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개는 샤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 부품이다. 유아의 질식사 방지 목적으로 노브에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샤프심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하는 마개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샤프 부품으로서 지우개는 그 역할이 무엇이던, 쓰임이 많던 적던, 사용 시 불편이 없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가령 지우개가 심 보관통에서 쉽게 빠지지 않도록 지우개에 옷을 씌워놓은 것도 한 예가 될 수 있다. 또 지우개 옷이 없어서 심 보관통 안에 깊숙이 박히거나 지우개가 심하게 마모되어 잡아당길 부분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를 대비하여 심 보관통 끝단에 작은 슬릿 또는 홈을 만들어서 박힌 지우개를 꺼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우개」중에서
최근 거의 사라지는 추세지만 과거 샤프들은 지우개에 가느다란 핀이 꽂혀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바로 클리너 핀이다. 길이 20~30mm 내외에 굵기 0.35mm(가장 흔함) 또는 0.55mm 정도 되는 스테인리스 철사로, 이름답게 막힌 샤프심을 빼내거나 메커니즘을 청소하는 데 유용했다. (…) 클리너 핀이 사라지는 현상을 두고 많은 샤프 애호가들이 업체의 원가절감 차원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해 아쉬워한다. 하지만 클리너 핀의 유무에 따른 원가절감 효과는 미미하며, 그 근거는 많은 샤프에서 찾아볼 수 있다. (…) 클리너 핀이 사라지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안전 문제가 크다. 노브에서의 경우처럼 샤프에서 빠져나온 지우개를 아기가 물고 삼키는 일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이때 만약 지우개에 클리너 핀이 단단히 박혀 있다면 어떤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할지 생각만 해도 섬뜩하다.
---「클리너 핀」중에서
샤프로 필기를 하다 보면 샤프심의 한 쪽 면만 마모됨에 따라 단면이 편평해져 글자가 굵게 써진다. 이를 편마모라고 한다. 편마모 현상이 생기면 깔끔한 필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한 쪽 면만 심이 마모되지 않도록 샤프를 돌려가면서 필기하곤 한다. 아무래도 신경쓰이고 불편한 일이다. 이렇게 편마모를 피하고자 손으로 샤프를 돌리는 대신 샤프심을 자동으로 돌려주는 샤프가 있다. 바로 미쓰비시 유니의 쿠루토가이다. 쿠루토가는 샤프 이용자의 오랜 숙원 사항을 해결한 모델로, 샤프 펜슬 역사에 방점을 찍은 혁신품이다. 시장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할 정도다. 워낙 획기적이고 편리해서 쿠루토가는 일본 샤프 판매량 1위를 연속 기록 중이며, 인기에 힘입어 여러 파생 모델이 출시된 상태다. 미쓰비시 유니는 쿠루토가에 적용된 편마모 방지 기능을 일컬어 쿠루토가 엔진이라고 부른다. 쿠루토가 엔진의 핵심은 필기 시 생기는 필압을 샤프심을 회전시키는 데 이용한다는 것이다. 파카의 조터(Jotter) 볼펜처럼 노브를 누르면 볼펜심이 회전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보면 된다.
---「샤프심 편마모 방지: 쿠루토가 엔진」중에서
샤프는 적당히, 대충, 싸게 만들어도 기능이 구현되는 제품도 아니고 쓰면서 길들여지는 기계와도 다르다. 가장 저렴한 샤프군에 속하는 수능 샤프만 하더라도 부품 수가 13개, 그중 5개 이상이 초정밀 부품에 속한다. 기능적 측면은 물론 사용자의 정서적 측면도 만족시켜야 한다. 샤프의 모든 동작이 사용자의 감각에 예민하게 전달되므로 아주 작은 차이로도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같은 업체의 설비로 같은 날 만들어져 함께 포장된 샤프인데도 개개 샤프의 노크감이 다를 정도다. 그래서 샤프 시장의 진입 장벽은 매우 높다. 들어와도 낮은 기술력과 엉성한 라인업으로는 기존 주류 샤프와의 품질 비교에서 턱없이 밀린다. 20개들이 종이 진열대에 1갑씩 꽂혀서 팬시류 코너에서 판매되고 있는 영세 업체의 제품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심지어 유수 업체라도 자체 생산이 어려워 샤프 전문 생산업체에 의뢰해 OEM, ODM 등으로 공급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샤프 시장과 톱 7 업체」중에서
간단히 ‘그천’이라고도 불리는 그래프 1000은 크게 ‘Graph 1000 for Pro’와 ‘Graph 1000 CS’의 두 가지 모델이 있다. 전자를 지칭하는 ‘포프로’는 매트(무광)한 블랙 색상으로, 보통 그래프 1000이라 하면 포프로를 말한다. 후자를 가리키는 CS는 Creator Style의 약자로, 컬러플하고 광택이 있다는 점 말고는 포프로와 구조나 부품이 같다.
그래프 1000은 스매쉬, 메카니카와 함께 펜텔의 3대 명기에 속한다. 그 명성에 맞게 최고 존엄, 레전드 머스트해브, 샤프의 교과서, 돌고돌아 그래프 1000 등의 칭송이 따라다닌다. (…) 그래프 1000의 성공에 고무된 다른 업체도 정가 1천 엔을 매긴 제도 샤프를 잇따라 내놓았지만 힘 한번 못 쓰고 모두 단종되었다. 미쓰비시 유니 Mx?1052, 제브라 드라픽스 1000, 톰보 모노 테크 1000 등이 여기에 속한다. 즉 그래프 1000 하나가 제도 샤프 시장을 평정한 것이다. 그나마 로트링 500 정도가 살아 남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경쟁업체의 메인 제도 샤프(저가형제외)를 단종시킨 그래프 1000의 성공이 펜텔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펜텔이 이 샤프로(추가한다면 스매쉬) 시장을 주름잡고 있을 때 경쟁사는 제도용을 포기하는 대신 필기 및 팬시문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찾는 노력을 필사적으로 하게 됐고, 그 결과 미쓰비시 유니의 쿠루토가나 제브라의 델가드와 같은 샤프 역사에 남을 걸출한 제품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펜텔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현재도 고전 중이다. 심지어 펜텔의 다른 제도 샤프 라인업도 손상된 것을 보면 일종의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동족포식이었다고 생각한다.
---「펜텔 그래프 1000」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