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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스페인으로 떠났다

[ 개정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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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54위 | 여행 에세이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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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129*189*15mm
ISBN13 9791198712813
ISBN10 1198712813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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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 카운터로 가서 다시 수화물을 올렸다. 조금 전과는 다른 직원이 돌아오는 비행기 표가 1년 정도 후인 것 을 보더니 유학을 가냐고 묻는다. 이 상황에도 어학연수 에 간다고 대답하는 내 자신이 왜인지 모르게 자랑스러워 방금 전까지의 고생은 잊히고 미소가 지어진다.
--- p.15

마드리드에서 나는 아직 여행자였다. 다른 여행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커다란 이민 가방을 들고 호스텔에 투숙했다는 것이고 스페인 여행을 왜 왔냐는 질문에 어학 연수하러 왔다고 대답을 했다는 점만 달랐다.
--- p.19

그렇게 먼지가 풀풀 나는 침대 위에서 알리칸테에서의 첫날밤이 저물었다. 9층 높이의 집이라 침대에서 바라본 창문으로 스페인 하늘이 보였다. 이제 여기가 내가 살 곳이다. 하늘이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날 밤하늘은 매우 맑고 바람 한 점 없는 높은 하늘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쓸쓸했다.
--- p.25

성곽은 잔해만 남아있고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다지 흥미로울 것은 없었 다. 널려있는 돌무더기와 관리하지 않아 이끼 낀 돌벽들 그리고 시간마다 종을 울리는 종탑 주위로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버려진 집들이 널려 있었다. 관광지의 깔끔하게 관리된 성곽과 다르다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카를로스의 고향이었고 나 는 그곳에 방문한 최초의 동양인일지도 몰랐다. 그는 열 심히 신이 나서 성곽의 유래와 도시에 대해 설명했다. 미안하지만 성곽과 도시의 유래에 대해서는 지금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라리 근처를 방황하던 검은 고양이가 더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 나눴던 진솔한 이야기들은 성곽의 역사와 도시의 유래보다 더욱 흥미로웠고 그 대화 때문에라도 이 도시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 p.163

올리브와 오렌지를 키우는 햇볕과 바다가 있는 스페인 도 매력적이었지만 나처럼 현실적인 고민들로 앞날을 걱정하는 친구들이 있는 스페인도 좋았다.
--- p.169

거리의 풍경도 여름과는 많이 달랐다. 해변 바(bar)나 레스토랑에 밤늦게까지 앉아 맥주나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줄어들더니 바닷가가 한산해졌다. 겨울에도 매일 바다에 갔다. 여름바다와 다른 겨울 바다의 느낌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여름 바다만큼 파랗지는 않지만 겨울의 바다는 깊은 회색빛이었다. 활기참보다는 차분함과 쓸쓸함이 느껴졌다. 겨울바다는 공기와 냄새도 달랐다. 조금 더 건조하고 조용하며 소금기도 덜했다.
--- p.175

스페인어로 아디오스(Adios)는 작별인사다. 보통 아스따 루에고(Hasta luego)라고 하기도 한다. 직역하자면 아디오스는 ‘안녕’이고 아스따 루에고는 ‘나중에 보자’ 는 뜻이다. 주로 조만간 곧 보게 될 친구에게 건네는 인사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난 스페인 땅에 인사를 건넸 다. 아스따 루에고라고.
--- p.264

성당에서 봤던 구유 속 성가정처럼 모두가 가족과 함께 하는 밤에 내 밥 한 끼를 위해 일하라는 것이 잔인한 일 같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 속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주인공들이 가족의 품 안에서 행복을 깨닫는 결말로 끝이 났다. 크리스마스는 근사한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날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해야 하는 날이었다. 내 한 끼 저녁을 위해 사람들이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길 필요는 없다. 나는 그럴 권리가 없었다.
한국에 있을 가족들이 보고 싶어졌다. 스페인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밤이 저물었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는 무척이나 조용했고 평온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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