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쪽’이 ‘북한’을 말하는 줄 정말 몰랐다. 북한은 ‘한민족 국가’나 ‘통일 국가’라는 어휘를 듣지 않고서야 내 머릿속에 떠올릴 일이 없는 나라였으니까. 당시 내게 북한이란 상상의 공동체도 아닌, 허상의 공동체였다고 할까? 사실 이게 더 문제였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실재하는 현실임에도, 내가 인식하는 세상에서 ‘북쪽’은 지워진 존재였으니까.
---「고향이 어디예요 “북쪽인데요”」중에서
누군가에게는 민이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가 ‘두 살 연상’의 선배라는 것보다 ‘남한 여성’이라는 게 더 신기했던 것 아닐까? 나와 민은 까치와 까마귀였다. 남들에게 (심지어는 북한 이주민에게도) 우리의 연애는 종(?)을 뛰어넘는 결합처럼 보였나 보다. 우리는 그저 연애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이다.
---「까치는 까치끼리, 까마귀는 까마귀끼리」중에서
이동 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마음의 거리는 좁혀졌다. 분주히 움직인 건 다리만이 아니었으니까. 나와 민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민이 어렸을 때 있었던 일(함경북도 산골에서 자란 민의 어린 시절은 충청남도 산골에서 자란 내 모친의 어린 시절과 매우 흡사하다.), 좋아하는 영화 등 생각나는 화제를 모두 끌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부터였다. 민과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더는 하지 않게 된 게. 오늘도,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도, 심지어는 내년에도 당연히 민과 함께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자리를 잡았다.
---「본업은 ‘연애’입니다」중에서
알고 보니 민의 친구는 고향이 평양이었다. 함경북도 산골에서 자란 민과는 살아온 환경이 달랐기에 북한에 대한 기억도 전혀 달랐던 거였다. 나는 ‘북한 이주민 = 고난의 행군 때 생계 때문에 탈북한 함경도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민의 친구가 나타나면서 모든 북한 이주민이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뒤에도 더 많은 이들이 나타나 나의 고정관념을 부숴주었다.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해 사랑의 도피로 탈북한 사람도 있다.)
---「북한 이주민도 다 같지는 않더라」중에서
(지금도 민은 도토리는 물론 다른 묵 종류도 일절 먹지 않는다) 민과 사귀는 동안 그가 북한 이주민이라는 걸 실감(?)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때는 확실히 와닿더라. 어렸을 때 먹고 체해서 혹은 그냥 맛이 없어서, 가 아니라 (식량난으로) 먹을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 질리도록 먹어서, 라는 답이었으니까. 지나치게 강력한 이유였는지 그 뒤로 그가 도토리를 먹지 않는다는 걸 한 번도 잊어버린 적이 없다.
---「도토리묵과 평양냉면」중에서
‘북한 이주민 출산 지원 제도’만 해도 그렇다. 아빠는 지워지고 엄마만 남아 있지 않은가.(…)하지만 임신·출산·양육을 오롯이 여성의 일이라고만 여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나와 민은 아이를 키울 때 양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따로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제도라는 건 지원을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인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도움이 긴요한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닐까?
---「아빠 육아 보조금을 허하라」중에서
북한 이주민 중 상당수는 모일 가족이 없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이뤘다고 해도, 두고 온 가족을, 헤어진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평화통일이 된다면, 혹은 종전이 된다면, 남북 교류가 훨씬 더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면, 그때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도 덜해지겠지. 하지만 그날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날이 올 때까지 마냥 외롭게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그럴 때면 순대를 만들어 먹으면서, 왁자지껄 복작복작한 명절을 보낸다.
---「제사는 안 지냅니다만」중에서
무슨 일을 겪을 때 자신의 사회적 소수성을 ‘곧장’ 떠올린다면 그건 그 소수성이 사회에서 심한 배척을 당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래서 나는 딸과 시조카가 반사적으로 자신이 북한 이주민 2세대라는 걸 떠올리는 일은 영영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딸아이와 시조카가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성을 잊거나 부정하길 바라는 건 아니다. 쉬이 떠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북한 이주민 2.0세대」중에서
한국에 사는 북한 이주민은 자신의 담당형사(신변보호관)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현황을 알려야 한다. 예전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담당형사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들 반응이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자기를 감시하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래도 문제가 생겼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담당형사라면서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배우자의 담당형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