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과 소셜 미디어의 대중화는 기존 미디어 기업들이 독점해 오던 국제 뉴스의 생산과 유통 과정에 일반인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舊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가 기존 미디어를 대신해 다양한 지역에서 발생하는 이슈와 정보, 뉴스들의 생산과 유통 경로에서 점차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미디어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와 뉴스를 수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하며 자신의 입장을 결정했다. 다시 말해 언론사가 특정 국가나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과 사고를 보도하면 시청자들은 그 뉴스를 통해 해당 국가에 대한 이미지, 이슈의 내용과 성격, 그 국가와 지역의 외교 정책에 대해 의견을 가졌지만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 등 SNS 플랫폼 이용자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사회 또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와 사진, 동영상을 제작해 공유하게 되면서 자국의 이용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해외 공중과도 소통하게 된 것이다.
--- p.11
세계는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견 국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국제 외교 안보에 매우 세심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주요 경제 선진국 중 하나로서 안정적이고 상호 발전적인 경제 질서를 만들기 위해 경제 외교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또한 서구 중심의 사회 및 문화적 관점과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공공외교적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자국의 이익을 넘어 진일보한 국제 관계를 형성해야 할 책무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 국내 언론들은 국제 뉴스의 재정립을 위해 국제 뉴스의 위상을 세우고 일국적 영토 개념을 초월해 글로벌한 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탈영토적 국제 뉴스 보도와 서비스를 제공할 준비를 더 이상 미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선 기자들을 비롯해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국제 뉴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적극적인 개선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국제 뉴스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들을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자원과 비용, 시간이 투입되어야 하기에 정부와 전문가들은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마련하고 뉴스 미디어 기업이 국제 뉴스를 재정립하는 데 직간접적인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제 뉴스의 재정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외 일반 공중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제 뉴스의 내용과 형식 및 유통 플랫폼을 개발하며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뉴스 미디어 기업이 글로벌 공론장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p.30~33
전운이 감돌고 있는데도 결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던 전쟁 직전, 다른 무엇보다 내게 첨예하게 다가온 것은 이런 정치 경제 및 안보 이슈가 아닌, 미디어에 의해 계속 반복 재생산되며 더욱 강화되는 러시아의 악마화된 이미지, 그것이 만들어내는 공포와 위협이었다. 러시아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 ‘루소포비아’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너무나 공고했고 각국의 언론 보도는 그것을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
영미 언론을 받아쓰기 바빴던 국내 언론사들은 기사를 통해 “익명의 첩보에 의하면 러시아가 곧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다.”라는 미국 정부의 말을 쏟아냈다. 물론 미국의 싱크탱크와 위성 사진이 총동원된 정확한 첩보였을 것이고 실제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지만 러시아의 침공이 분명하다는 세계의 너무도 확신에 찬 언론 보도에서 이미 전쟁은 시작된 것이라 해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 p.51~552
언론에서도 1980년 5월 광주와 2021년 2월 미얀마의 공통점을 찾아내 비극적인 현장의 사진과 영상을 비교해 보여주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자들의 공감대와 연대 의식을 끌어내고 미얀마의 오늘을 위로하며 미래의 광주가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5.18을 맞이해서는 여러 인사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5.18 민주화 정신으로 군사 독재에 맞서 싸우는 미얀마 시민들을 응원했다.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는 물론이고 5.18 희생자의 유가족이나 일반 시민들도 광주처럼 미얀마에도 민주화가 속히 오기를 한마음으로 염원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인의 사연은 뉴스 인터뷰와 주요 언론 보도와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쏟게 했다. 이렇듯 미얀마 사태를 집중 조명한 언론의 영향력은 컸다. 과거 우리의 경험과 시민 의식이 국제 사회에서 잊히지 않고자 노력하는 미얀마인의 열망과 더해져 멀게만 느껴졌던 미얀마에 대해 담론화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많은 보도가 광주와 연계해 ‘군사 독재-민주화’를 강조한 나머지 미얀마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자세히 조명하지 않아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단순화되고, 우리의 광주와 비교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과하게 말하자면 자랑스러운 우리의 민주화운동 기억이 미얀마의 현재에 투영되어 기사를 쓰는 것이다. 이런 기사는 독자의 공감을 끌어내고 기사를 재생산하게 하지만 미얀마 자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끌어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 p.86~87
경제 발전과 문화 산업의 확장으로 한국은 더 이상 외국의 소식을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지위가 아니라 한국의 소식이 중요한 이슈가 되는 생산의 지위로 올라서고 있다. 이는 소위 선진국 혹은 서구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의 관점을 배우고 따라 하며 형성해 왔던 미디어의 외신 인용과 국제 뉴스 생산 관행이 변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 사회에서 경제적 · 문화적 영향력을 키우며 발언권을 확대해왔던 우리는 상승한 지위에 환호만 할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시선과 관점을 키워갈 책무가 있다. 이러한 공론을 형성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미디어는 그물망처럼 다양한 맥락으로 엮여있는 국제적 이슈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할 책임이 있으며 되도록 많은 발언을 전달하는 채널이 되어야 한다.
