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때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안보를 떠보는 시도는 더욱 다양한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고, 그를 위한 조직도 다양해질 것으로 보이는데 핵문제는 이처럼 남북관계의 시계를 거의 ‘제로’ 상태로 돌려놓았다. 불확실성이 증가한 것이다. 이 외에도 앞서 언급한 북한 핵보유국의 법제화, 대남 강경노선, 신냉전 구도 편승도 핵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변화시킨 결과로 볼 수 있다.다만 이러한 변화가 지역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체제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긴장된 남북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1장_ 북한 핵 프로그램: 전략의 결과와 북한의 변화」중에서
외교정책의 변화를 국가행동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핵 보유와 외교정책의 변화와 관련해서 유력한 이론 중의 하나는 국가가 핵을 보유하게 되면, 외교정책 면에서 더욱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군사력의 비약적 증강으로 인해 외교정책 측면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변화한다는 주장을 보통 ‘대담해지는 효과(emboldening effect)’라고 부르는데,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다.
---「2장_ 핵무기 보유와 외교정책의 변화: 이론적 접근」중에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는 물론이고 국제관계에서 차지하는 북한 핵무기 존재의 ‘무게’가 점차 예사롭지 않음을 감안해 1945년 해방 후 남북이 분단되면서 북한이 1950년대 초 소련으로부터 받은 원자력에 관련한 기술, 시설, 전문가 연수 등 원자력의 발전사에서부터 핵무기 개발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시계열적으로 설명한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이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 진흥과 핵무기 개발 사이에서 계속 힘겨운 곡예를 해왔다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핵물질의 고유한 특성인 이중적 용도(dual-use)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살펴보고, 동시에 ‘핵비확산 모범국(nonproliferation cheerleader)’ 한국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북한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3장_ 북한 핵무기 개발 동인 및 과정, 그리고 한국의 대응」중에서
요컨대 규범 위배, 도발, 기만으로 이어지는 전략적 일탈과 잠정적 순응의 주기적 순환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협상의 우위를 점하며, 양보를 획득하는 핵개발 전술에 나섰던 것이다. 그 귀결로 북한은 경제제재의 난관과 불량국가의 낙인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지만, 물질적 차원에서 핵 능력 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사회적 차원에서 미국과의 협상 상대라는 중요 국제 행위자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4장_ 북한 핵개발과 국제 핵질서: 패권대항 국가의 전략」중에서
지금과 같은 제재 상황에서 추진할 수 있는 대외경제활동은 제재 틀 안에서의 제한적 교역과 관광사업이 유일해 보인다. 대외 원조도 자력갱생 기조 아래에서는 활성화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2021년 7월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의제’의 이행 상황을 보고하는 자발적 국별 리뷰(VNR)를 제출해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진지하게 모색해 왔으나 이 역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향후 북한의 제재 회피 활동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이 강화될수록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해 온 암호화폐 해킹, 광물 밀수출, 어업권 판매, 정제유 밀수입 등 여러 제재회피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
---「5장_ 북한 핵문제와 대외경제정책 변화」중에서
북한과 중국 사이에는 사회주의적 정치 시스템을 운용하는 유사성이 있고, 전통적 혈맹으로서 동류의식과 연대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북중관계는 평시에 갈등과 협력의 이중성이 나타나지만 양국 간 공동의 안보 위기가 등장하면 극적으로 결속하는 반전 상황을 연출한다. 북중관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북한은 중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간섭 행위에 대해서는 노골적으로 대립각을 세웠고, 중국은 북한이 전략적으로 이용가치가 있을 경우에만 우호적으로 접근하고, 그렇지 않거나 전략적으로 부담이 되는 경우에는 북한을 철저히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북중은 필요에 의해 서로 상대방을 무시하지도 못하고, 절대적 지지도 아닌 선택적 접근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상호 생존을 위해 제한적 관계를 지속한다. 비록 북중은 전통적 우호 관계이지만, 북중관계의 역사는 국가 이익과 국제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호협력과 긴장갈등이 교차했으며, 그 과정에서 양국의 전략적 선택만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6장_ 북한 핵 보유와 북중관계의 변화」중에서
지난 30년간 북핵문제와 관련된 북미관계를 논의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는 그동안의 합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이다. 북핵문제 관련 합의들을 보면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기가 발생하고 협상이 시작되지만 상당 기간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결국 결렬되는 과정이었다. 모든 합의는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다. 위기는 협상의 촉매 역할을 했지만 합의 이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미국은 핵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 협상을 시도했지만, 북한이 핵과 미사일 도발을 했을 때는 제재와 억지를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7장_ 북한 핵문제와 북미관계의 변화」중에서
2023년 10월 현재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국교가 없는 유일한 국가가 북한이다.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는 러시아와의 평화조약 체결과 함께 일본에 남겨진 유일한 전후 처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 냉전 종식 후인 1991년 1월 북일 정부 간의 국교 정상화회담이 시작되어 12차례 열렸지만, 양측의 인식 차이는 컸다. 2002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 총리로는 처음 평양을 방문한 고이즈미에게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했다. 양국 정상이 서명한 평양선언은 북일관계를 규정하는 중요한 기본 문서라고 할 수 있으며, 양측 모두 평양선언의 원칙과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 2006년 북한의 첫 번째 핵실험 이전 시기의 북일관계를 개관한 뒤 납치, 핵과 미사일 등 3대 현안을 중심으로 한 북일관계의 궤적을 당시의 국제관계를 염두에 두면서 역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8장_ 북한 핵문제와 북일관계의 변화」중에서
2018년 빠른 속도로 전개된 한국, 미국, 북한의 관계 개선 과정에 러시아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다. 파국으로 끝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러시아에서, 러시아는 북한에서 중국의 대체물을 찾았다.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제재와 압력의 증가는 북러 경제관계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했고, 러시아 역시 2014년 이후 서방으로부터 여러 가지 경제제재를 받고 있었다. 두 나라의 정상이 누구의 중개도 없이 직접 접촉해 만났다는 사실 그리고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의 결렬 뒤에 만났다는 사실은 북한과 러시아가 중국과 미국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9장_ 북한 핵실험 이후 북러관계의 변화: ‘냉각’에서 ‘초밀착’으로」중에서
앞으로 북한의 대외관계가 이렇게 전개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 나가야 할 것인가? 더욱이 북한이 우리국가제일주의에 입각, 두 개 국가론(Two Koreas)을 주장하고 대남 적대시 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한반도 질서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동북아 국제질서 변화 속에서 특히 북한의 민족개념의 변화와 두 개 국가론 구체화를 주목해 대처해야 할 것이다. 일부 대북정책을 국내정치화하고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데 소원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국제화로 당사자 개입능력은 줄어들고 지정학적 비극 가능성은 커질 가능성이 있다.
---「10장_ 북한 핵개발과 대외관계 변화」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