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보도의 홍수 속에 우리는 고개를 내젓거나 혀를 차기 일쑤입니다. 정치의 과잉을 탓합니다. 정치의 후진성을 한탄합니다. 왜 정치인들은 싸움만 계속할까? 왜 민은 늘 졸(卒)인가? 한국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가? 민주주의가 꽃핀 나라라고 하는데, 왜 매번 투표를 해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이 모양 이 꼴일까? 우리는 왜 거듭 정치에 배신을 당하는 것일까? 왜? 이 책은 그러한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작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우리의 질문들은 사실 정치의 근본적인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습니다. 정치의 근본을 이해하면 더 쉽게 좋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해결책을 논하고 찾는 데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책머리에」
권위주의 정부에 대항해 투쟁할 때 모두들 민주화를 외쳤습니다. 아무도 공산화를 외치거나 왕조의 회복을 요구하지 않았죠. 민주체제라는 것은 마치 당연한 대의이거나 꼭 가야 할 미래처럼 취급되었습니다. 물론 민주체제와 민주정치의 발전은 다들 학교에서 배웠듯이 긍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학교에서 배웠듯이 그리고 미국이 주장하듯이, 민주화를 위해서 피를 흘리며 상상했던 모습처럼 훌륭한 것일까요? ---「3장 민주체제의 환상」
혹시 투표를 빼먹으신 적이 있나요? 선거 당일 무슨 이유에서건 투표를 안 한 적이 있나요? 당신이 투표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민주주의가 퇴보하던가요? 당신이 투표를 하지 않아서 당신이 지지하지 않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습니까? 그래서 죄책감에 시달리셨나요? 당신이 투표를 하지 않아서 조국의 미래가 수렁으로 빠졌습니까? (…) 하지만 사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4장 선거와 민의에 관한 불편한 진실」
선거를 중심으로만 정치를 대하는 것은 대중정치가 선거로 축소될 소지가 있습니다. 선거 때만 정치가 눈에 보이고, 선거 때만 투표를 통해 행동하기 쉽죠. 그렇다면 정치의 마당에서 다양한 싸움이 항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 때 몇주만, 그것도 아주 작고 수동적으로만 참여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자연히 대부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의 경우에 정치투쟁에서 빠져 있거나 소외되어 있는 것이죠. 문제는 내가 참여하지 않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투쟁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멈추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정치투쟁은 내가 관심을 보이건 보이지 않건, 내가 참여를 하건 하지 않건 직접적이고 커다란 영향을 항시 미치고 있습니다. 나의 무관심은 나의 정치적 패배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치열하게 정치투쟁에 관여하고 그 판에서 정치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내 무관심의 크기만큼 쉽게, 큰 저항 없이 자신의 승리를 챙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정말이지 최소한의 정치참여일 뿐입니다. 이것을 하고 내가 정치참여를 했다고 말하기엔 뭔가 초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