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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에게 ○○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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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152*225*30mm
ISBN13 9791197299537
ISBN10 11972995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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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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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문학자들은 밖에서 가져온 것을 한국말로 풀어서 가르치는 일에 기대어서 학문과 종교와 정치를 아우르는 굳건한 권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이런 권위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서 밖에서 들여온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크게 부풀려왔다. 사람들은 이런 지식과 정보에 길들여지면서 인문학에서 마주하는 갖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언제나 남이 이루어놓은 바깥의 인문학에서 찾게 되었다. 이런 일이 천 년이 넘게 이어지자 한국의 인문학은 번역 인문학, 수입 인문학, 종속 인문학, 중개 인문학으로 성격을 굳히게 되었다.
--- p.5

한국말에서 ‘나’는 ‘나다’, ‘낳다(나+히+다)’, ‘내다(나+이+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다. 나는 ‘난 것’이면서 ‘낳은 것’이면서 ‘낸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곧 ‘나’라는 것이 절로 생겨나서 태어나게 된 것이면서, 어버이가 나를 낳아서 태어나게 된 것이면서, 누리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이 나를 나도록 해서 태어나게 된 것임을 말한다.
--- p.17

살림살이의 임자인 사람들은 저마다 사람됨의 차림새를 갖고 있다. 사람은 사람됨의 바탕인 인성을 밑천으로 삼아서 온갖 것을 느끼고, 알고, 바라고, 이루는 일을 꾀하면서 저마다 나름으로 사람됨의 차림새를 갖추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지닌 사람됨의 차림새를 인격(人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인격을 바르게 갖추려고 염치, 예의, 예절, 체면, 체모 따위를 차리고자 한다. 이 때문에 인격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은 염치, 예의, 예절, 체면, 체모 따위를 차리는 일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
--- p.22

조선왕조에서 존비어 체계는 신분에 따른 인격 차별을 강화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왕조 체제를 지키는 데 유용한 수단으로 구실했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사회에서 존비어 체계는 사람들이 민주적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가로막는 방해물로 구실한다. 이 때문에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적 인간관계와 차별적 존비어 체계 사이에 끊임없이 마찰과 충돌이 빚어지게 된다. 사람들은 민주적 인간관계와 차별적 존비어 체계를 놓고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한다. 사람들이 민주적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으려면 존비어 체계에서 비롯하는 유사 신분관계를 벗어나야 한다.
--- p.45

한국사람은 사람의 성질이나 성격이 맛을 바탕으로 삼는다고 보아서 ‘성미(性味)’라는 한자 낱말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사용해왔다. 한국사람은 사람들이 성질이나 성격에서 다른 것은 ‘성(性)의 맛’, 곧 ‘성미(性味)’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한국사람은 사람마다 성미가 다르기 때문에 성(性)의 갈래, 곧 성깔(性+갈)이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학자들은 서양말인 캐릭터(character)를 성미나 성깔로 부르는 대신에 일본사람이 번역한 성격(性格)으로 부른다.
--- p.72~73

한국사람은 ‘나’에 바탕을 둔 미적 공공성과 ‘우리’에 바탕을 둔 집단적 공공성의 일치를 위해, 나와 우리의 경계를 허물어 하나의 ‘우리’로 통합하려고 한다. 우리는 본디 ‘울이’로서 ‘울+이=어울려 하나가 된 사람’을 뜻한다. 나와 네가 어울려 ‘우리’로서 하나가 되면, 나와 너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은 곧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일’이 되어, 나와 너에 바탕을 둔 미적 공공성이 우리에 바탕을 둔 집단적 공공성과 하나를 이룬다. 한국사람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우리’로 말하는 것은 미적 공공성을 통해서 더욱 큰 아름다움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사람은 끊임없이 우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 p.97

