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열 : 인지라도 오마 마 손목 잡고 막 울겠다.
최승호 : 이제라도 오면 손목 잡고.
도종열 : 그래 저 아주마 저 저기 요리 올라오는 질이 있거든. 그거는 주야로 본다. 오는가 싶어가. 봤디마 요새 또 요질로 나갔는데 올 긴디 몬 온다 카미.
최승호 : 나갈 때 옷은 뭐 입었습디까?
도종열 : 삼비 중적삼이 입고 들에 갔다옸는 사람 디리고 가뿌맀다 마.
최승호 : 삼베. 그때 갈 때 내 갔다 올게 인사하고 갔습니까?
도종열 : 아 인사 어딨노. 경찰 딜고 가미 사람 오도 몬 하구로 하는데.
최승호 :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남편 면회 안 갔습니까?
도종열 : 면회 머 오라 캐야 가지. 가도 비주나 어데.
최승호 : 어느 지서에 있다 캅디까, 어느 지서에.
도종열 : 청도지서. 청도.
최승호 : 청도경찰서에 있다 캅디까. 풍각 지서가 아니고?
도종열 : 풍각 아이고. 풍각에 지서 있나 어데. 그런데 이 박사가 사람 몬 지기구로 해가지고 거 가여 한 달로 있었는데 어느 녁에 고마 디리고 가뿠어.
최승호 : 유치장에 한 달 있다가.
도종열 : 경찰서 한 달 있다가. 거 면회로 가도 안 비주드마.
최승호 : 면회는 몇 번 갔습니까?
도종열 : 한 번 갔다. 함 분 가고 또 살릴라고 머 돈도 씨마 나온다 캐가 돈도 씨고 해사서 머. 한 달 동안에 쫓아댕기메 하미 소 한 마리 내삐리고. 소 한 마리 팔아가 사람 조노이 주도, 내 주도 안 하고.
최승호 : 아 소값을 줬는데도.
도종열 : 언날 한 달 있다가 가뿌고 없어. 어데 갔노 카이까네 안 갈쳐주. 저 희춘이가 희춘 씨가 거 어데 갔는고 알라꼬 오만 궁리를 다 내도 안 갈준다캐. 그래 그 박희춘 그 사람이 돌아가싰는가 우엣는고. 오새는 연락이 없어.
--- p.150-151 「도종열 구술증언」 중에서
이수연 : 파출소에 있다가 파출소 잡혀, 새벽에 다 잡혀갔잖아요, 마을 사람들이. 그거 그 원정지에 지서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잡혀 있다가 이제 추럭을 타고 운문 사람 뭐 동창 사람 이런 사람들 다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거기 탔더래요. 거 우리 저기 이준호 씨가 봤을 때. 타고 가는 걸 봤고. 그런 이제 곰티재에 총소리가 났다고, 클 났다고 거기 뭔일 났다고 그래가 이제 잡혀갔으니까 우리 엄마는 나를 업고 곰티재 가는데 순경들이 총 개머리판으로 거 가면 죽인다고 막 개머리판으로 들이댔는데 우리 엄마가 나도 죽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살마 뭐 하냐고 같이 죽여 달라고 막 그러니까 순경들이 거 저기 그냥 말을 못 하고 가도록 놔뒀대요. 그래 거 가가 이제 이준호 씨하고 돌아가신 우리 오빠 뭐 이런 사람 그 자리에서 엮있는 그 손목 엮있는 거 풀구 그 자리 뭐 얼마 안 떨어짔는데 거기서 뭐 저 무, 그거 산소 대충 맨들어 가지고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중략)
최승호 : 그러면 이제 이 김종재, 이일희, 운산댁, 진주아지매, 이재화, 아버지 이정복. 이런 사람들이 이제 다 돌아가셨네 그지예?
이수연 : 예. 그렇죠, 그렇죠. 예예예.
최승호 : 같은 날. 같이 6월 24일날 다 제사 지냅니까?
