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흥미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때론 캐시미어처럼 부드럽거나 산골짜기 물처럼 상쾌하고, 때론 라임주스처럼 상큼하거나 눈송이처럼 보송 보송하다(실제로 훌륭한 샴페인의 질감이 이렇다). 질감이 어떤지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위대한 와인은 특징적인 질감이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독특성은 위대한 와인의 가장 핵심적인 속성이다. 다른 와인과 차별되는, 특별한 와인으로 구별되는요소라할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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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보디감은 포도가 어디서 자랐는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와인을 마시고 풀보디라고 느꼈다(무게감이 하프 앤 하프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하! 이 와인은 알코올 함량이 매우 높구나. 그렇다면 와인이 발효 탱크에 있을 때 효모가 먹을 당이 많았겠구나(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로 변환시킨다). 당이 많다면, 포도가 꽤 익은 상태였구나. 포도가 많이 익었다면, 아주 온화한 지역에서 자랐구나. 결론적으로 이 풀보디 와인은 호주나 캘리포니아처럼 비교적 따뜻하고 온화한 지역에서 생산됐겠다. 오스트리아, 부르고뉴, 독일처럼 비교적 서늘한 지역 출신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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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입에 머금고 빙빙 돌린다. 그런 다음 와인을 삼키고, 입을 계속 다문다. 입을 다문 채로 숨을 코로 강하게 내뿜는다(숨을 내쉬기 전에 반드시 와인을 삼켜야 한다. 아니면 드라이클리닝 비용이 들 것이다). 이제 감각에 집중한다. 와인의 피니시가 길면, 와인을 삼킨 후에도 향과 맛이 느껴진다. 피니시가 짧으면, 풍미와 아로마가 남아 있더라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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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완전히 성숙했는지 예견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와인은 제각각 나름의 속도에 맞춰 변화하는 생명체와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즐기길 바란다. 이런 예측 불가능성이 와인의 매력을 한층 높여 주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점은 음용 최적기를 정확히 알 수 없는 특성 때문에 고급 와인을 여러 병 구매할 구실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시기별로 한 병씩 개봉해서 진화 과정을 관찰하려는 것이다. 사실상 와인을 박스째로 구매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와인의 일생을 단계별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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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뇽과 수도승(와인 양조자) 동료들은 최초로 적포도를 이용해 맑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기술을 터득했다. 지금은 화이트 와인을 쉽게 만들지만, 17세기 전환기에 화이트 와인은 청포도로 만들거나, 적포도 껍질과 접촉해 회색이 감도는 분홍색 ‘화이트’ 와인이었다. 페리뇽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과정에서 일관성, 명확성, 규정을 광적으로 중시했다. 그는 포도나무 가지를 가차 없이 쳐내고, 비료를 최소한만 사용했다. 이렇게 포도의 생산성을 낮춤으로써 과실의 농축도를 높였다. 또한 포도의 섬세한 아로마와 풍미가 오후 햇볕에 희석되지 않게, 포도는 반드시 이른 아침에 따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포도를 최대한 빨리 압착할 수 있도록 포도밭에 압착기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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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의 빈티지 대부분은 너무 훌륭하지도, 너무 열악하지도 않다. 그 중간 어디쯤 있다. 몇 년 전, 콩트 조르주 드 보귀에의 양조자였던 프랑수아 밀레가 내게 결코 잊지 못할 말을 남겼다. ‘빈티지는 와인의 감정이다.’ 어떤 해에는 와인이 활기차고, 어떤 해에는 와인이 유난히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 물론 그 사이에 무수한 감정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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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전문가인 폴 뮈니에가 내게 알려 준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그가 말하길, 모든 포트는 크게 두 범주로 분류된다. 즉, 크렘 브륄레 같은 포트가 있고, 초콜릿케이크 같은 포트가 있다. 크렘 브륄레형 포트는 나무 배럴에 장기간 숙성시키며, 배럴 틈새로 들어온 공기에 노출된다. 또한 크렘 브륄레 같은 흑설탕 풍미를 지녔다. 대표적인 예로 토니 포트가 있으며, 실제로 크렘 브륄레와 함께 먹으면 훨씬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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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래밋 밸리의 와인 양조자들은 몇 가지 요인을 나열한다. 첫째, 오리건과 프랑스 그리고 캘리포니아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빠르게 협력했고, 다양한 규모의 와이너리를 만들었다. 둘째, 여러 종류의 클론을 심었다. 오리건 토착종 클론, 때론 불법으로 여행 가방에 숨겨서 들여온 셀렉션 품종, 오리건주립대학이 프랑스에서 수입한 클론(디종 클론 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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