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칠계이다.
첫째, 어느 쪽 군주가 더 민심을 얻고 있는가?
둘째, 어느 쪽 장수가 더 유능한가?
셋째, 어느 쪽이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얻고 있는가?
넷째, 어느 쪽의 조직이 더 안정되어 있는가?
다섯째, 어느 쪽이 병력의 수와 무기가 더 우수한가?
여섯째, 어느 쪽의 병사가 잘 훈련되어 있는가?
일곱째, 어느 쪽의 상벌이 엄격하고 공정하게 시행되는가?
어떤 전쟁도 무턱대고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싸워야 할지 말지부터 먼저 결정해야 한다. 전쟁은 나라의 흥망이 달려 있는 중대사이기 때문에 만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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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는 윤희에게 《도덕경》을 받은 그날로 다 외우다시피 했는데, 첫 문장 ‘도라 하면 이미 도가 아니고, 이름을 부르면 이미 그 이름이 아니다(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名)’를 읽는 순간부터 벼락을 맞은 듯 전율했다.
함곡관을 다녀온 그날 밤에 손무는 희한한 경험을 했다. 손무가 그동안 답사 다닌 전적지들 위에 서 있는데 《육도삼략》과 읽었던 역사책, 《도덕경》의 글자들이 하나씩 튀어나오더니 마구 뒤섞였다. 그 글자들과 중첩된 전적지에서 구름과 바람과 비가 일어나는 가운데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꿈이었다. 이 체험이 《손자병법》의 저변에 ‘무위야말로 못할 것이 없다(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는 노자의 철학이 깔리게 된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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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손무가 주나라 도서관에서 읽은 중원의 역사이다. 다행히 《육도삼략》은 손무의 조상이 제나라로 이주하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자주 보았던 책이다. 조부 손서나 부친 손빙이 《육도삼략》을 애독했고, 손무도 글을 배운 뒤부터 읽기 시작했다.
손무가 열여덟 살 되던 날 하루는 손빙이 물어보았다.
“무야, 《육도삼략》의 요점이 무엇이더냐.”
“싸움 없이 적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부전이굴인지병不戰而屈人之兵, 선지선자야善之善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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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무는 우리에게 협력할 의사가 없구먼.”
“그럴 바에는 없애 버려야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손무를 죽인 것이 알려지면 제나라는 물론 오나라까지 침략의 빌미를 삼을까 두렵습니다.”
찬반양론이 일자 류가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날이 밝거든 무사를 강도로 변장시켜 영상 潁上으로 먼저 보내라. 오나라로 가려면 손무도 영상을 지나쳐야 하니, 그때를 노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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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관중을 평가하지 마라. 관중은 누구보다 용감하다. 병든 홀어머니를 봉양하고 있어 살아 돌아가야만 할 입장이라 그렇다.”
이에 대해 관중도 늘 고마워했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아뿐(생아자부모生我者父母, 지아자포자야知我者鮑子也)이다.”
그런 절친한 사이였지만 서로 다른 공자를 모시게 된 것이다. 게다가 양공의 핍박을 피해 달리 피난 가면서부터 정치적으로 적대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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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들의 사리사욕으로 매일같이 죽어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 비극을 막기 위해 병법을 연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네가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병법을 만들어 내면 그것이 애비에 대한 최고의 효이다. 꼭 부모 곁에 있어야만 효라는 것도 다 형식에 불과한 일이다. 네가 전해준 《도덕경》에도 그와 같은 이치가 적혀 있더구나. 사실 이전에 나는 노자 선생을 뵌 적이 있었다. 오나라로 오기 전 제나라 왕실과 우리 가문 간의 긴장이 높아질 때 일시 현장을 떠나 객관적으로 보고자 낙읍의 수장실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노자老子 선생을 만나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인위적 욕망이 아니라 무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아마 그 때문에 망명도 결심했던 것 같다. 그러니 어서 떠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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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국왕이 유흥에 빠진 나라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없사옵니다. 이미 강대국인 진晋나라 외에 진秦나라도 강성해져 우리를 언제 침략할지 모릅니다. 국정에 전념하여 주소서.”
