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핸드폰을 꺼내 길원이에게 문자를 쳤다. 아직까지 긴 대화를 하기에는 수화가 달린다.
? 너도 야동 보다 걸려서 야구해?
“안 봐! 안 봐! 야동 안 봐.”
길원이가 정색을 하더니 손을 내젓는다.
? 그럼 왜 야구 시작했어?
“인하 야구하는 거 보고. 부럽다.”
“인하? 투수”
“응. 중1. 인하 야구 보고 나 하고 싶다.”
길원이는 말을 할 때 조사를 빼먹는다. 시제도 과거와 미래를 쓰지 않고 주로 현재형만 쓴다. 어순도 중요한 단어를 먼저 쓰기 때문에 나에게는 뒤죽박죽처럼 느껴진다. 수화의 특징이다. 청각장애인들은 글도 수화처럼 써서 처음에는 읽기가 쉽지 않았다.
? 야구는 해서 뭐해?
“프로야구선수 되고 싶다.”
자식. 꿈도 야무지다.
? 프로야구선수? 못 듣는데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건 불가능한 거 아냐?
마치 내가 들을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정색을 하고 물었다.
“할 수 있다.”
? 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누가 우리를 프로로 써 주겠니?
“있어.”
? 우리나라에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가 있어?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미국.”
길원이의 꿈은 한국 최초의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중1 때 야구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길원이는 그 꿈을 향해 달려 왔다.
“불가능하지 않아. 열심히 노력하면 한국 최초 청각장애인 프로야구선수 될 수 있다.”
길원이는 자신의 꿈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끌려와서 억지로 야구를 시작한 야동클럽과는 달리, 길원이는 정말 야구가 좋아서 하고 있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던가? 내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안 이후, 꿈. 그런 건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 따위, 한 적도 없다. 그런데 나처럼 듣지 못하는 녀석이 프로야구선수라는 흔들리지 않는 꿈을 안고 야구를 하고 있다. 정말 길원이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청각장애인이 프로야구선수가 된다는 것이 가능한 꿈일까?
--- pp. 67~70
“악!”
손목을 맞았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듯이 아팠다. 몸에 맞는 공으로 진루하게 되었다. 우리 팀 첫 진루다. 아픔보다 기쁨이 먼저다. 나는 배트를 폼 나게 던지고 1루를 향해 여유롭게 뛰었다. 비록 몸에 맞는 공 덕분이지만 전국대회에서 처음으로 1루를 밟은 것이다.
“괜찮아”
선글라스가 묻는다.
“괜찮아요.”
안타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1루 베이스에 서니 운동장 전체가 내 눈과 가슴으로 꽉 들어찬다. 선글라스가 의강이와 나에게 사인을 보낸다.
“번트 앤 도루.”
‘번트 앤 도루’ 사인이 나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나는 투수가 공을 던지기 위해 발을 빼는 순간 바로 내달렸다. 죽어라 뛰어 2루로 슬라이딩을 했다. 살았다! 2루 베이스를 잡고 선글라스를 보았다. 그런데 선글라스의 사인이 당혹스러웠다.
“1루로 돌아가. 빨리!”
허걱. 다시 1루로 뛰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아웃!”
이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건 내가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의강이의 번트가 뜬공이 되어 잡혔던 것이다. 만일 내가 들을 수 있었다면 2루로 뛰는 중간에 “돌아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럼 난 방향을 바꿔 1루로 돌아갔을 것이고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억울하다. 나의 첫 진루는 내가 듣지 못하는 야구를 하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다.
--- pp. 116~117
우리는 파울볼 하나에도 너무나 기뻤다. 타석에만 서면 방망이를 들고 벌벌 떨던 우리였다. 비록 파울볼이지만 공을 맞추어 내는 것은, 우리에게는 대단한 발전이다. 효준이는 파울볼을 장장 네 개나 쳤다. 그러니까 공을 방망이에 네 개나 맞춘 거다. 효준이는 결국 삼진아웃을 당했다. 더그아웃으로 뛰어 들어오는 효준이를 우리는 홈런을 친 타자처럼 반겼다.
“효준아. 대단해!”
“너무 멋졌어!”
시합은 6회말. 10 대 0. 콜드게임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우리는 행복했다.
첫 몸에 맞는 공.
첫 진루.
첫 6회 진출.
오늘은 첫 기록들로 가득 찼다. 교장수녀님이 버스에 오르며 활짝 웃으신다.
“많이 발전했어. 오늘은 한 3, 4점 정도는 줄일 수 있었는데 아깝더라.”
“1회에 4점 준 거 너무 아까워. 그래도 6회를 간 게 어디야”
꼬불머리 서문 샘이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주름 샘이 버스를 타는 아이들을 반기며 하이파이브를 한다.