사람은 어머니 뱃속에 하나의 생명체로 들어서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감각하는 몸을 바탕으로 지각하는 마음이 생겨나서 자라게 된다. 이때부터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천성을 바탕으로 습성이 만들어지면서 심성, 성정, 품성 따위를 기른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 온갖 것을 맛보는 과정에서 갖가지로 습성을 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저마다 성품, 성미, 성깔, 성격이 일정한 방향으로 틀을 잡아간다.
--- p.138

조선시대에 『훈몽자회』, 『광주천자문』, 『석봉천자문』, 『주해천자문』에서 덕(德)을 ‘큰 덕’으로 풀이한 것은 중국사람이 덕(德)을 바른 행동으로 풀이한 것과 많이 다르다. 한국사람이 덕(德)을 큼으로 풀이한 것은 내가 저밖에 모르는 사람에서 저의 밖까지 알아내고 알아주는 사람으로 나아가서, 나와 남이 함께 우리를 이루어 나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드는 바탕을 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덕을 바탕으로 나를 넘어서 남과 함께 어울려 우리를 이룸으로써 큰 나로 나아갈 수 있다.
--- p.204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일은 서로 덕으로써 빚을 지고 살아가는 일과 같다. 예컨대 오늘날 사람들이 논이나 밭에 작물을 가꾸며 살아가는 일은 옛사람들이 피땀을 흘려서 일구어놓은 농토에 빚을 지며 살아가는 일이고, 말과 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옛사람들이 가꾸어놓은 말과 글에 빚을 지며 살아가는 일이다. 사람이 우리로서 함께 어울려 문화를 갈고닦는 일은 앞사람에게서 물려받은 빚을 갈고닦아서 뒷사람에게 덕으로써 물려주는 일이다.
--- p.223

한국사람은 사람이 쪽으로서 남에게 나아가 함께 우리를 이루는 어진 바탕을 덕으로 말한다. 이때 덕은 존재를 존재답게 만든 것으로서 뜻이 매우 커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덕은 원리와 방법과 수단을 포괄하는 도(道)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도와 덕을 아울러서 도덕(道德)이라고 말한다. 도덕은 글자 그대로 ‘도(道)에 바탕을 둔 덕(德)’ 또는 ‘도(道)로서의 덕(德)’을 뜻한다. 이때 도와 덕은 바탕과 드러남으로서, 도는 덕이 드러나는 바탕을 가리키고, 덕은 바탕인 도의 드러남을 가리킨다. 도덕은 모든 존재가 함께 어울려 있다고 보는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다.
--- p.236

우리가 교육을 ‘가르쳐서 기르는 일’로 보면, 교육은 가르침을 펴는 교사와 기름에 이르는 학생이 함께 임자로서 참여하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교사와 학생은 모두 교육의 임자로서, 새의 두 날개와 같이 가르쳐서 기르는 일을 함께 이루어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교육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로 보게 되면, 교육은 주체인 교사가 대상인 학생을 가르치고 기르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교육의 중심은 자연히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의 활동에 놓이고, 교사를 좇아서 배우는 학생의 활동은 주변에 머물고 만다.
--- p.268

교사는 가르침을 통해서 학생을 기르고자 한다. 그런데 가르침을 펴는 임자는 교사지만 기름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임자는 학생이기 때문에, 교사의 가르침이 곧바로 학생의 기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교사가 아무리 많이 가르쳐도 학생이 배우지 않으면 기름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배움의 과정을 거쳐야만 학생이 기름으로 나아가는 까닭에, 가르쳐서 기르는 일은 언제나 배움을 끌어들인다.
--- p.273

사람이 느끼고, 알고, 하는 힘을 통합적으로 기르는 것은 알아내고, 알아주고, 알아 함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람은 알아냄을 통해 알아내는 능력을 기르는 동시에 앎의 크기와 깊이를 키워나간다. 사람은 알아줌을 통해 나와 남의 관계를 넓고 깊게 할 수 있다. 사람은 알아 함을 통해 앎의 내용을 실천하는 동시에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 p.311

