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진’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사진, 사진을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런 관계를 잇는 고리로서의 사진에 이르기까지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해서 뻗어나갔다. 사진을 찍기 싫어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들에게 낯선 존재였다. 사진 잘 찍는 법과 고르는 요령을 이들에게 처음부터 배워가면서 언제부턴가 나는 왜 사진을 찍지 않을까 도리어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나와 같지만 다른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청하고 그들의 언어와 관점을 거쳐 다시 ‘우리’의 관계를 새롭게 보는 인류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는 현실 속에서 같은 고민과 기억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 p.6
그럼에도 이 책은 ‘자연스럽게 예쁜’ 자기촬영의 전형에 집중한다. 사진 찍는 여성들의 다양한 면모를 지워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예쁜 연출’이 여성들의 촬영에서 여전히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여성들 대부분은 그러한 전형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의 일상적 촬영과 자기전시를 자기대상화라고 손쉽게 비판하거나, ‘그럼에도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고 그들을 대신하여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 책은 내가 가장 궁금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던 사진 찍는 여성들의 시선에서 출발한다.
--- p.9
여성들은 ‘내 사진’의 촬영에서 보정, 전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본인의 관점에서 관리하며 주관적으로 사진을 선별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이 책에서는 타인의 도움을 얻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여성들이 자신을 촬영한 결과물을 ‘자기사진’이라 부르고자 한다. 사진에 대한 ‘나’만의 소유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표현 “내 사진”은 1인칭의 입장을 강조한다. 자기사진은 독사진이나 셀카보다도 ‘내 것’의 정체성과 의미를 훨씬 강하게 반영하며 인간관계와 기호를 오직 ‘나’의 관점을 통해 프레임 안에 담아낸다.
--- p.11
사진은 촬영자이자 피사체인 젊은 여성들이 온전히 개인적인 의도를 담아 꾸미는 연출의 창구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사진은 ‘나’의 역사적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부분적인 조각이자,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게 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 생산되는 것이다. 이로써 촬영자 여성들은 자기사진을 매개로 ‘나’와 ‘우리’를 발견해나간다.
--- p.28~29
나는 한국사회에서 젊은 여성이 사진 매체를 통해 어떻게 재현되어왔으며 카메라를 다루는 주체로서는 지금까지 어떠한 위치를 부여받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최근의 자기사진 문화는 그러한 토대 위에서야 비로소 규명될 수 있다. 이것은 이제껏 충분히 다뤄지지 못한 일상의 촬영 문화를 젊은 여성의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자기사진은 한국사회에서 젊은 여성들이 자기만의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 이후로 이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스스로의 모습을 재현하는지 드러내는 단서이다.
--- p.31
200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초기의 SNS 플랫폼, 싸이월드는 미니홈피 서비스를 통해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즐거움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니홈피의 사진첩은 오로지 나만이 열람할 수 있는 폐쇄된 사적 공간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그보다 사진을 매개로 지인과 교류하며 친밀함을 유지하고 때로는 낯선 타인의 시선을 끄는 장場에 가까웠다. 이처럼 일상적인 사진은 인간관계의 형성과 유지에 깊게 개입하며, 최근 적극적으로 자기사진을 촬영하는 젊은 여성들의 실천은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위한 소통의 의미도 띤다.
--- p.48
여성들은 ‘예쁘게’ 자신의 모습을 담지만 너무 튀지는 않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되 그러한 노출이 지나치지 않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태도를 취한다. 나는 촬영자 여성들이 ‘좋아서 찍는’ 사진 속에 녹아든 즐거움과 재미, 슬픔, 그리고 공포를 읽어냈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자임하지 않는 여성들이 자기사진을 통해 ‘내 몸의 이미지’에 대한 소유권을 자각하고 주장하는 과정을 추적하고자 했다.
--- p.49
카페 웨이트리스, 여성 전화교환수와 공장노동자, 버스걸은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일했다. 직접 돈을 버는 직업인이 되었음에도 그 생활은 너무나 고달팠으며 적은 월급조차 마음대로 쓴다면 사치를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곤 했다. 「여자직업탐방기」에 실린 사진은 기사 내용이 충분히 담지 못하는 1920년대 여성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기자는 여성 직업인의 ‘꽃 같은’ 모습을 거듭 강조하는 데 그치지만, 사진에서는 정숙함이나 에로틱함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생활인의 면모가 드러난다.
--- p.66
가정용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에도 여성의 촬영은 ‘주부 촬영자’와 같은 성별화된 정체성을 통해 좁게 규정되었다. 가정용 카메라 담론이 만들어낸 평면적인 여성상들, 즉 가정의 보조 촬영자인 주부와 ‘아름다운 피사체’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이 자리 잡을 곳은 없었다.
--- p.77
1990년대의 ‘개성시대’를 향유하며 젊은 여성들은 카메라가 지닌 ‘자유’와 ‘위험’의 가능성을 동시에 접한다. 이는 이후 카메라를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다루는 태도와 감각에 큰 영향을 끼친다. 거리나 건물 내에 설치되어 있는 감시용 카메라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디지털카메라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지만, 여성들은 상이한 종류의 렌즈들을 일상에서 함께 경험하면서 복합적인 감각을 터득해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새 자신의 신체가 촬영될 가능성을 감지하게 된 것이다.
