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쁜 날에는 잔치국수, ‘국수집’
잘하는 집은 반찬 하나하나까지 모두 맛있지만, 못 하는 집은 메인 메뉴, 반찬에 심지어 물까지 맛없다. 당연히 이 집은 잘하는 집이다. 오랜 세월 포장마차를 하셨던 사장님은 음식 솜씨가 남다르다. 무심한 듯 뚝딱뚝딱해주시는 음식에는 깊은 내공이 서려 있다. 한 가지 메뉴를 먹으면 또 다른 메뉴가 궁금해지는 그런 맛이 바로 이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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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면 얼마 되지 않아 그릇이 넘칠 정도로 푸짐한 국수가 식탁에 놓인다. 많은 양에 놀라 왜 이리 많이 주시냐 하면 많이 드시고 행복하시라는 말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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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설렁탕, ‘무수옥’
무수옥은 도봉사람이라면 모두가 먹어봤을, 아니 먹지는 못했어도 들어는 봤을 식당이다. TV를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도봉구를 대표하는 맛집으로 소개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인근 지역을 비롯해 도봉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수옥을 알 정도다. 무수옥이 자리한 동네는 옛날부터 ‘무수골’이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무수옥의 이름은 거기서 따왔다. 지명을 그대로 따와 식당 이름으로 쓰고 있다는 점,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져 온 노포라는 점을 생각하면 맛은 이미 보장된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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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입학식과 졸업식엔 청요리, ‘원성반점’
원성반점은 이 지역에서 오래도록 영업해 온 노포다. 1977년에 개업해 지금까지 한 자리에서 운영해 온 점도, 아버지에 서 아들로 2대가 이어서 영업하고 있는 것도 이 식당의 정통성을 말해준다. 이전부터 도봉에 살아 온 도봉사람들은 한 번쯤 원성반점에서 식사해 본 경험이 있다. 원성반점 주변에는 학교가 참 많다. 가까운 순으로 한신초등학교, 정의여중·고등학교, 신도봉중학교, 창동고등학교, 창북중학교가 있고 범위를 확장하면 더 많은 학교가 있다. 도봉에서 나고 자랐던 사람이라면 학교 근처에서 언제나 기름 냄새를 풍기던 원성반점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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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양있고 품격있는 경양식, ‘잔디불’
잔디불은 1992년 문을 열었다. 앞서 소개된 다른 식당들이 훨씬 오래되어서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지만 잔디불은 그래도 30년 이상 운영해 온 식당이다. 부부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는 이 식당에서 보낸 30년의 세월, 두 사장님은 평생을 이 공간에 바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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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생선가스의 메뉴와 모든 맛을 한번에 볼 수 있는 정식이 있다. 아래로는 ‘이게 바로 한국식 경양식집이지’ 싶게 오징어덮밥, 김치볶음밥 등의 한식 메뉴가 이어진다. 잔디불이 개업했던 90년대는 전국 각지 에 ‘호프집’이라는 이름으로 생맥주집이 곳곳에 들어서던 시기 이기도 했다. 잔디불은 호프집도 겸하는 터라 메뉴판 오른쪽에는 가벼운 안주와 주류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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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삶의 여유를 상징하는 로스구이, ‘홍능갈비’
40여 년의 세월. 홍능갈비는 이제 단골이 90퍼센트 이상인 지역의 무게감 있는 노포가 됐다. 할아버지부터 손주까지 모든 세대가 찾는 이 식당의 핵심은 당연 좋은 고기에서 오는 좋은 맛이다. 언제 가도 실망시키지 않는 훌륭한 맛, 주변 사람들에게도 널리널리 소개하고픈 그런 맛이 홍능갈비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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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탕을 먹으면 참 음식 이름을 잘 지었구나 싶다. 국물부 터 건더기까지 고기의 끝을 보여주는 기름지고 힘이 넘치는 맛은 그야 말로 원기元氣다. 앞서 다뤘던 무수옥의 설렁탕이 깔끔하게 정제된 맛이었다면 원기탕의 맛은 다소 거칠지만, 풍부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맛이다. 원기탕을 먹으면 소 한 마리를 다 먹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다. 몸이 안 좋거나 기운이 좀 떨어지는 것 같으면 홍능갈비를 찾아 원기탕을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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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갈비탕에 담긴 한강의 기적, ‘감포면옥’
감포면옥은 도봉구 쌍문동에 있다. 지역주민에게는 ‘소피아 사거리’로 더 유명한 ‘정의여중고 사거 리’ 인근에 위치한 감포면옥은 오랜 시간 이 자리에서 영업해온 노포다. 1972년에 개업한 감포면옥은 50년 이상의 업력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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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의 생활상을 잘 담아낸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극 중 가난한 살림에 결혼식 도 못 올리고 살았던 한 부부가 우여곡절 끝에 늦은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이곳에서 촬영된 것으로 감포면옥의 상호명도 변경 없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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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민의 삶과 함께한 삼겹살, ‘포천숯불구이’
간판에는 ‘포천암돼지숯불구이’라고 쓰여 있지만 상호명은 ‘포천숯불구이’다. 혹여 타지에서 이 글을 보고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온라인 지도나 내비게이션에는 ‘포천숯불갈비’라 고 검색해야 나오기도 하니 찾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당로6길 48’을 검색해서 가자. 도착하면 딱 봐도 예스러운 가게의 모습이 정겹다. 얇은 알루미늄 미닫 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운데 난로 주변으로 딱 4개의 식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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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만날 수 있는 여느 반찬과는 다른 맛, 그 맛의 근원은 발효다. 소금이나 설탕을 쓰는 게 아니라 발효과정을 거친 젓갈 과 장, 매실액 등으로 짠맛과 단맛을 낸다. 직관적이고 단순한 맛이 아니라 입에서 감도는 뭉근한 맛은 오랜 발효 과정에서 다듬어지고 정제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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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주린 배를 기름지게 채우는 전, ‘창동빈대떡’
기름에 튀기듯 익혀 두툼한 녹두전은 흡사 빵처 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릇을 가득 채운 모양부터 먹음직스럽 다. 양파를 얹어 간장에 찍어 먹으면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진 다. 녹두빈대떡이 뭔가 심심하다면 다른 재료가 추가된 녹두 해물빈대떡이나 녹두김치빈대떡이 있으니 원하는 대로 골라 먹으면 된다. 빈대떡집답게 전 메뉴도 있다. 홍어전과 굴전, 김치전 등 몇 가지 전 메뉴가 있지만 특이한 점은 응당 있을법 한 모듬전 메뉴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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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빈대떡’에 가면 무엇을 시켜야 하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봐도 다들 삼합, 보쌈 을 칭찬하고 있다. 어쩌다 빈대떡집에서 삼합과 보쌈을 팔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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