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교육을 흔히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으로 인식해왔지만, 달라진 교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이상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울증, ADHD, 경계선 지능 등 장애 진단을 받지는 않았어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통합교육은 이제 모든 교사가 껴안아야 할 숙명이라는 어느 교사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ADHD 아이를 위한 활동적인 수업이 다른 아이들도 즐거운 배움으로 이끄는 사례에서 통합교육이 ‘모두를 위한 교육’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저상버스, 턱 없는 보도 등 흔히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비장애인에게도 좋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엮은이의 말」중에서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치료해달라고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치유해주러 온 것입니다. 그러니 특수교육 내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내가 장애인을 변화 또는 교육시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만남을 통해 내 삶을 변화시키겠다는 자세입니다.
---「한미경, 〈장애인이 이 세상에 온 이유〉」중에서
장애인은 주변 비장애인의 인식에 따라 진짜 장애인으로 자랄 수도 있고 단지 장애가 있을 뿐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의 출발점이 학교다. 장애인이니까 청소 시간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장애의 특성으로 청소를 꼼꼼하게 못할 수도 있지만 함께 청소하는 것부터가 통합교육의 시작이다. 잘못된 장애 인식이 선한 마음과 만나면 사실은 배제인데 배려로 착각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아마도 지금 통합교육 현장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류승연, 〈우리가 통합교육에 실패한 까닭〉」중에서
움직이는 방식으로 구성된 수업과 짐볼, 스탠딩 책상, 밸런스 패드의 활용은 철민이를 위해 시작했지만 우리 반 모든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아이들은 짐볼과 스탠딩 책상이 자기 차례가 되기를 늘 기다렸다. 초등 단계의 아이들은 대부분 움직임의 욕구가 크다. 그중에서 철민이가 유독 움직임 욕구가 컸을 뿐이다. 그러니 신경다양성 교실이 모든 아이들에게 잘 맞을 수 밖에 없었다.
---「김명희, 〈정상,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진 교실〉」중에서
장애뿐만 아니라 인종, 언어, 문화적 배경이 다양한 미국의 환경에서 장애아 통합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에 비장애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하는 것은 다양성의 가치와 그 가치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부모라면 누구도 제 아이가 장애인을 보고 무서워하거나,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 하거나, 예의 없이 뚫어져라 쳐다보는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에티켓을 아는 것을 넘어서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서로가 가진 다름과 다양한 능력을 인식하고, 다양한 사람과 한 팀으로 일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을 것이다.
---「정은영, 〈비장애학생도 다니고 싶은 조오니오학교〉」중에서
한국에서 교사였을 때는 막연하기만 하던 교육 개념이 호주에서 학부모로 살면서 마침내 정교해지고 명료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개별화된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는 특수교육과정과 ‘학생 중심의 수준별 교육과정’을 지향하는 일반교육은 기름과 물처럼 양분된 개념이 아니라는 것, 학생 중심의 수준별 수업을 좀 더 치밀하고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다듬으면 특수교육 대상자에게 꼭 필요한 개별화교육 계획IEP이 된다는 것을 왜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을까?
---「이루나, 〈통합교육은 모든 아이들의 권리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