“다들 오늘 너무 잘했어. 너희들이 자랑스러워. 앞으로 한 경기당 1점씩 점수를 줄여 나가자. 알겠습니까?”
“네.”
“그러다 보면 열두 경기를 끝낼 때쯤엔 분명히 1승 할 수 있을 거야. 1승. 할 수 있습니까?”
“네.”
“좋아. 모두 잘했어. 쉬어!”
더디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10 대 0으로 지고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충주성심의 야구다.
---- pp. 120~121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다. 두 달 만에 집에 가는 거다. 충주에서 청주까지는 시외버스로 한 시간. 집에 가려면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40분을 더 가야 한다. 묵방리에 내렸다. 마을 곳곳에 젊은 엄마와 어린 내 모습이 있다. 내가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았던 그해. 다섯 살 아래 동생은 아직 엄마 배 속에 있었다. 만삭인 엄마는 울지도 못했다.
“준석아, 걱정하지 마. 우리 준석이, 엄마가 꼭 말할 수 있게 해 줄게.”
갓 태어난 동생은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동생은 엄마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엄마는 날 이끌고 유성에 있는 언어치료실을 다녔다. 언어치료를 하는 곳이 많지 않았던 그 시절, 복지관에서는 구화수업을 일주일에 한 번만 했다. 엄마는 유성을 이 잡듯이 뒤져서 다섯 군데 복지관에 월, 화, 수, 목, 금, 수업을 따로따로 끊었다. 매일 유성의 곳곳을 찾아다녔다. 간식 보따리를 싸들고 버스를 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갈아탔다. 나는 멀미가 나서 자주 토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면 엄마는 날 업었다. 엄마는 내게 들리지 않는 소리를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린 시절 구화를 배우는 건 너무 어려웠다. 구분이 안 되는 입모양이 너무 많았다.
노래. 모래.
모두 같아 보였다. 시옷은 더 입술을 읽기 힘들었다.
수치다, 스치다.
구분이 안 된다. 입술을 보며 시각적으로 말소리를 완벽하게
읽어 낼 수는 없다. 많은 부분은 추리를 해야 한다.
“준석 어머니, 나가서 기다리면 안 될까요? 다른 친구들도 있는데…….”
“방해 안 하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게요. 부탁드려요.”
엄마는 언어 치료실에서도 유별났다. 좁은 교실 뒷자리에 앉아 모든 수업을 지켜봤다. 선생님의 교수법을 알아야 복습을 제대로 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숙제를 흑백 프린트물로 내주면 엄마는 그걸 일일이 색연필로 색칠을 해 알록달록 컬러 프린트물로 만들었다. 엄마의 노력을 외면할 수 없어 구화학원을 9년이나 다녔다.
“어머! 아드으을!”
문소리를 듣고 주방에서 엄마가 달려 나온다.
“이번 주에는 못 나온다고 했잖아? 발 괜찮니? 어디 좀 보자. 양말 벗어 봐.”
다행히 물집은 잘 아물었다. 이번에는 얼굴 확인이다.
“박 선생님은 네가 선크림 공장 아들처럼 얼굴에 범벅을 하고 다닌다던데. 어쩜 이렇게 시커멓게 탔니?”
오늘따라 엄마는 더 야단스럽다.
“어떡해. 어떡해. 지난번보다 더 까졌네. 약은 발랐어? 우리 아드을, 얼마나 따갑고 쓰라릴까”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야구를 시작한 나는 손에 굳은살이 적다. 무거운 배트를 들고 스윙 연습을 하다 보면 아무리 장갑을 껴도 손바닥이 까졌다. 벗겨지고 아물고, 또 벗겨지고. 그러면서 나의 손은 점점 야구선수 손다워지고 있다.
“엄마, 또 울어”
물집, 까마귀 얼굴, 걸레가 된 손바닥. 이 세 가지가 결국 엄마를 울렸다. 이렇게 맨날 울 거면 야구를 시키지 말았어야지.
“아들 불쌍하면 팩이라도 해 주든가.”
“아, 그럴까? 그럼 현미팩 해 줄게. 잠깐 기다려. 엄마가 금방 준비할게.”
차갑고 걸쭉한 덩어리를 묻힌 붓이 살살 얼굴을 간질인다. 볼, 이마, 콧잔등. 콧구멍과 두 눈만 빼고 팩을 덮었으니 얼굴 전체가 석고상이 됐다. 집에 온 실감이 난다. 엄마 냄새가 좋다. 가슴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 몇 개를 움직여 가만히 수화를 한다.
‘고마워요, 엄마. 날 포기하지 않아서.’
--- pp. 169~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