이수연 : 그렇죠, 그렇죠. 제사가 그때 막 여럿 집이 지내가지고 우리가 어릴 때 그 집 딸하고 우리 딸. 어떻게 우리 아버지하고 너거 아버지하고 제사가 같은 날이다 그지? 막 이러고. 그때 여름에….
최승호 : 이유를 몰랐구나.
이수연 : 그 이유를 모르니까 뭐 그때는 못 살아가 쌀도 제사 때 쌀이 없어가 그리고 우리 엄마는 우리 아버지 제사 때 그리 욕을 하더라고. 그래 우리 아버지가 억수로 나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최승호 : 아버지 좋은 사람이었어요. 세상을 바꿀려고 했던 사람인데 억울하게 죽은 거죠. 똑똑해서 그래요, 아버지가.
이수연 : 그런데 그전에 언젠가 내가 30대쯤 돼가 그 손에 엮여서 그 총부리 앞에서 그 이 사람이 생각해 보세요. 그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이 한창 30대 초반인데 그 마음이 어떻겠는지 그거 생각하면은 내가 통곡을 했다고 한날 그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우리 엄마는 뭐….
--- p.194-197 「이수연 전화녹취록(이인백 증언의 보조 구술)」 중에서
최승호 : 그때 당시 굴에서 살아나온 생존자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김무술 : 그때 저의 부친 친구분 김 우 자 술 자 쓰시는 분이 동굴에서 집까지 직선거리로 이삼백 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거기 사실 때 그분 밭에서 호박을 뜯어 먹다가, 그 속에 갇혀 있다가 어떻게 기어 나와가지고, 수직굴에서 수핑굴로 연결돼 있으니까 떨어지다가 수평굴에 걸려 거기로 나와가지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호박, 생호박을 먹다가 엎어져서 죽어 있더랍니다. 그런 분도 발견했고. 또 어떤 분들은 하대에 계시는 분이라고 하는데 살아가지고 지금은 다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살아 나오신 분들도 있답니다. 억울한 분들이 다시 살아나와가지고 사살된 분들도 있답니다.
최승호 : 수평굴과 수직굴이 다 연결돼 있네요?
김무술 : 수직굴하고 수평굴하고 다…. 수직굴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어릴 때 돌을 떨어뜨리면 밀에서 물소리가 나는 게 한참 있다가 났다고요. 굉장히 깊다는 얘기지요. 그 위치가 일제시대 때 코발트를 캐내던 중앙자리랍니다.
--- p.387 「김무술 구술증언」 중에서
최승호 : 도로 밑으로는 수평굴이 있고. 골프장이 생기기 전에 그 안쪽으로도 왜 사람들이 죽어서 이렇게 묻어놓고 했다고 들었는데.
유동하 : 그거는 달아나는 사람들 쏴 죽있는 거지.
최승호 : 근데 그때 어떻게 달아납니까 거기서. 총을 다 쏴가 굴로 다 빠뜨렸는데.
유동하 : 그걸 알뜰이 뭐 쓰레기 쓸어 담듯이 그런 식으로 안 하고. 처음에 한 사람이 한 발씩 쏘다가 뒤에는 다섯 명, 여섯 명 쏴 세아놓고 쏘이까 죽은 듯이 자빠라졌다가 달아난 놈도 있으니까 따라가가 쏴 죽이야 될 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이까 쏴 죽있는 거 죽었는 거 끌고 와가지고 그 자리에 갖다가 안 집어넣고 내버려두니까 그래가지고 썩었는 뼈를 갖다가 우리가 주워가지고 묻어주고 굴에 갖다가 넣고 그랬다고예.
최승호 : 아, 직접. 그라마 죽은 사람들 시신을 걸로 묻기도 했구나.
유동하 : 시신 근데 썩고 난 뒤에지.
최승호 : 썩고 난 뒤에 뼈만.
유동하 : 뼈. 군데군데 많았어요 그거.
--- p.439 「안경치·유동하 구술증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