이 결정하며, 그 판매에 대한 책임과 결과 또한 상점주인 개개인에 귀속된다. 재래시장에 기대어 삶을 꾸리는 작은 상점들의 사장님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방식을 스스로 결정해 나가고 그 노동에 대한 대가에 대해 스스로 책임진다. 이 자족적인 사장님들의 삶의 터전이 대형 유통업체들의 공격적인 확장으로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고픈 원래 그래왔던 시장」중에서
윤동주문학관의 백미는, 단연 제2전시실이다. 제2전시실은 사실 ‘실室’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실’은 ‘방房’과 같은 의미로 실내공간을 의미한다. ‘실’ 또는 ‘방’은 용도와 쓰임이 부여된 실내공간이다. 그러나 제2전시실은 지붕이 없는 바깥 공간, 실외공간이다. 이 공간은 하늘이 보이고 바람이 드나들며 별이 쏟아지고 그래서 시적 울림으로 공명되는, 그러나 용도와 쓰임과는 무관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용도와 쓰임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하늘과 바람과 별이 깃들고, 그리하여 시적 정서가 스며들 수 있으리라. 그것들은 오직 여백 사이에 깃들 수 있고 또 스밀 수 있는 것들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정량화하여 셀 수 없고 정성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것들인데, 그것들은 다만 몸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끌어당기는 것들이다.
제2전시실은 물탱크의 물때 가득한 벽면과 뚫린 지붕만으로 틀 지워져 있다. 벽면의 물때는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벗겨낼 수 없는 시간의 켜를 보여준다. 이 시간에 쪄든 물때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감성의 풍화작용을 일으켜 그 안에 선 자들의 마음과 함께 공명한다. 제2전시실은 윤동주문학관의, 거의 모든 것이다. ---「하늘과 바람과 별의 문학관」중에서
안성면민의 집(행정 명칭은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이나, 건축가 정기용의 명명대로 ‘안성면민의 집’으로 표기)에는 주민들을 위한 목욕탕이 있다. 목욕탕은 면적이 넓지 않아 짝수 날은 여탕, 홀수 날은 남탕이 된다. 이용료는 1000원, 1000원으로 논일, 밭일 하는 마을 사람들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가 육신의 피로함을 달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때 얻는 위로는, 그 위로는 작지만 크다. 개별 욕실과 대중목욕탕이 없는 시골 마을에서 온욕溫浴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가 정기용은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 수 있기를 바라는 주민들의 뜻을 받아들였다.
안성면민의 집은 이 사실만으로도 이 땅 어느 다른 공공건축물보다 공공의 가치가 높다. 공공을 위한 가치가 공공건축물의 존재 이유이기에 안성면민의 집은 존재가치가 명확하다. 이는 건축(학/비평)적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안성면민의 집에서 건축가가 의도한 다른 건축적 요소들은, 사실 범범해 보인다. 예를 들어, 주출입구 안쪽 맞은 편 부위는 통 유리벽으로 되어있어서 덕유산 풍경의 날 것이 통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건축가는 ‘덕유산 자락을 각별하게 바라보는 시점의 설정을 중요하게 고려’했고, 그래서 “‘우리는 덕유산 밑에 살고 있는 안성면민이다’라는 것을 건물과의 관계에서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와 목욕탕, 안성면민의 집」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