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역시 이건 사랑이야.
확신하고 말았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석 달 전, 그 찰나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진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와카, 얼른 음료수 사서 가자.”
마키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계산대를 향해 달렸다. 그는 무서운 기세로 뛰어오는 내 모습에 잠시 놀라는 것 같았지만, 이내 내 마음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러지 마. 그렇게 웃지 말란 말이야. 그 웃음 하나에 난 당신이 우리의 운명을 인정했다는 착각에 빠져 버린다고.
---「프롤로그」중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좋은 일이야. 그건 정말 좋단다.”
시노에게, 그리고 미쓰에 스스로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이가 몇 살이든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 상대를 좋아하는 동안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자신까지 좋아했으면 좋겠어.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그만큼 자기 자신도 아껴 주는 거야. 소중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스스로가 되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좋아해’의 마음을 느끼면 그건 분명 행복일 거야.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였다. 그 말을 들은 시노는 할머니가 근사한 ‘좋아해’의 마음을 갖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저 점장님은 할머니가 스스로를 좋아하게 될 만큼 큰마음을 선물해 준 것이다. 진정으로 멋진 사랑은 나이가 몇 살이든 시작될 수 있고, 몇 살에 만나든 행복을 선사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시노는 깨달았다.
---「할머니와 사랑에 대한 고찰을」중에서
“민폐라고 생각할 리가 없잖아요. 소중한 저희 가게의 손님이신데요.”
평소라면 코웃음을 칠 이야기였다. 거액을 쓰는 고객도 아니고 단지 편의점 손님일 뿐인데, 너무 거창한 말이다. 하지만 왠지 그 한마디가 한 줄기 환한 빛이 되어 다로의 가슴 깊숙한 곳에 닿았다.
“소중한 손님이에요, 당신은.”
순간 눈물이 뚝뚝 흘렀다. 도대체 왜 갑자기. 다급하게 눈물을 훔쳤다. 시바는 그 모습을 못 본 척하며 “제가 있으면 쉬기 불편하죠? 나중에 또 괜찮은지 보러 올게요”라며 가게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취식 코너에서 다로는 울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 기뻤다. 설령, 그것이 처음 들어간 편의점 점원의 접객 멘트라도 상관없었다. 이 넓은 세상에 파묻혀 사라질 것 같았던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았다. 마치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히로세 다로의 우울」중에서
몇 년 동안 가슴속에 묵혀 두었던 문제, 외면해 왔던 불만에 맞서려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도 간단히 심경의 변화가 생길 수 있을까. 하지만 원래 이런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작은 배려를 담은 한마디, 이런 것들이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등을 밀어 준다. 그 부드러운 힘으로, 사람은 바뀐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다. 푸른 하늘이 드높고, 하얀 새가 우아하게 호를 그린다.
---「히로세 다로의 우울」중에서
다정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구리하라가 유난히 눈부셔 보이는 것에 신기해하고 있는데 구리하라가 미즈키의 주먹 위에 가만히 손을 포개 왔다. 미즈키에 비해 자그마한 손이 주뼛주뼛 손을 잡는다.
“무라이가 친구들을 괴롭힌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면, 같이 후회하자.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말해 줄게. 그걸로 안 될까?”
지금 이 아이는 미즈키를 받아 주려 하고 있다. 이것이 기쁜 일인지, 바보 같은 일인지 미즈키는 알 수 없었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스스로도 이제야 겨우 인정한 추악한 잘못을 다른 사람이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 주다니,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정말 가능한 것일까.
“나에 대해 잘 모르잖아. 그러면서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언젠가는 나한테 질리고 말 거야.”
“질린다는 건 자기가 상대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래.”
구리하라가 시원스럽게 답했다. 쇼헤이 씨가 알려 줬어.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 착각 속에 빠져 상대를 보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쓴다고. 뭐야, 이런 사람이었어? 라면서. 충분히 그 사람을 지켜봐 와서 정말 잘 아는 사람은 그런 말 하지 않는대. 그런 말로 한 사람의 행동을 단정 짓지 않는다고 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여왕의 실각」중에서
“…나, 올바름이 가지는 강력함과 그것을 휘두를 때의 오만함을 알았어. 무엇보다 다정함을 담은 페트병을 건네줄 사람을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그 집의 아이였어.”
빨강 할아버지가 건네준 두 병의 페트병.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 가 달라고 했던 다정함. 빨강 할아버지는 그 두 병분을 시마에게 주라고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시마에게는 쓰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건네주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보니 아빠가 ‘다쓰키’라고 부르던 아이가 떠올랐다. 과연 이것이 두 병분의 다정함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오만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동하고 싶었다. 건네주고 싶었다.
미즈키와 스미에 사이에 놓인 두 개의 디저트. 소다색 바다 위에 놓인 엄마 펭귄과 아기 펭귄이 화목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었다.
---「여왕의 실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