--- p.91
촬영자 여성들은 카메라폰을 구입하거나 친구의 카메라폰을 빌려 쓰면서 자기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김혜연이나 이현지는 개인 카메라를 갖게 되면서 일상적 촬영을 즐기게 되었다고 기억한다. 촬영이 일종의 놀이나 습관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이처럼 ‘내 카메라’의 소유가 중요한 기점으로 작용했다. 이때 촬영자 여성들의 손에 들어온 개인 카메라가 촬영 기능이 있는 통신기기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카메라가 장착된 휴대폰, 이보다 나중에는 카메라와 애플리케이션이 설치된 스마트폰이 이들에게 최초의 ‘내 카메라’가 되어주었다.
--- p.99
지금 이 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지금의 나 역시 그렇다. 스물네 살의 나와 스물다섯 살의 나는 서로 다르고 그 이후의 나도 마찬가지다. 김혜연에게 ‘내 사진’은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나’를 시시때때로 촬영해 남기고 싶다는 욕망의 결과물이다. 자기사진을 촬영함으로써 ‘나’는 특별한 존재로 남는다.
--- p.102
자기사진에 붙는 ‘내 것’이라는 인정은 단순히 내가 직접 촬영했다거나 스스로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는 의미뿐이 아니다. 어떤 사진이 ‘내 것’이라는 인증은 촬영·보정·공유·전시 등의 여러 단계를 거쳐 사진에 유동적으로 부여되며 때로는 철회되곤 한다. 또한 디지털 이미지 형태의 자기사진은 스마트폰이라는 기기와 온라인 공간을 출현케 한 기술적 배경을 깊게 반영한다. 이제껏 일상적인 자기재현에서 배제되어왔던 촬영자 여성들의 자기사진이야말로 개인의 동기와 기술적 조건이 가장 극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이다.
--- p.111
‘자연스러운 예쁨’은 자기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미적 조건이다. 촬영자 여성들은 ‘자연스러움’을 상당히 넓은 의미로 쓴다. 어떤 느낌으로 사진을 찍고 싶느냐고 묻자 촬영자 여성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사진’을 강조했다. 촬영자 여성들은 얼굴과 몸에 대한 보정의 적절함을 가늠할 때뿐 아니라 사진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할 때(“자연스러운 사진이 잘 나온 사진이죠.”), 또는 촬영할 만한 순간과 공간을 포착할 때 자연스러움을 고려한다. 자기사진과 관련한 자연스러움은 좋음, 또는 만족스러움에 해당하는 가치로 통한다.
--- p.136~137
자기사진이 애초에 촬영자의 결점을 제거하고자 하는 계산에 맞게 촬영되고 보정된 이미지임을 감안하면 촘촘한 선별 작업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선별을 거쳐 주인공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은 남고 그렇지 않은 요소는 세밀하게 제거된다. 주인공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가족 관계 또한 숨길 수 있다. 자기사진은 촬영자 여성의 기호에 맞게 조정된 인간관계를 담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사진의 갤러리는 가정용 카메라로 남긴 아날로그식 앨범과 구분된다. 자기사진은 철저히 촬영자 여성의 관점에 맞춘 세계를 보여준다. 무수한 자기사진들은 ‘나’ 중심의 서사로 재구성되며, 촬영자 여성들은 비로소 무결점의 역사를 지닌 개인이 된다.
--- p.160~161
사진과 카메라가 자신을 향한 범죄의 도구로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이들에게 깊이 각인된다. 그런 이유로 사진에 대한 여성의 감각은 복잡한 층위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형성된다. 촬영자 여성들이 자기사진의 중요한 조건으로 본인의 승인과 인정을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자연히 여성들의 자기사진 촬영은 잠재적인 위험을 여러 각도에서 계산하여 제거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여성들은 경험적으로 검열 기준을 만들고 사진 촬영에서 업로드에 이르는 전반적인 과정에 꼼꼼히 적용한다.
--- p.170
인스타그램에서 일상의 공유는 단순히 소식을 전하거나 안부를 묻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스타그램 내부에서 통용되는 분위기와 규칙에 맞춰 수행하는 ‘소통’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구는 인스타그램식 소통의 규칙과 접합된다. 즉 나의 모습을 적절한 방식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인스타 여신’이나 활발한 유저와는 구분하면서 ‘자기과시’가 아닌 소통에 중점을 두는 평범한 유저로 자임하는 것이다.
--- p.216
젊은 여성들은 인스타그램의 모순적인 구조적 환경을 경험하면서 자기사진에 대한 소유권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히 SNS 플랫폼과 단절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내부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타인에 의해 자유롭게 수집될 수 있는 자기사진의 통제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요구이다.
--- p.238
이야기를 나누며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촬영자 여성들이 ‘내 사진’을 찍고 업로드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계속해서 타인의 존재를 끄집어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성이나 욕구뿐 아니라 주변의 관계들로 인해 ‘자기사진 촬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촬영자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기술과 함께 독특한 촬영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 그 속에서 자기 자랑과 관계 맺기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한편, 불쾌하게도 자기 이미지를 ‘수집당하는’ 상황에 그때마다의 전략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능동적인 실천’이나 ‘수동적인 재생산’의 이분법으로 갈라 볼 수 없다.
--- p.246
왜 자기사진을 찍는지를 질문하며 촬영자 여성들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나는 왜 자기사진을 찍지 않는지를 거꾸로 묻게 되었다. 아마 내 이미지를 두고 피로한 ‘소유 경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촬영의 세계’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한번 들어간 뒤로는 다른 행위자들과의 줄다리기에 용기를 갖고 임해야 한다. 어떤 모습의 사진을 찍든 촬영자 여성들이 그러한 관계에서 분명한 우위를 점하길 나는 바란다.
--- p.247~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