--- p.148~149
중동 · 아랍 · 이슬람에 관한 국내외 국제 뉴스를 글로벌 시민에 걸맞게 읽고 쓰는 능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국제 뉴스를 통해 중동 · 아랍 · 이슬람을 접하는 우리는 포스트 9.11 저널리즘이 양산한 이슬라모포비아를 염두에 두고, 이를 위해 해당 이슈에 대해 포괄적이고 다각적인 접근이 가능한 뉴스 생산자를 길러내야 할 것이다. 중동 · 아랍 ·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현실적인 거리감으로 인해 간단치 않은 작업임이 분명할 테지만, 그럼에도 관련 국제 뉴스를 ‘바로’ 읽고 쓰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폐쇄적인 전통 이슬람 국가였던 사우디아라비아가 BTS 공연으로 문호 개방의 제스처를 취한 것처럼 이미 중동 · 아랍 · 이슬람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간 거리를 좁혀 나가도록 뉴스 생산자와 수용자 모두를 아우르는 국제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기대해 본다.
--- p.181
가자 지구는 2008년 사태 이후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히 봉쇄된 상태로 전력과 상하수도는 물론 모든 생필품이 이스라엘 방위군의 통제하에 반입되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그러나 해외 언론들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억압 정책과 강경파 정부인 하마스의 갈등 고조와 충돌을 공론의 장에 올려 논의하기는커녕 원색적인 기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의 행태를 비판하며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교조주의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한국 언론 역시 이러한 외신의 기조를 그대로 받아들여 외신이 갖는 문제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듯 국내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언론 보도에서 보여주는 기계적 중립과 양비론은 해당 분쟁에 대한 양쪽의 잘못을 짚어내어 감시자로서의 언론 역할을 하고 있다는 착시를 가져오지만 결국 이스라엘이 생산하는 ‘국가 안보를 위한 방어 논리’의 틀 안에서 언론의 보도가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 p.191~192
미디어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단순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단순화된 메시지는 논리적 전달보다는 감정적 호소에 더 적합하다. 뼈에 얇은 가죽만 올린 듯 부서질 것처럼 마르고 배만 볼록 나온, 그리고 아이들의 눈과 코와 입 주변으로 끊임없이 파리가 앉았다 날아가는 이미지, 이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인들이다.
이런 강력한 이미지는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NGO 단체들의 모금 활동에 효과적으로 활용된다. 빈곤 포르노의 대표적인 예이다. 빈곤 포르노는 빈곤 상태에 처한 사람들을 절망적이고 수동적인 대상으로 묘사해 관음증적인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최악의 이미지이다.
--- p.215~216
튀르키예는 한국과 지리적 거리도 있긴 하지만 비중을 두는 국제적 현안이 중동과 유럽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이다. 이 지역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기에 한국에 대한 현안과 기사들은 튀르키예 관점에서는 매우 후순위에 있다. 그렇지만 튀르키예의 주요 신문사 보도를 보면 한국 관련 뉴스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튀르키예의 6개 주요 신문의 한국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면 약 1,597개가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보수 성향의 신문보다 중도와 진보 성향의 신문에서 한국 관련 기사를 더 많이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슬람 성향의 튀르키예인들이 중도와 세속주의적인 진보 세력들보다 국제 문제에 관심이 적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 북한이나 한류와 관련된 대중 문화 기사들이 튀르키예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분야라고 할 수 있지만, 앞서 말했듯 이러한 기사들은 진보 성향이나 중도 성향의 일간지에서 더 많이 보도되었고 한국과의 방위 산업 협력이나 군 협력과 같은 기사들은 보수 성향의 신문에서 더 많이 보도되었다. 현 정부와 좀 더 가까운 보수 성향의 신문들이 튀르키예 정부의 관심사인 방위 산업이나 군 협력에 더 관심을 보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 두 분야 외에 경제 관련 뉴스나 코로나19 방역 관련 기사가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2년 1년간을 살펴보면 대중 문화와 스포츠 분야에서 기사량이 늘었다. 김민재 선수와 김연경 선수 같은 한국 스포츠 스타들이 튀르키예 리그에 진출하면서 이들과 관련된 스포츠 기사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한국과 튀르키예 간 올림픽 여자 배구 경기가 튀르키예에서도 주목을 받으면서 스포츠 관련 기사 증폭에 큰 역할을 했다. 경제 관련 기사 역시 한국 기업들의 제품 관련 소개와 함께 한국-튀르키예 간 경제 협력 기사나 스와프 협정 체결 관련 기사가 비중 있게 보도되었다.
--- p.245~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