“저런 무례한 것들이 있나. 당장 끌어내 목을 쳐라.”
그 뒤 아무도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이때 대부 소종蘇從이 상대부 오거伍擧를 찾아갔다.
“나랏돈을 받는 사람이 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지켜볼 수만은 없소이다. 더욱이 상대부와 저는 집안 대대로 국록으로 먹고 살아왔소. 이제 나라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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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어떤 놈이 나를 희롱했습니다. 그놈의 투구 끈을 뜯어 놨으니 엄벌을 내려주소서.”
연회장의 분위기가 찬물 끼얹듯 가라앉은 가운데, 장왕이 영을 내 렸다.
“불을 켜지 말라, 모든 장수는 투구 끈을 뜯어내라.”
모든 장수가 왕명에 따른 뒤에 불을 밝혔다.
세월이 흐른 뒤 장왕이 출전한 전쟁에서 퇴로가 끊겨 사지에 몰렸다. 그때 한 장수가 목숨을 걸고 구해냈는데 바로 연회에서 왕의 애첩을 희롱해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당교唐校였다. 평소에도 장왕은 자신보다 뛰어난 신하를 원했고, 그런 신하를 찾지 못할 때면 나라가 위태롭다며 한탄했다. 이런 포용력 때문에 뛰어난 신하들이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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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야, 아버지가 위급한데 자식 된 도리로 안 가볼 수 없다. 그 대신 너는 멀리 도망가거라. 우리 부자가 죽더라도 네가 꼭 원수를 갚거라.”
이리하여 오상은 군졸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오자서가 거부하자 군졸들이 억지로 포박하려 했다. 오자서가 피를 토하듯 고함쳤다.
“힘없는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으니, 가서 전하라. 내 반드시 오늘을 잊지 않고 갚아 주겠다고…….”
사색이 된 군졸들이 오상만 데리고 도망치듯 나갔다. 오자서는 형의 뒷모습이 고개 너머로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바라보았다. 황소 눈 같은 그의 두 눈에 주먹만한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이대로 나와 형, 아버지는 영원한 이별이구나. 이놈, 평왕아, 비무극 아, 불구대천의 원수들아. 내 기필코 네놈들을 갈가리 찢어 놓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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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도 잘하시고 요리도 잘하시고, 재주가 많으시구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보아하니 천하에 무서울 것이 없는 분이 부인이 부른다고 건달들이 조롱해도 꼼짝 못 하고 따라가더군요.” 그때까지 고분고분하던 전제가 오자서를 금방이라도 내칠듯한 기세로 돌변했다.
“그렇소. 나는 한갓 가녀린 아녀자인 내 아내에게 쩔쩔매는 놈이오. 허나 잘 들어보시오. 굽혀야 될 사람에게 굽힐 줄 알아야 만인 위에 서는 법도 아는 것이오. 내게 아내는 옥황상제보다 더 위엄 있는 존재요.”
이 말에 감동한 오자서가 일어나 절을 했다.
“지금까지 스승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을 만나봤소만, 당신처럼 사리에 밝은 분은 처음이오.” 전제도 엉겁결에 일어나 맞절을 했다.
“어찌 그런 과분한 말씀을 …. 오늘부터 형님으로 모시고 무슨 일을 분부하든 따르겠습니다. 필요하면 제 목숨도 드리겠습니다. 대신 제 늙으신 어머니와 아내, 어린 네 명의 자식들을 돌보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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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자서는 손무의 병법서를 읽고 눈앞이 환해진 경험을 했다. 그 뒤 틈날 때마다 손무를 찾아와 담소하는 것이 일과처럼 되었다. 역사에 밝은 오자서가 먼저 초나라 등 각국 역대 제후들의 이야기를 하면, 거기에 맞춰 손무가 나라 간 전쟁사를 풀어 놓았다. 전적지를 돌며 그려 놓은 지도와, 각 전쟁마다 동원된 전략도 곁들여가며….
