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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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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만나고 나는 더 근사해졌다

: 흔하지만 가장 특별한 동행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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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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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9년 10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98g | 130*210*11mm
ISBN13 9791196254049
ISBN10 119625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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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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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엄마라는 이름이 숭고한 희생과 위대한 멀티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고, 언제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눈물부터 핑 도는 마법의 단어이기는 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그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가 되자 어쩐지 목이 말랐다. 사랑하는 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엄마로 살지 않던 그때의 내 모습도 여전히 여기 그대로 있는데, 나조차도 내 이름 대신 ‘누구의 엄마’라 칭하게 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말이다.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보다 더 격렬하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p.4~5

그런데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속아도 제대로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는 기쁨, 아이와 함께하는 행복이라는 겉포장 아래 이렇게 무시무시한 ‘헬 오브 헬’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결혼 새내기, 임신 새내기들에게 이런 걸 알려주지 말라는, 나만 모르는 사회적 약속이라도 있던 것일까? 아니면 나도 이렇게 속아서 살고 있는데 너도 한번 당해보라는 잔혹한 복수극일까? ‘내가 뭘 잘못한 거지?’ 하며 후회하는 것보다 ‘확, 저 인간을!’ 하며 누군가를 탓해버리는 것이 그나마 속이 편할 텐데, 뚜렷이 탓할 대상이 떠오르지 않아 부메랑처럼 다시 내 무지를 탓해버리고 마는 이 현실이 우울하기 짝이 없다.
--- p.30

세월은 그때의 꼬마를 엄마의 자리로 데려다주었다. 엄마 노릇을 하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아기가 나를 지능적으로 괴롭히고 있을 리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내 마음이 화가 날 때이다. 결국 물건에 화풀이를 하거나 아이에게 마녀 같은 내 표정을 보이고 나면,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이었구나.’라며 걷잡을 수 없이 죄책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아이를 낳기 전의 나는 욱하는 일이 막다른 길에서 만나는 스트레스 해소나 정당한 자기방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감정조절 능력의 미숙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아기에게 내 존재는 우주인데, 내가 살신성인의 각오로 인내하지 못하면 이 아이의 영혼을 누가 위로해줄까?
--- p.118

태어나 처음으로 완전한 사랑을 해본다. 아이와의 사랑은 언제 꺼져버릴까 불안하지가 않다. 사랑의 온도가 내 신체 온도와 비슷해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내 몸속에서 하나였던 기억 덕분인지 이렇게 친밀하게 느껴지는 타인은 처음이다. 아이의 눈빛은 내가 혼내는 와중에도 애정을 속삭이고 있으며, 내가 사랑한다 하면 눈부시게 타오른다. 마구 들이대도 끈적거리지 않고, 마구 얄미운 짓을 해도 영영 헤어질까 겁나지 않는다.
--- p.131

그런데 감정의 쓰나미가 닥친 얼마 후부터 묘하게도 내 안에서 익숙한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좋겠다, 나도 일하고 싶어.’
출근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만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녁 약속이 있었으면 좋겠다. 밤에 누군가를 만났으면 좋겠다. 당연하게 늦게 들어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배려를 받으며 잠시 육아에서 벗어나 생산적이면서도 자유롭게 내 시간을 꾸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 p.168~169

남자들은 일로 꿈꿀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꿈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잘해봐!” 모두 응원을 해준다. 남편의 꿈은 가족 모두의 염원이 된다. 하지만 당신만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게 아니다. 나도, 아내도 하고 싶은 게 있다. 그런데 꿈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남자들이 꿈을 꾸면 독려받지만, 아이까지 있는 여자가 꿈을 꾸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당장에 일하겠다고 하면 “집안일은? 아이는?”이라는 질문이 되돌아온다. 아니, 왜 엄마에게만 이걸 묻는데? 엄마가 된 후로 엄마의 꿈은 이미 세상이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 p.183

나는 반쪽짜리 부모가 아니라, 온전한 하나의 부모가 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함께 바꿔나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밀쳐뒀던 아빠로서의 직무유기를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지 계획을 물었고, 그걸 해준다면 육아와 살림에 있어 나에게 진 빚은 과감히 탕감해주겠다고 당당히 말했다. 며칠 후, 오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한 장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막연한 사과가 아닌, 실전용 계획서였다. 얼렁뚱땅 변명이 아닌, 노력하는 아빠의 실천서였다. 나는 PC에서 이혼 청구서를 지우고, 빈 종이를 펼쳐 ‘부모 유지 계약서’라 적었다. 이 서류는 PC 깊숙이 담아두지 않을 것이다.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곳에 펼쳐놓고 두고두고 실천하며 살아야지. 아빠와 엄마, 둘이 함께 말이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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