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논어》를 읽는 것도 좋았지만 쓰는 것도 좋았습니다. 《논어》를 한 자씩 쓸 때는 공자의 말이 제 안에 깊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전에 집필 했던 《오십에 읽는 논어》 역시 《논어》를 쓰면서 작게나마 제 삶에 적용했기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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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본성이나 천성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어떤 사람은 잘살고 어떤 사람은 못살게 되는데, 공자는 그 이유가 사람의 본성이 나 천성, 또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의 습(習)에 있다 했습니다.
性相近也 習相遠也
(성상야상 원야습근)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반복함에 따라 서로 멀어진다
연습, 복습, 학습, 꾸준한 반복에 있다고 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공자께서 만약 그 원인이 아버지의 재력, 학력, 미모에 있다고 했다면 보통의 많은 사람들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지금까지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것은 ‘습’ 때문입니다. 5년 후의 삶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 역시 지금부터의 ‘습’ 때문일 것입니다. 《논어》 필사는 반복하며 무르익는 삶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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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은 세대가 없듯 오십, 지천명의 세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 오십 즈음에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언가 조금 더 채우고 싶은 마음 때문인지 모릅니다. 비움을 안다 는 것은 더 채울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십의 공허함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아 다행입니다. 인생을 미처 알기도 전에 느끼는 공허함은 사치일 수 있고, 인생 말년에 느끼는 공허함은 채우기가 어렵기에 그렇습니다. 오십은 한 번 더 시작하기에 그리 늦지 않은 나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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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는 30세와 80세의 중간입니다. 55세는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이 아니라, 후반 25년 을 새롭게 꾸며갈 시작점입니다. 지난 25년의 삶이 힘들었다면 앞으로의 25년은 덜 힘들게 살아야 합니다. 지난 25년의 삶이 재미없었다면 앞으로의 25년은 조금 더 재미있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삶을 조금이라도 더 재미있고, 쉽고, 유익하게 만들 수 있을까요? 모두에게 합당한 그런 정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가끔 고전 속에서 그런 삶의 노하우를 접하게 됩니다. 고전 중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논어》를 쓰면서 깊이 생각해 본다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논어》가 될 것입니다. 쓰는 속도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속도로 다시 쓰면서 《논어》가 주는 성찰과 묘미를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 p.45
《논어》의 첫 문장은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불역열호)로 시작합니다. ‘배우고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뜻입니다. 공부에도 학습에도 균형이 필요합니다. 읽으며 배움(學)이 시작되고, 쓰면서 익힘(習)이 시작됩니다. 배움은 익힘을 통해 실행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니 배움의 결과는 실행과 실천에 있습니다.
배움이 많아도 익힘이 적으면 배움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이 알아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면 배움을 실행에 옮기기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니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익힘의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학습의 익힘은 쓰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복습, 연습, 학습은 모두 쓰기가 바탕이 됩니다. 읽고 쓰고, 쓰고 또 쓰는 일이 바로 학습, 복습, 연습입니다. 논어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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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편지에 양서의 글을 베껴 쓰는 초서(抄書)의 장점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쓰기는 그냥 쓰기가 아닙니다. 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몸으로 익혀가는 과정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 방법입니다.
--- p.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