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는 2024년 우리는 소설 속 시점 이후 유대인이 나치로부터 대학살을 겪은 일과 그 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을 건국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스라엘이 지금 이 시간에도 팔레스타인과 전쟁 하고 있다는 것까지. 이미 역사가 된 수십 년의 시간 속에서 여러 주체들이 입장이 바뀌어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엉키고 가치를 판단하기 어려운 혼돈 속에서 현재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느 시대든 ‘폭력’은 그 시대 소년들을 절망으로 내몰았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이 여전히 같은 비극 속에서 살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책 뒤표지 홍보문구이다. ‘필독도서’, ‘추천도서’, ‘충격과 감동’이라는 꽤 묵직한 단어들이 책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인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목 또한 원문 그대로 ‘동창회(Reunion)’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소년들이 그저 ‘동급생’이 아니기에 원제목이 농축도가 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낮은 허들만 넘고 책 속으로 들어간다면, 100여 년 전 아름다운 독일 남서부에서 평화롭게 살았던 소년들을 만난다면, 그 소년들의 삶을 따라가 본다면,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 결국 그들과 동창회를 해 본다면, 시공간을 거슬러 내게 말을 거는 그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혐오와 갈등이 사람을 덮치고 있는 지금 세상, 그곳에서 과연 당신은 잘 살아가고 있는 거냐고.
--- pp.19~21 「구승희, 소년이여 평화가 되어라-『동급생』, 프레드 울만, 열린책들」 중에서
테레자는 토마시의 극심한 육체적 탐닉에 괴로워하지만 그를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없었다. 테레자에게 사랑이란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거나 무엇을 원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반려견 카레닌은 테레자가 직접 선택한 토마시처럼 그녀에게 또 다른 모습의 토마시이다. 사랑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과 정의는 n극과 s극처럼 결코 만날 수 없지만 그들이 서로를 목숨보다 더 사랑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사랑의 참정의는 무엇일까? 끝까지 정의 내리기 어렵다.
출간 후 40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사랑에 아파하고 그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이, 자신의 삶을 되짚어 보고픈 누구나에게 추천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제목처럼 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휘발성 독서로는 무엇도 잡을 수가 없다. 첫 문장이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으로 시작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네 사람의 사랑과 삶을 중심으로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논하고, 인간의 범주를 분류하기도 하고, 꿈으로 표현되는 무의식의 세계, 정치, 사회, 문화예술 철학까지 어느 하나 가벼이 쓰인 것은 찾을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읽을 때마다 처음 마주하는 듯한 문장들에 낯설기까지 하다. 완독하지 못하고 손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을 때마다 잘 소화된 집밥처럼 내 삶에 영양분이 될 것이다.
--- pp.69~70 「이원주,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민음사」 중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물리적 시간을 따져 과거, 현재, 미래라고 이름 붙였다. 과거는 기억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반면 현재는 아주 짧고 미래는 알 수 없다. 과거는 늘상 아쉽기 마련이고 현재는 미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으니 의심쩍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궁금해하고 두려워하기도 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 보듯이 ‘이토록 평범한’이라는 말과 ‘미래’라는 단어는 어울릴 수 없는 말이다. ‘이토록 평범하다’는 것은 사물이든 경험이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에서 나오는 평가로서 과거나 현재를 전제로 하고 있고, 미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지의 시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작가는 어울리지 않는 이 두 낱말을 왜 같은 선상에 놓았을까. 그것은 이 소설이 시간 위에 놓인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 같다.
--- pp.71~72 「이정인, 실패를 딛고 살아가는 세 번째 삶-『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문학동네」 중에서
쓰려거든 사람이 먼저 되라고 여느 책처럼 꾸짖기보다는,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답을 제시할 만큼 따뜻한 사람. 조금씩 마음에 고인 생각에 먼저 귀를 기울이는 거라고, 쓰는 건 그다음에 해도 될 일이라고. 그렇다. 우선은 마음속에 울리는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 그렇게 한동안 고이며 숙성된 생각이라야 간신히 글감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중략) 누구든 읽다 보면 으레 독서에 관한 책을 찾게 될 거라고 믿는다. 더 잘 읽고 싶다거나, 혹은 쓰고 싶어질 테니까. 그럴 때 꺼내 보면 좋을 책. 읽는 이가 맞이할 또 하나의 숙명이 있다면 그건 결국 쓰게 될 거란 점이다. 혹시나 글이 잘 안될 때 다시 꺼내 봐도 좋을 책. 지금 이걸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아마도.
--- pp.168~169 「피희열, 첫 문장이 찾아오는 그 순간-『첫 문장이 찾아오는 순간』, 오가와 요코, 티라미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