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도덕철학에서 중요한 것은 규범적 행위에 대한 물음이나 행위 속에 들어 있는 보편자와 특수자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물음, 선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물음 등, 이 모든 물음을 직접적으로 취하면 안 된다는 것, 즉 이런 물음을 나타나는 대로, 혹은 느껴지는 대로 단순 소박하게 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느낌은 종종 아주 형편없는 조타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의식 속으로 고양시켜야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철학이란 도덕적 범주들의 문제, 올바른 삶과 앞서 말한 고차적 의미의 실천에 관계되는 물음들을―대담하게 그리고 서슴없이―정말로 한번 의식해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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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개념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금욕적 이상들’을 수반하지만, 그 이상들이 갖는 이성적 권리 근거가 의식 속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이면에는 어느 정도 뿌옇게 되어 버린 이해 관심들이 숨어 있으며, 이런 사실을 통해서 도덕 개념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내가 지난번 출발점으로 삼았고 오늘 다시 그에 관해 몇 가지 것들을 추가하고자 하는 관습윤리에 대한 관계보다도,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도덕이란 단어에 대해 느끼는 저항감을 더 참되게 표현하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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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에게 올바른 사유 능력, 즉 개념을 올바르게 형성하고 옳게 판단하며 전통 논리학에서 말해지듯 정확하게 추론하는 능력인 이성은 이론과 실천 모두에 대해서 동시적으로 구성적입니다. 이성이 이론에 대해 구성적이라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은 이 이성 자체가 본래 이론에 관해 결정하는 심급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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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연 이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속에서 세계의 사건들이 갖는 연관과 질서가 찾아져야만 한다. 자유(독립성)는”―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바로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 주기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이를 상세히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자연법칙으로부터의 자유는 비록 강압으로부터의 해방이지만 또한 모든 규칙들의 실마리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내가 자유 원칙을 긍정적으로 도입하게 되는 순간, 내가 인과성의 범주적 체계가 만들어 낸 강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순간에, 그 배후에 서 있는 것은 자연 자체가 카오스적이라는 사실입니다.
--- p.75
순수이성의 최종 목적에 관한 이 이론은 우리가 지난 시간에 다룬 바 있는 모순 및 모순의 인식에 관한 이론과 관련해 매우 결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이성의 순수한 사용이 갖는 최종 목적으로서 실천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순수이성의 최종 목적은 실천, 행위함이지 이론적 인식 혹은 칸트가 이 절에서 지속적으로 말하는 ‘사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p.101
칸트는 소위 형이상학적 이념들이 이론을 위해 구제될 수도 없고, 그것들은 이론에 대해 구성적 의미를 갖지도 않는다고 믿었지만, 단지 실천이성의 요청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이념들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도덕법칙은 칸트 이론에 따르면 나에게 주어져 있는 것, 즉 사실Faktum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도덕적으로 행위해야 한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불합리성을 피하기 위해 말하자면, 이 경험 자체 안에는 내가 저 형이상학적 실체들의 존재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신의 존재를 위하여 자유롭게 행위하는 게 아니라, 단지 내가 자유롭게 행위할 수 있기 위하여 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 p.111
자유의 이념과 억압의 이념, 특히 성향이나 공감과 같은 자연적 충동에 대한 억압의 이념은 어떤 의미에서는 칸트 도덕철학의 모순적인 두 계기인데, 이 아주 희한하고도 역설적인 구성이 단지 자유를 위해 일어나는 것임을 여러분은 여기서 보고 있습니다. 충동과 관심의 전체 영역, 이 모든 것은 이론적으로 매우 무자비하고 가혹하게 억압됩니다. 나 자신의 자유, 나 자신의 이성 원칙과 합일되지 않는 것에 내가 의존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오직 그 이유 때문입니다.
--- p.121
도덕철학의 구조는 도덕법칙의 소여성 너머로는 질문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나는 이 소여성을 단적으로 존중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의존해 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점에서 도덕법칙은 역설적으로 감각 자료를 상기시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이 나에게 빨갛게 보일 때, 그것은 단지 거기 그렇게 있는 것이기에 내가 더 이상 그에 관해 토론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계기가 칸트 도덕철학 전체의 구성에서 그토록 결정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중단의 태도에 관해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이 태도 또한 복잡한 계기들이 압축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 p.155
가치에 대한 숭배는 한 사회가 방향을 상실하고 기존 구조가 무너질 때, 즉 전통적 규범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개인들은 스스로를 규정하려 하지 않고 그저 붙잡을 수 있을 어떤 것을 움켜쥐려 하는 사회에서 생겨나는 반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숭배는 본질적으로 방향성에 대한 갈망에서 나오는데, 규범은 스스로를 이성 앞에서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이 갈망으로 인해 억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사실이 가치 안에서도 표현됩니다. 가치는 언젠가 자의적으로 정립된 것인데, 그 속에서는 진정으로 자신을 규정하면서 자신의 법칙에 따를 능력이 없고, 그저 ‘다가오는 대로 붙잡을 만한’ 것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취약성이 드러납니다. 그러고서 그들은 그 결과를 확고하고도 견실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