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성 형님은 참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올곧은 판단력과 행동으로,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보면 부드러운 방식으로 주변사 람들에게 사리 분별을 해주었습니다. 형님의 기사와 글은 형님의 정신을 대변하듯 담백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늘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습니다.
저와 같은 언론계 후배들에겐 언제나 강요하지 않는 자연스러움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형님 인생의 이런저런 고비에 부침을 겪으실 때에도 다급해하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여유를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볼 때 힘들 때 내색을 더 하고, 주변에 힘들다는 것을 더 많이 알리고, 때론 화를 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빨리 가시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큰 아쉬움이 몰려오는 대목입니다.
--- 「추모사(이오상 KNN 대표이사 사장)」중에서
사위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순간에도 아빠는 하나뿐인 딸을 잘 부탁한다는 말씀이 없으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왜 아빠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를 잘 챙겨 달라는 말씀이 없으셨을까’ 궁금했다. 이제는 알겠다. 아빠를 똑 닮은 내가 어떤 어려움이 생겨도 현명하게 잘 이겨내고 꿋꿋하게 잘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셨을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다음 생에 또 우리 아빠가 되어 달라고 했다. 그때는 일만 하지 말고, 가까이 살면서 여행도 많이 다니고 좋은 시간 많이 보내자고 했다. 이제 손주들과 좋은 시간 보낼 일만 남았는데, 아빠 없이 그 시간을 보내려니 아쉽고 슬프다.
--- 「1부 고인을 추억하며」중에서
돌이켜 보면 선배님의 기준은 항상 높았습니다.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야속할 때가 없지 않았지만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하나 더 공부하고, 한 걸음 더 움직이고, 한 명을 더 만났습니다. 기사를 쓰며 토씨 하나하나 선택할 때도 선배님께 꾸중 듣지 않게끔 고민하고 또 고민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3년 연속 선배님을 직속 데스크로, 이후에도 편집국장 사장으로 모시며 참 많이 배웠습니다. 분에 넘치는 배려도 받았습니다. 덕분에 저도 기자 흉내는 내면서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더라면 세상에 내보이지 못했을 기사도 많습니다.
--- 「1부 고인을 추억하며」중에서
그의 이런 면이 편집국 지휘봉을 맡으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내가 퇴직한 후다. 편집국장인 그이기에 가능한 한 과감한 기획 기사로 ‘국제’ 지가를 크게 떨쳤다. 개금동 철길 옆 마을에 무려 6개월간 두 기자가 어르신들과 생활하며 기록한 〈생애, 마지막 전력 질주〉는 지역 언론의 존재 이유를 증명했다. 이 장기 기획 기사는 이듬해 2018년 한국기자상(지역 기획보도 부문)을 비롯 일경 언론문화상, 삼성언론상 석권으로 이어졌다. 이후 전국에 유사 기획취재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
--- 「1부 고인을 추억하며」중에서
당시 국제신문 사회부 사건기자들은 이런 박무성 캡틴의 리더십 아래 한마음으로 움직이는 원팀이 됐다. 1998년은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신청한 직후라 실업자 대량 양산, 기업 연쇄 부도, 지방선거 같은 굵직한 이슈가 쏟아졌지만, 원팀으로 발 빠르게 대응했다. 박 캡틴이 시경 캡을 하는 동안 후배에게 밥과 술을 사주느라 은행에 몇천만 원의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 빚이 생겼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야단을 맞으며 한결 완성도 높은 기사를 쓸 수 있게 단련되고 성숙해져 박 캡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박 캡틴에게서 사건·사고 이면에 숨어 있는 본질을 파헤쳐야 ‘임팩트’ 있는 기사를 쓸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정곡을 찔러야 한다고.
--- 「1부 고인을 추억하며」중에서
각급 선거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구호가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꾼다’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은 이 상투적인 구호를 의문문으로 되묻는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사회에 대한 고민이 깊고 진지해졌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겠다. 내 한 표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이보다는 나의 투표 행위가 나를 바꿀 수는 있다. 자신이 선택한 후보를 지켜보는 관심도가 달라지고, 지지 혹은 비판적 발언에 참여하게 되고, 나아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대할 수 있게 된다.
--- 「2부 언론인 박무성 ‘그래도 선거는 희망이고 축제다’」중에서
국가 차원이건 우리가 속한 조직의 틀에서건 위기가 일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데는 리더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파국을 재촉하는 최악의 리더도 많다. 위기가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그렇다. 1920년 봄, 섀클턴은 우여곡절 끝에 네 번째 남극 탐험을 시도했다. 옛 동료들은 예전의 전설적인 리더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섀클턴은 '실패한 탐험가의 성공한 리더십'이라는 찬사를 듣는다. 리더십의 궁극은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성과가 아니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정신 내지 가치의 추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진정한 리더십이 매우 드물고 소중한 이유다.
--- 「2부 언론인 박무성 ‘일상이 된 위기, 리더십의 위기’」중에서
이 땅의 아버지들에게 드리는 당부이다. 5일과 8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진다. 슬하의 자식이라면 로마의 아버지들처럼 아이를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려보자. 또 이미 장성해 시집장가 가서 독립해 있는 자식들이라면 용돈 봉투나 선물 하나씩 들고 찾아오게 마련일 게다. 이들 다 큰 자식은 무척 쑥스럽더라도 아버지가 먼저 안아줘보는 거다. 아무 말 필요 없이. 로마인의 거양의식은 아이의 정신적 탄생뿐 아니라 아버지가 아버지로서 정신적으로 탄생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는 행위였다. 아버지는 부성을 잃었을지언정 자식들은 여전히 아버지를 갈망한다고 한다. 저자는 단언한다. ‘부성을 포기하는 것은 더 나은 시대의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 「2부 언론인 박무성 ‘다시 5월, 아버지를 묻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