오자서도 누구 못지 않은 전략가였지만 손무는 차원이 달랐다. 오자서가 전쟁 중심이라면 손무는 전쟁 이전과 그 뒤에 미칠 여파까지 조망할 줄 알았다. 전체와 부분을 번갈아 보며 전쟁 현장을 조율할 줄 알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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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대왕. 초나라 코끼리가 도성 앞에 쳐 놓은 장애물을 다 치워준 꼴이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수월하게 입성할 수 있었습니다.”
장수들 또한 너도나도 코끼리가 이번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며 웃고 떠들었다. 이때 합려는 《손자병법》 중 12장의 ‘화공계’가 떠올라 손무에게 물었다.
“자, 다들 조용히 하라. 여기까지 오도록 우리가 최강 초나라를 다섯 번 싸워 전승했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전과냐. 더구나 우리는 3만 병력이었고 적은 20만이었다. 하하하. 이 모두가 손 원수와 오 장군의 공적이로다. 그래서 손 원수에게 묻겠소.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많은 적에게 매번 승리할 수 있었소?”
“군사가 많다고 꼭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적이 오려는 곳을 미리 안다면 소수의 아군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아군이 적을 때는 정면충돌을 피하고 유인책으로 적을 한곳에 몰아야 합니다. 그러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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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가 바짝 뒤를 따르며 왕을 달래는 척하며 오자서를 모함했다.
“오자서가 제나라 사신으로 갈 때 아들을 데리고 가서 제나라에 남겨두었다 하옵니다.”
“설마, 그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제나라 대부 포목에게 아들 오봉을 맡기고 성까지 왕손씨王孫氏로 바꿨습니다. 또한 손무까지 찾아내 몰래 만났다 하옵니 다. 역모를 꾸밀 생각이 아니라면 자식을 성까지 바꿔가면서 제나라에 남겨둘 리가 없습니다.”
곁에 있던 서시도 놀란 표정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한 번 배신한 놈이 또 배신하는 것입니다. 조상 대대로 섬기던 초 나라를 배신했던 오자서가 오나라라고 배신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자는 독사와 같습니다. 품어주어 봐야 물릴 뿐입니다.”
부차가 눈을 흘기며 열변을 토하는 서시를 보다가 백비에게 눈을 돌렸다.
“그럼 큰일 아니오? 오자서를 어떻게 없애면 좋겠소?”
“전하의 촉루검蜀樓劍을 보내시옵소서. 오자서는 역모가 들통난 줄 알고 자결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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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멈추고 횃불을 켜라.”
병사들이 송진 가루를 묻힌 횃불을 켰다. 그중 한 기병이 놀랜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 앞에 커다랗고 하얀 장승 같은 것이 서 있는데 무슨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방연이 직접 횃불을 들고 흰 천에 적힌 문장을 읽어 내리는데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계곡의 좌우에서 불화살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기병대가 고슴도치가 되어 속속 쓰러지는 가운데 방연은 스스로 목을 찌르며 한탄했다.
“수성수자지명遂成?子之名.”
수자는 더벅머리였던 손빈이다. 방연이 손빈을 죽이려다 도리어 손빈의 명성만 높여주었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그런 방연을 보며 손빈도 울고 있었다.
“이 친구야. 우리가 왜 이리 되었나? 함께하고자 할 때 뜻을 이룰 수 있다(여중상득與衆相得)는 것을 자네가 잊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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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가 분하다고 군사를 일으키거나 장수가 화난다고 싸워서는 안 되고, 도움이 되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쳐야 한다. 분노는 희락으로 바뀔 수 있고 화도 즐거움으로 변할 수 있으나, 망한 나라는 다시 세울 수 없고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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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자연현상과 인간의 심리는 변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불변의 요소로 변동하는 상황에 대처하고 상황을 주도해 나간 지혜가 이 책에 가득하다.
‘손자천독달통신孫子千讀達通神’이라고 하듯, 이 책을 읽고 또 읽으시라고 권유하고 싶다. 더불어 부록에 수록된 《손자병법》 원문과 해설을 읽기를 바란다. 그만큼 세상살이가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 본문 중에서