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두 고양이가 나에게 물었어.
그런데 우리를 왜 훔쳐 왔어요?
나도 왜 두 고양이를 훔쳐 온 건지 가물가물하다……
마침내 기억해 냈지.
나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나랑 똑같이 버려지고 잊힌 얼굴을 하고 있어서.
--- p.124
사람들은 멍청하지.
버릴 때는 언제고, 필요 없다고 잊어버렸을 때는 언제고.
남이 가져가면 돌려 달라 배 아파하지.
결코 버린 적 없었다는 듯, 정말 소중했었다는 듯.
마치 필요했던 것처럼, 잊어버리지 않았다는 것처럼.
자기가 뭘 버린 지도 모르는 주제에.
자기가 뭘 잃어버린 지도 모르는 주제에.
--- p.134
제대하던 해 불의의 사고가 났다. 결혼 삼십 주년을 기념해 해외여행을 떠난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수한은 하루아침에 인생이 딱지 뒤집듯 바뀔 수 있다는 게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다. 사진관엔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셔터 소리와 필름 감는 소리, 부모님의 대화와 아이들 웃음소리까지도. 수한은 난생처음 느끼는 적막이 어색하기만 했다.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귀를 멀어 버린 것만 같았다. 슬퍼할 새는 없었다. 책임져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진관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생이었다. 그 책임감이 수한을 버티게 했다.
--- p.180
엄마를 미워하지 않아. 엄마를 울리는 아저씨는 밉지만, 엄마를 미워한 적은 없어. 그냥 궁금해. 엄마는 왜 아저씨랑 있고 싶어 할까? 아저씨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총알을 쏘고 폭탄을 날려서 집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데……. 무엇보다 엄마에게 자주 화를 내고 엄마를 자꾸 울리는데……. 내 생각에 아저씨는 엄마를 미워하는 게 분명한데……. 엄마는 왜 아저씨랑 살고 싶은 걸까? 정말 정말 궁금해. 옛날에 엄마에게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어. 엄마는 이렇게 답했어.
‘행복해지고 싶어서.’
미움 받는 게 행복한 걸까. 엄마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잘 모르겠어. 엄마 마음은 아주아주
어려운 수수께끼 같아.
--- p.193
그 아이를 지켜보고 싶어졌어. 아니, 가능하다면 그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오래 보고 싶어졌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지금까지 온 거야. 꼭 우리 딸아이가 돌아온 것 같았거든. 놓쳐 버린 우리 딸아이가 돌아온 것 같았어. 내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얼굴도 닮아 보였다니깐. 알아, 다 부질없는 망상이고 미련인 거. 하지만 이유 없이 살아가던 내 생에 그 아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가 생겼으니……. 늘그막에 욕심을 좀 부려 본 거야.
그래, 내 속 편한 해석이라 해도 할 말 없어. 하지만 이제 와 보니 내가 그 아이를 알아본 게 짐승의 직감이 아니라 인간의 연이었나 보다 싶어.
--- p.207
자라가 죽은 뒤에도 계속 창고에서 지냈다. 자라는 죽었지만, 정연은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기에 새로운 생존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다른 사람들을 쫓아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따라나선 이에 따라서 습득하는 장르가 달라졌다. 몸을 쓰는 사람에게서는 지지 않고 싸우는 기술을, 도망치는 것이 일과인 이에게서는 귀신같이 사라지는 법을, 빈집 털이범에게서는 원하는 것을 훔쳐 오는 법을……. 정연은 다양한 직종의 ‘나쁜 놈들’에게서 다양한 ‘나쁜’ 기술을 터득했다. 타고나길 학습 능력이 뛰어나 금세 가르쳐 주는 이를 무색하게 만들고는 했다. 자연스럽게, 아니 운명처럼 정연은 완벽한 도둑으로 자라났다.
--- p.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