오늘날 한국사람은 국가의 몸통인 정체가 바르게 수립되었다고 생각하는 까닭으로 정체를 바르게 하는 일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화 과정을 통해 민주 정체의 바탕이 어느 정도 마련되고 안정적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은 정체에 관해서 제기되는 나머지 문제들은 헌법재판소, 대법원, 국민투표 따위를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에 한국사람에게 ‘국가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은 국민이 먹고사는 일의 바탕으로서 쉼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한밤중에 모든 국민이 곤히 잠들어 있는 사이에도 국가의 다스림은 빈틈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한국사람은 국가의 다스림에 기대어 행복한 삶을 펼치려고 하는 까닭에 ‘나’의 삶과 국가의 다스림이 하나를 이루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사람이 다스리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한순간도 끊이지 않는다.
--- p.321

한국사람이 어떤 것을 ‘다스리는 것=다 사르는 것’은 ‘낱’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다’ 살리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곧 한국사람은 사르고 살리는 기준을 하나인 ‘낱’에 두지 않고 모두인 ‘다’에 둔다. 이는 한국사람이 본디 모든 것이 ‘우리’로 함께 어울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은 사람과 사람이 ‘우리’로서 함께 어울려 있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과 불, 물, 바람, 풀, 나무, 벌레, 동물 따위가 ‘우리’로서 함께 어울려 있다고 본다. 한국사람은 ‘우리’를 이루는 이쪽과 저쪽을 다 살라서 하나를 이룸으로써 이쪽과 저쪽이 함께 어울려 있는 본디의 모습을 잘 살려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다스림은 ‘낱낱의 것을 어울러 하나의 우리로 만들고, 그것에서 생겨난 힘을 모두가 다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쓰는 일’을 말한다.
--- p.326~327

한국사람은 갖가지 다스리는 일 가운데 국가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 곧 정치를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보았다. 사람들이 다스림을 말하면 무심코 치국(治國)과 정치를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사람에게 ‘정치’는 국가가 살림살이의 주인인 국민을 모두 다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 정치가는 다스림의 잣대와 수단인 ‘이(理)’와 ‘치(治)’에 밝아야 하고, 다스림에 대한 열정인 ‘사랑’이 뜨거워야 하고, 다스림의 범위인 ‘다(모두)’에 철저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치가는 국민의 열정을 살라서 하나인 ‘우리’를 만듦으로써, 이러한 ‘우리’에 갖가지 바람을 녹여서 낱낱의 보람을 만들어, 모두가 다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 p.328

한국사람은 ‘바르게 다스리는 일’을 ‘그윗일’, 곧 ‘그 위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불렀다. ‘그윗일’에서 ‘그위’는 다스림의 잣대인 정체의 공공성을 말하고, ‘일’은 공공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다스림을 말한다. 한국사람은 다스림의 잣대가 이것의 ‘위’나 저것의 ‘위’가 아닌 ‘그 위’에 자리하고 있다고 보아서 ‘그위 공(公)’으로 새겼다. 곧 한국사람은 이것과 저것의 손익(損益)이나 호오(好惡)를 넘어서 모두를 같게 여기는 ‘그 위의 자리’에 공공성이 자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 p.329~330

오늘날 한국사람에게 정치는 대한민국을 이루는 일이고, 이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글자의 뜻을 제대로 살리는 일을 말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한(大韓)은 ‘클 대(大)’와 ‘클 한(韓)’으로 ‘크고 큼=가장 큼’을 뜻하고, 민국(民國)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뜻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다 함께 가장 큰 우리를 만들어 누리는 일’을 말한다. 이때 정치는 한국사람이 ‘가장 큰 우리’를 만들고 누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과 같다.

한국사람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국가적 행사로 여기면서 다 함께 기뻐하는 것이나, 개인이 거둔 성공을 곧 국가적 성공처럼 여겨서 국민선수, 국민배우, 국민가수, 국민타자와 같은 이름을 붙이고 다 함께 기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사람은 정치를 통해서 ‘가장 큰 우리’를 만들고 누림으로써 다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며 열광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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