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징주의 시인이자 산문작가, 극작가이자 평론가. 세기말 유럽문학에서 유행하던 병적이고 염세주의적인 경향을 러시아 문학에 도입한 최초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시골 교사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1892년 뻬쩨르부르그에서 대표작『허접한 악마』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잡지 『북방통보』 출판사를 중심으로 한 당대 러시아 상징주의자 문인들과 교류한다. 1896년 러시아 최초의 퇴폐주의적 장편 『악몽』을 발표하고, 이후 자신의 집에서 ‘부활’이란 이름의 예술가, 작가, 시인 모임을 자주 열어 당대의 유명한 작가들과 계속 교류한다. 1907년『허접한 악마』를 출간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으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1913년부터는 ‘오늘날의 예술’이란 제목으로 강연을 하며 성공적인 연사로 자리매김한다. 1917년 러시아 2차 혁명이 일어나자 혁명에 대해 강한 반대 입장을 보이며 망명을 원했으나 쏘비에뜨 정부의 허가를 받지는 못한다. 한편 1921년 아내가 자살한 이후 그는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기보다는 세계문학을 번역하는 일에 매달린다. 1927년 12월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이틀 뒤 스몰렌스끄 묘지에 묻힌 아내 옆에 영면한다.
역자 : 조혜경
고려대 노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모스끄바 국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고려대, 충북대, 상명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에 『똘스또이, 시각을 탐하다』『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 나타난 리터러시와 비블리오테라피』, 역서에 『지하로부터의 수기』 등이 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지쳐갔다. 그는 숭고함도 지상에서 어떤 위로도 찾지 못했다. 지상의 고독 가운데에서 두려움과 애수에 지친 악마처럼 죽은 자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 p.143
최근에 그는 점점 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시선은 어딘가 먼 곳에 고정된 듯하거나 이상하게 허공을 헤매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해서 뭔가를 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보기엔 이런 현상 때문에 그의 눈에 사물들이 이중으로 겹쳐 보이고 정지되어 마비된 것 같았다. --- p.295
뻬레도노프는 자연이 애수와 두려움이란 감정에 자신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자연에는 내외적인 정의로 도달할 수 없는 적대감이 있다. 그런데 자연은 인간과 자연 간의 진정하고 심오하며 의심할 여지 없이 분명한 관계를 유일하게 만들어낸다. 하지만 뻬레도노프는 그런 자연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자연이 인간의 소소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개개인과 개별적인 존재들의 유혹에 눈이 먼 그는 자연이 들려주는 환희의 노래, 디오니소스적인 원초적인 기쁨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우리와 같은 많은 사람들처럼 눈멀고 불쌍한 인간일 뿐이었다. --- p.354
뻬레도노프는 모든 일에서 마법과 주문을 보았다. 환상 때문에 그는 공포에 질렸다. 그것은 그의 마음속에 광적인 싸움과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미지의 물체는 피범벅이 되어 나타나거나 불길에 휩싸여 신음하며 포효했다. 그 포효 때문에 뻬레도노프의 머리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으로 흔들렸다. 고양이는 이상할 정도로 거대해져서 발을 구르고, 무성하게 자란 붉은 수염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