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과 임꺽정
연산군 때에는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나타나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홍길동은 관리 복장을 갖추고 대낮에 관청을 드나들었고, 수령을 윽박질러 관청의 재물을 빼앗기도 하였다. 고급 관리에게 뇌물을 바친 뒤 내놓고 달아다니기도 하였다.
명종 대는 임꺽정이라는 더 큰 도적이 일어나 황해도 일대에서 여러해 활동하였다. 신분차별에 불만을 품은 천민과 생활이 어려워진 농민들로 구성된 임꺽정 부대는 황해도 구월산을 근거지로 삼아 양반들을 공격하고, 관청을 습격하였다. 심지어 왕에게 보내는 진상 공물을 빼앗기도 하였다. 다급해진 조정에서는 황해도 농민들의 세금ㅇ르 줄여 주는 한편, 서울의 최정예부대를 파견하여 이들을 제압하려 들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토벌대는 도적을 잡기보다는 백성을 약탈하기에 더 바빴다. 그러자 백성들이 더욱 임꺽정을 감싸고 돌았다. 그를 잡는데 무려 3년이나 걸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임꺽정의 활동을 기록한 사관은 '조정이 재물을 밝히지 않고 수령 또한 이 같은사람을 임명한다면 칼을 잡는 도적은송아지를 사서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저 군사를 거느리고 체포하기만 하면 수없이 도적이 일어나 다 붙잡지 못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고 말하였다.
--- pp.196-197
세계 최강의 몽고군이 쳐들어왔다. 황룡사9층탑이 불에 타 쓰러지고 우리 누이들은 비참하게 끌려가니 온 나라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이 때 충주성의 깊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 어떻게 몽고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 무기는 바닥나고 먹을 양식도 떨어진 절박한 심정, 마지막 남은 용기마저도 삼켜버릴 것 같은 깊은 밤, 막강한 몽고군을 상대로 변변한 무기도 없이 맞서 싸우는 일은 정말로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이들은 두 차례나 몽고군을 막아 냈다. 놀랍게도 이들은 한 때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만도 못한 대접을 받았던 노비, 천민이었다. 이들의 눈물겨운 전쟁은 고려만 지켜낸 것이 아니다. 천길 낭떠러지에 선 우리 역사를 보듬어 낸 것이다.
--- p.144
광야에서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옛적의 어떤 날, 망망한 만주 벌판의 거친 풀밭 위에 먼동이 터 올 무렵, 훤하게 밝아 오는 그 빛이 억만년 사람의 그림자를 본 일이 없는 흥안령의 마루턱을 희망과 장엄함으로 물들일 때, 몸집이 큼직큼직하고 힘줄이 불툭불툭한 큰 사람의 한 떼가 허리엔 제각기 돌도끼를 차고 손에는 억센 활들을 들고 선발대의 걸음으로 그 꼭대기에 턱턱 나타났다. 흐트러진 머리털 사이로 보이는 넓다란 그 이마에는 어진 이의 기상이 띠어 있고, 쏘는 듯한 그 눈빛에는 날쌤의 정신이 들어 있다. 문득 솟는 해가 결승선을 차 던지는 용사같이 불끈 솟아 지평선을 떠날 때, 그들은 한소리 높여 '여기다!'하고 외쳤다. 장사들의 우렁찬 소리는 아침 햇빛을 타고 우레같이 울리며 끝없는 만주 벌판을 내달렸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 -함석헌
--- 본문 중에서
"불쌍도 하지. 제아무리 왕이라지만 어떻게 지아비가 있는 부인을 넘 봐. 도미 부인이 아무리 미인이기로 그래서 도미의 눈을 멀게 해서 쪽배 하나에 달랑 싣고 망망대해로 뛰워 보냈다지?"
『삼국사기』에는 도미라는 이의 아름다운 부인을 빼앗으려던 개로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제의 개로왕(455~475)은 정말 이렇게 엉터리 왕이었을까?
475년, 백제의 수도 위례성(한성)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함락되었다. 그 동안 고구려는 백제를 꺾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미 장수왕의 아버지 광개토 대왕 때는 한강 이북을 차지하였다. 장수왕은 아차산에 본영을 설치하고 육해군 3만의 대병력으로 한강을 건너 한성을 공격하였다. 북성이 함락된 지 7일만에 남성마저 함락되었다. 성은 쑥밭이 되었고 개로왕은 사로잡혀 처참하게 죽었다. 5백 년 한성 백제의 영광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결국 백제는 신라에게 멸망당하였다. 정복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 기록만이 전해질 뿐, 백제인들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한강 백제의 마지막 주인인 개로왕의 모습도 이렇게 정복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면은 없었을까?
--- pp.60~61
"불쌍도 하지. 제아무리 왕이라지만 어떻게 지아비가 있는 부인을 넘 봐. 도미 부인이 아무리 미인이기로 그래서 도미의 눈을 멀게 해서 쪽배 하나에 달랑 싣고 망망대해로 뛰워 보냈다지?"
『삼국사기』에는 도미라는 이의 아름다운 부인을 빼앗으려던 개로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제의 개로왕(455~475)은 정말 이렇게 엉터리 왕이었을까?
475년, 백제의 수도 위례성(한성)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함락되었다. 그 동안 고구려는 백제를 꺾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이미 장수왕의 아버지 광개토 대왕 때는 한강 이북을 차지하였다. 장수왕은 아차산에 본영을 설치하고 육해군 3만의 대병력으로 한강을 건너 한성을 공격하였다. 북성이 함락된 지 7일만에 남성마저 함락되었다. 성은 쑥밭이 되었고 개로왕은 사로잡혀 처참하게 죽었다. 5백 년 한성 백제의 영광이 먼지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옛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지만 결국 백제는 신라에게 멸망당하였다. 정복자에 의해 쓰여진 역사 기록만이 전해질 뿐, 백제인들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한강 백제의 마지막 주인인 개로왕의 모습도 이렇게 정복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던 면은 없었을까?
--- pp.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